Ⅷ. 사토리 세대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2

경쟁이 아니고서는 이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는 ‘발전론’이 우리에게 가져온 불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경쟁은 결국 항상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을 동반하므로, 그들은 항상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가령 한국을 대표한다고 일컬어지는 어떤 대기업은 몇십 년째 위기경영체제에 들어가 있다. 아니, 어떻게 몇십 년 동안 계속 위기일 수 있는가? 그 회사가 21세기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해도 그 회사는 영원히 위기경영을 할 것이며, 그 회사의 직원들은 항상 구석에 몰린 쥐처럼 위기의식 속에 직장을 다녀야 할 것이다.

경쟁을 기본 베이스로 삼는 기업은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회사는 자신들의 경쟁자들에게 결코 너그러울 수도 없으며 관용을 베풀 수도 없다. 어찌 그렇게 하겠는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인데, 어찌 너그러움을 베풀겠는가? 경쟁을 베이스로 삼는 기업은 사방이 적(敵)이다. 어찌 사방에 적을 둔 기업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며 불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가 봐도 그 기업은 ‘보기 나쁘게 힘이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기업이 경쟁을 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가 우리의 관심사가 된다. 기업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던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경쟁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여기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 프랜차이즈인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를 창업하게 된 동기를 살펴보자. 그가 과연 사전 시장조사를 통해서 카페 라떼에 대한 고객들의 잠재 수요를 파악했기 때문에 스타벅스를 창업하게 된 것일까? 아니다. 그는 이탈리아에 출장 갔다가 그곳의 카페 분위기와 커피 맛에 흠뻑 빠져버렸다. 그는 자기를 이렇게 매혹시키는 아이템이 같은 미국인들을 매혹시키지 못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남들에게도 알려주기 위해 스타벅스를 만든 것이지, 결코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데 남들이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커피숍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데 남들이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해서 대박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사업자는 자기 사업에 대한 확신 및 전망을 전혀 갖지 못하고 ‘위기의식’만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좋아하지 않고 확신을 갖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컨설턴트의 견해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스타벅스와 유사한 프랜차이즈가 잔뜩 생겨서, 스타벅스도 더 이상 예전과 같이 급속히 성장하지는 못해. 그들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커피 프랜차이즈와 경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아?” 너무나 지당한 말씀인 것 같지만, 나는 이에 반대한다. 나는 스타벅스가 철저히 자기 자신이라면, 철저히 자기 자신이 되어서 그 자체로 남들과 구별되는 독창성을 지닌다면 경쟁을 통하지 않고서도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들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것 봐. 살아남으려면 독창적이지 않을 수 없지. 하지만 독창성 또한 경쟁의 한 수단이잖아. 결국 독창성을 다툼으로써, 살아남는 것 아닌가?” 너무나 타당하게 들리는 이와 같은 주장, 오늘날 경영학 교과서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나는 또 한 번 반대한다. 왜냐하면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창적이어야만 한다.”가 아니라 “독창적이면 살아남는다.”가 정답이기 때문이다. 또한 독창성은 서로 비교하거나 다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결코 아니다. 어떻게 독창성을 비교할 수가 있는가? 독창성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며, 오직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지 아닌지의 문제이다. 만약 누군가 어떤 제품을 내놓음에 있어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지 않다면, 그는 자기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요소를 타인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며, 그에 따라 ‘덜’ 독창적이게 된다. 고흐는 그 누구보다도 독창적이었지만, 그는 결코 다른 화가들과 경쟁하지 않았다. 그는 철저히 자기 자신이었기에 가장 독창적인 화가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겨난다. 우리는 단순히 여타 것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것을 독창적이라고 칭찬하거나 그것을 즐기고 구매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고흐의 그림은 분명히 색다르지만, 고흐만큼이나 차별성이 두드러진 예술가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어찌 고흐의 그림은 유독 그와 같이 사랑받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다시 감정 또는 감성의 문제로 되돌아간다. 즉 고흐의 그림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우리의 감정을 한껏 자극하고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무엇을 좋아한다고 할 때, ‘좋아함’은 곧 감정의 문제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 감정의 문제이지, 다른 무엇의 문제일 수 있는가?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은 ‘감성적’이다. 그 안에는 우리의 감정을 자극시켜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아이폰 제작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솔직한 감정이다. 즉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듬뿍 담아서 자신들이 정말로 좋아하고 확신하는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감정이 고객에게도 전해지는 것이다.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단순히 커피를 팔기 위해 그 브랜드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웃고 떠들고 대화하는 ‘행복한’ 이탈리아의 카페 분위기를 미국에도 옮겨오고 싶었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마냥 자신이 진정 행복하다고 느낀 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고흐와 잡스와 슐츠는 모두 관심분야가 다르고 나이도 출신도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자기감정에 충실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앞서 말한 한국의 대기업이 끊임없이 위기경영을 하며,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고 패배를 두려워하며 위기의식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대기업이 최대 경쟁자로 간주하는 회사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타인과 경쟁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그와 같은 생각이 지나쳐 때로는 오만으로 드러나기도 했지만, 잡스는 자기 자신을 믿고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폰을 내놓았다. 물론 그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좋아할 법한데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남들이 지적해줄 때 자신이 좋아서 받아들인 것이지, 결코 자신이 확신하지도 못하는 것을 남들이 지적해준다고 해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을 때에 그는 극도로 침체된 모습을 보였다.

나는 가장 경쟁적으로 여겨지는 분야에서조차도, 가장 성공한 두 기업이 전혀 다른 경영마인드를 갖고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을 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느 기업이 능동적 사고방식에 입각해서 의사결정을 하는가에 따라, 두 기업의 차이는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나는 스티브 잡스 사후 그 뒤를 이은 팀 쿡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과연 그가 스티브 잡스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에 따라 ‘아이폰은 철저히 감성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지 나는 아직 잘 알지 못하겠다. 중국 시장의 급부상으로 인해 아이폰의 판매 수익은 매년 끝을 모르고 높아지지만, 나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폰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제품도 감성적이지 않으면 팔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소비자의 구매욕구 또한 감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오직 철저히 감성적인 것만이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으며, 구매욕구를 일으킬 수 있다.

이상으로 사토리 세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을 능동적 인식과 수동적 인식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사토리 세대를 잘 분석한 것으로 정평이 난 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壽)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8부 완료. 9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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