Ⅸ.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분석해 보자-1

나는 사실 사토리 세대라는 단어를 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리토시의 저작을 접했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그 저작을 읽지 않았다. 소녀시대 태연은 한 방송에 나와서 자신은 노래를 받고 나서도 가이드 버전을 들어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이드 버전을 먼저 들을 경우, 그것에 영향을 받은 나머지 노래에 자기만의 느낌을 담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또한 일찍이 자신은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녹음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독창성이 방해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나는 소녀시대 태연만큼 진지하지도 않고 피아니스트 미텔란젤리처럼 유명하지도 않다. 내가 노리토시의 저작을 읽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이다. 동일한 주제에 대한 선행연구를 읽으면, 내가 동일 주제를 연구함으로써 즐거움을 놓치기 때문이다. 사실 학문하는 가장 큰 기쁨이 여태 모르던 것을 스스로 찾아내는 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렇다고 해서 타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서 사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서야 나는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연구물부터 샅샅이 읽어본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풀지 못했던 것을 선배들이 훨씬 이로 정연하게 해결해놓은 것을 접했을 때 내가 느끼는 기쁨과 감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토드 부크홀츠는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에서 영국이 낳은 위대한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을 다루면서, “전해 내려오는 케임브리지 전설에 의하면 난해한 수학 논문이 새로 출판될 때마다 마셜은 그 첫 단원과 끝 단원만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벽난로 앞에 가만히 서서 논문의 중간 부분을 다 추론해 내곤 했다.”라고 말한다. 부크홀츠는 물론 마셜의 천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케임브리지 전설을 인용했지만, 나는 마셜이 중간 부분을 추론해가면서 느꼈을 그 ‘고통스러운 기쁨’을 상상해본다.


하지만, 무슨 과제가 주어지기만 하면 무턱대고 선행연구부터 찾는 학계의 악습은 젊은 학자들로부터 고통스러운 기쁨 및 독자적인 사고력을 앗아간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많은 학자들이 그 독창성에 있어서 예능인들보다 못한 현실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왜냐하면 예능인들은 자기 자신을 지키면서 독창성을 드러내려 노력하지만, 학자들은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버리고 권위만을 좇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계의 모든 후배들이 한 줌에 불과한 선배들의 권위를 답습함에 따라 학계는 불행히도 고리타분해지고 획일화된다.


그러나 노리토시는 다르다. 그는 어떤 권위에도 이유 없이 굽히기를 거부하며, 오직 자기 자신만을 믿고서 자기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려 한다. 이 때문에 노리토시의 연구물은 너무나 재미있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의 연구물은 젊고 활기에 가득 차 있다. 사회학을 한다면서도 노리토시와 같이 현실에 직접 부딪히기보다 주로 국가나 연구기관이 내놓은 통계를 주무르는데 익숙한 ‘엉덩이 무거운’ 일부 사회학자들이 보기에, 노리토시의 저작들은 전문성이 결여된 장난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로부터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으며, 1985년생인 그가 앞으로 긴 생을 살면서 어떤 놀라운 글을 또 써낼지 몹시 기대가 된다. 지금처럼 그가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꿋꿋이 나아간다면, 아마 그는 21세기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 대한 분석을 따로 빼내어 하나의 장으로 만든 또 다른 이유들도 있다. 첫째, 나는 앞선 분석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점들을 노리토시의 논의를 통해 보강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나는 노리토시의 독자적 학문적 성과를 해치지 않음과 동시에, 내 견해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둘째, 나는 사토리 세대의 행복에 대해 노리토시가 내린 결론과는 견해를 달리 한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노리토시 본인조차 능동적 사고방식과 수동적 사고방식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 때문에 나는 노리토시가 놓쳤다고 내가 판단하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서, 노리토시의 저작을 따로 장을 만들어 분석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목차를 따라가며, 노리토시의 견해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Ⅷ. 사토리 세대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