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젊은이’의 탄생과 종언」에 대한 분석
노리토시는 1장에서 이른바 ‘젊은이론’ 또는 ‘세대론’이 지닌 문제점들을 철저히 파헤친다. 그에 따르면, 일본에서 ‘하나의 세대’를 가리키는 말로서, 즉 ‘청년’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때는 1930년대 후반부터다. 하지만 이는 노리토시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전쟁이 준비한 청년론’이었다. 어떠한 태생을 지닌 사람이든 모두 ‘평등’하게 ‘국민’을 위한 ‘병사’가 될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전쟁이 가져다준 일종의 ‘평등 환상’이 전쟁 동안 이루어진 젊은이론을 뒷받침해 주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당시 육군대장이었던 히리카시 다카시 등 소위 ‘이해력이 좋은 어른’들은 젊은이를 비판하기보다 찬양했는데, 그들은 대일본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젊은이들을 찬양하는 편이 그들을 전쟁터로 몰아내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 ‘젊은이론’은 주로 젊은이들을 꾸짖는 것으로 잠시 방향을 바꾸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유행했던 ‘아프레게르’라는 용어는 ‘戰後’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인데,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젊은이들을 총칭하는 말로 사용됐다. 그런데 이 말에는 허무적이고 퇴폐적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아프레게르’가 유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뒤흔든 ‘틴에이저’라는 젊은이들에 대해서 기성세대들은 다시 입장을 바꾸었다. 왜냐하면 틴에이저들은 소비문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으며,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는 상품을 팔아먹을 수 있는 좋은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젊은이는 고객이다’라는 주장이 비로소 탄생했다.
이렇게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며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젊은이들을 꾸짖거나 칭찬하는 기성세대들의 ‘젊은이론’도 딱히 ‘세대론’이라는 인식을 주기 어려웠다. 이노우에 슌이 지적했듯이 “세대론은 세대 내부의 개인적·계층적 다양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세대주의라는 발상은 위험하다.” 하지만 1970년대 전반에 걸쳐 대다수의 일본 사람들이 ‘나는 중산층이다’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으며, 이른바 저 유명한 ‘1억 명 모두가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세대론이 사회에서 유행하게 되는 때는 계급론이 현실성을 잃었을 때이다. 다시 말해서 1억 명의 일본인이 모두 중산계급이라면 더 이상 계급론은 의미가 없으며, 이제 세대론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세대론’으로서의 ‘젊은이론’의 원형이 완성되어 지금까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요새 젊은 것들은 말이야.”라는 기성세대들의 말투 속에는 그들이 알든 모르든 세대론으로서의 젊은이론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1990년대에 거품경제가 붕괴하고 이에 따라 중산층 붕괴론이 유행하면서, 이제 계급론을 무시한 젊은이론은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은 다양한 젊은이론이 춘추전국시대처럼 활약하고 있다.
나는 세대론으로서의 젊은 이론이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역사적 고찰을 통해 철저하게 파헤친 노리토시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는 그럴 경우 어떻게 젊은 이론을 세워야 젊은이들이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노리토시는 “이 책은 ‘젊은이’의 특징을 주로 20대가 가장 잘 체현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왔지만, 이것은 연령에 관계없이 ‘다른 젊은이들’에게도 공통된 이야기, 즉 이 나라의 ‘이야기’였다.”라고 밝힌다. 나도 이른바 ‘젊은이론’은 특정세대론이 아니며 남녀노소 보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사실 ‘젊은이’에 관한 다른 어떤 선행연구도 이 지점까지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볼 때, 노리토시의 통찰은 타의 추종을 불어한다.
하지만 그는 “돌아가야 할 ‘그때’도 없고, 눈앞에는 처리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게다가 미래에는 ‘희망’조차 없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 달리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왠지 행복하고, 왠지 불안하다. 우리들은 바로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절망의 나라에 사는 행복한 ‘젊은이’로서.”라고 어정쩡하게 결론하고 만다. 즉 그는 개인과 사회가 분리되어 존재하며, 이에 따라 ‘절망적 사회’가 쏟아내는 갖은 현상들에 눈 돌리고서도 개인은 여전히 소소한 ‘개인적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이분법적 해결을 제시한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이분법적 해결은 기존의 사회과학이론 어디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며, 딱히 노리토시 자신의 독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노리토시의 결론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존 학계의 반응이 더욱 놀랍다. 그들과 다를 바 없는 결론을 내린 노리토시의 주장 어디가 그와 같이 충격적이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나마 노리토시는 끝까지 자기 자신에게 솔직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와 같은 결론을 마음속에 품은 그 자신이 “왠지 행복하고, 왠지 불안하다.”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물론 왠지 불안하고 왠지 행복하면, 결국 행복하다기보다 불안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노리토시가 이토록 솔직하기에 그를 좋아하며,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그에게 기대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과 사회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개인이 사회를 무시하고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들어 노리토시의 결론을 반박한다. 그리고 노리토시의 결론은 자기 자신의 논의와도 어긋난다. 가령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일본의 젊은이들은 열정적으로 복구 작업에 참여했다. 그들에게 사회의 재난을 해결하는 데 봉사하는 것은 개인의 마땅한 기쁨이자 행복이었으며, 사회의 불행은 결코 자신과 동떨어진 외딴섬이 아니었다. 사토리 세대의 젊은이들은 결코 ‘개인이 사회와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논의를 다소 앞서 나가자면, 5장에서 노리토시는 사토리 세대들이 이와 같은 대참사를 ‘비일상적인 축제’로 인식해서 일상을 탈출하고자 하는 기회로 삼아 복구 작업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진실한 마음을 터무니없이 왜곡한 분석이다. 물론 나도 수 만 명이 운집하는 촛불 집회 등에는 일부 그와 같은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 생각 없이 집회에 나섰던 이들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이는 촛불 집회의 의미를 폄훼하려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도리어 수 만 명 가운데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야말로 촛불 집회의 순수성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에 눈을 돌리고 자신들만의 땅에 머리를 처박는 타조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일본 대지진 참사 복구현장에 몸소 나선 젊은이들이나 자신의 바쁜 시간을 쪼개어 촛불 집회에 참석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단지 ‘비일상적인 축제’ 분위기를 틈타 나왔다는 것은 너무나 현실에 동떨어진 분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사람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인해 엄청난 심적 고통을 겪었다. 과연 개인이 사회와 분리되어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어째서 수많은 한국인들이 세월호 참사로 인해 가슴 아파했겠는가. 그리고 그와 같은 여러 사회적 이슈들에 눈을 완전히 돌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노리토시 자신이 온당하게 지적했듯이, 사토리 세대는 결코 히키코모리가 아니며, 필요 이상의 소비를 하지 않을 뿐이지 필요한 소비를 위해 기꺼이 직장에 나가고 필요한 소비를 통해 동료들과의 소모임을 즐긴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사회와 분리되어 개인적으로 따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대해 추가로 논의해야 할 점들이 너무나 많지만, 앞으로 더 많은 논의들이 이와 관련되어 앞으로 다루어질 것이기에 여기에서 그치고 2장 분석에 들어가고자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