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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4 홍콩 센트럴 <커먼 그라운드>

2022년 4월 24일 일요일. 변함없이 홍콩시티대학에 출근해서 제가 할 일을 합니다. 그리고 11시가 되어 변함없이 AC1 교내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4가지 반찬 가운데 2개를 고르고 레몬수가 무료로 제공되는 메뉴를 고릅니다. 채식 반찬 2개에 고기 반찬 2개인데, 당연히 고기 반찬으로 가죠. 거기에 채소도 들어 있으니까요. 제가 씹는 속도가 좀 느려서, 남들과 같이 식사하면 미안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혼자 우두커니 앉아 우적우적 씹고 있으니 마음이 편합니다. 식사하면서 뉴스를 봅니다.

오호라! 전세계 여성의 적인 탈레반, 그 잔인한 단체의 대변인인 하테프 박사가 세계 최대의 포르노 사이트인 <pornhub>를 팔로우하고 있었군요. 탈레반을 조롱하는 것이야 뭐 별 재미도 없는 일이지요. 너무 뻔하게 내로남불이니까. 다만 탈레반도 성인 사이트에 접속이 가능한데, 대한민국은 그마저도 안 되는 국가라는 점이 희대의 코미디이지요. 이대남들이 대한민국을 "유교 탈레반 국가"라고 조롱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하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탈레반조차 억울해하겠군요. 물론 유교 또한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이고요.


브런치를 배불리 먹고 난 뒤, 가방에 읽을 거리를 챙겨서 교정을 나섭니다. 무작정 센트럴로 갑니다. 요즘은 주말에 아예 노트북을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냥 책을 읽으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변함없이 센트럴 역 D2 출구 데카트론 건널목에서 출발합니다. 오늘은 어디를 갈까요? 조삼모사의 원숭이인 저는 바로 저번주에 당분간은 방문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커먼 그라운드>를 찾아갑니다.

https://brunch.co.kr/@joogangl/391

네, 그렇습니다. 4월 16일에 경찰 불심 검문으로 한 번 기분을 망치고 난 뒤, 저는 이 골목을 당분간 찾지 않겠다고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어제인 토요일 저녁에 도심 가득한 경찰을 뚫고 <비지지 원> 라이브 바를 다녀왔더니, 이제는 뭐 될대로 되라는 심정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곳을 질릴 때까지 가야죠. 언제 다시 올지 모를 홍콩이니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목적지로 향합니다.

헉!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주변 명소 가운데 하나인 Stauton's가 문을 닫았네요! 폐업일까요, 아니면 임시휴업일까요? 이 레스토랑은 워낙 역사가 깊은 명소라서 사라지면 안 되는데...절대 안 되는데... 제가 홍콩 와서 산 지 9개월이 되었는데, '한 번 가야지' 하면서도 게으름을 피우고 가지 않았었습니다. 결국 이 역사적인 와인 바를 방문하지 못하고 끝낸단 말입니까? 이래서 있을 때 무조건 가야 합니다. 언제 없어질지 모르거든요. 여기는 워낙 네임벨류가 있기 때문에, 리모델링을 하거나 타인이 인수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동안 쌓은 명성이 있는데 가긴 어딜 가! 이 꽉 깨물고 오픈해라. 내가 반드시 찾아가고 말겠다!


 오늘의 목적지인 <커먼 그라운드> 바로 곁에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복합문화공간인 PMQ가 있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폐쇄되었다가,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는 추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홍콩에 오면 한번쯤은 방문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사동 <쌈지길>의 홍콩 버전인데, 규모가 훨씬 크고 볼 것도 많습니다. 레스토랑이나 커피숍도 괜찮습니다. 홍콩은 지금 매우 빠른 속도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려는 추세가 보입니다. 7월 1일 "홍콩의 전두환"인 존 리가 행정장관으로 취임하기 이전에, 바짝 당겨서 풀 수 있는 것은 풀어야죠. 존 리가 친애하는 시(Xi) 주석을 위해 상하이 봉쇄처럼 세게 나가면 다 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듣자 하니, 홍콩의 영향력을 줄이고 상하이를 국제 금융 도시로 띄우려던 우리 시 주석께서 요즘 고민이 많다고 하십니다. 물론 상하이 봉쇄로 인해 "자기 집에 갖혀 굶어 죽는" 시민이나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자살하는 시민, 그리고 긴급한 수술을 못해 사망하는 시민들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시리라 믿습니다. 중국 인민들은 중국이 자체 개발한 "시노백" 백신을 접종받았는데, 이 물백신은 코로나 예방 효과가 화이자 백신 등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인구당 중환자 병실 수가 홍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오미크론이 아무리 감기 취급을 받는다지만, 면역력이 떨어지는 노년층의 사망률은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제 중국이 "위드코로나"로 정책을 전환한다면, 14억 5천만 인구 중에 최소한 1억 명 이상은 오미크론 환자가 될 것이고, 그들을 치료할 의료 시설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고, 사망자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오미크론이란 놈이 과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친구인가? 하는 것이겠지요. 세계적인 방역 성공 국가였던 한국과 홍콩이 오미크론 한 방에 머쓱해졌듯이, 많은 전문가들은 오미크론이야말로 집단 면역을 통해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 마디로 국민 대다수가 걸려서 풍토병이 되어야 끝나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전세계 국가들은 권위주의 국가인 러시아와 중국이 "지도부의 체면이 구겨질까봐" 무조건 Go! 하는 일이 불러올 최악의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거 PMQ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또 옆길로 빠졌네요. 홍콩 방문 계획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다양한 소품 가게와 멋진 홍콩 빈티지샵이 몰려 있는 PMQ 방문을 추천합니다.

https://travel.naver.com/overseas/HKHKG6725566/poi/summary



센트럴에서 조금 벗어난 한적한 이 골목, 제게 안식을 주는 <커먼 그라운드>가 소재한 이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이미 좌석이 꽉꽉 차 있네요 이럴 때에는 또 계단 한 구석에서 책을 읽으며 자리가 빌 때까지 기다려야죠.  

그늘진 계단을 찾아 앉으니, <커먼 그라운드>의 분위기가 참 평안하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모인 듯한 여성 그룹은 떠들썩하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다른 한 편에서는 진지하게 독서하는 젊은이도 눈에 띕니다. 아, 자리가 비었으니 이제 저도 가서 앉아야겠군요.

커피 알레르기가 있는 저는 "말차 라떼" 원툴입니다. 아, 너무나도 커피가 마시고 싶네요. 오늘은 <고대 중국의 감정>이라는 책을 프린트해와서 읽는 중입니다.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저자(Curie Virag)는 섬세한 여성 학자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유튜브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지요. 비록 발표 때문에 긴장해서인지 다소 인상이 굳어 있지만, 마음씨 따뜻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LnqMVNG0fk

오후 4시가 되자, 선선한 바람이 골목을 가득 메웁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날씨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편한 사무실을 두고 굳이 여기까지 먼 길을 찾아오는 까닭이 있습니다. 여기 있으면 그냥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이제 5시 50분이 되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여전히 저녁 6시까지만 영업하는군요. 저녁 9시쯤에 이곳에 앉아 초여름 밤을 즐기고 싶었습니다만, 가능한 일이 아닌 듯합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섭니다.

저녁 식사는 해야 하겠기에, 란콰이펑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탐자이 삼거>로 들어섭니다. 이곳 누들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삼겹살에 마라 수프, 매운 정도는 레벨 4. <탐자이 삼거> 어느 매장을 가나 제가 기계적으로 읊는 레시피입니다. 질리지 않냐고요? 똑같이 주문하더라도 가게마다 맛이 다르고 심지어 내용물도 다릅니다. 저는 <페스티벌 워크> 지점을 수도 없이 들락거렸는데, 거기에서 제공하는 채소 건더기와 이 점의 건더기는 다릅니다. 당연히 맛도 다르겠죠? 그리고 국물도 이 쪽이 더 맵습니다. 여하튼 잘 먹었습니다!  

대로 귀가할 수는 없죠. 침사추이로 넘어가서 제가 즐겨 앉는 벤치에 착석합니다.  제가 앉은 자리는 등 뒤로 커다란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고급 차가게가 있습니다. 그래서 밤이 되어도 어둡지가 않아, 독서하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침사추이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받으며 홍콩 시민들과 함께 독서하는 기분을 이 때 아니면 언제 누리겠습니까. 게다가 침사추이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 천운을 누리는데 힘써야겠죠.

수시로 빨간 돛을 단 관광선이 지나다니는데, 제 옆 자리 여성의 촬영 자세가 매우 재미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거든요. 뒤로 잔뜩 기댈수록 좀 더 풍경을 가득 담을 수 있습니다. 조금 있다가 홍콩의 유명한 볼거리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한동안 볼 수 없었죠. 하지만 실제로 본 분들은 "별 것 없다"고 느끼실 정도입니다. 침사추이 근처 조던 역에 사는 저는 하도 많이 봐서 이제 감흥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보고 감흥을 느끼는 분들을 보고 감흥을 느낍니다. 원래 일요일 저녁은 제가 빨래하는 때입니다만, 오늘은 밤공기가 너무 좋아서 11시가 넘어 귀가하고 말았습니다. 빨래까지 하다 보면 취침 때를 놓쳐서 잠을 설칠 수도 있겠지요. 내일 하기로 하고 오늘은 샤워를 마친 뒤 익숙한 이불 속으로 파고듭니다. 또 다른 좋은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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