Ⅸ.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분석해 보자-5

노리토시는 자신이 행복의 조건을 ‘경제적인 문제’와 ‘승인의 문제’ 이 두 가지로 나누어 고찰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젊은이의 빈곤 문제는 현재의 문제라기보다는 앞으로 나타나게 될 미래의 문제이다. 하지만 대다수 젊은이에게 ‘미래의 문제’인 경제적인 빈곤과 달리, 승인과 관련된 문제는 비교적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미래의 ‘빈곤’보다 현재의 ‘외로움’이 더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리토시가 말한 ‘승인’이란 곧 주변 사람들의 인정 또는 교감을 의미한다. 즉 그의 ‘작은 세계’ 문제가 다시 여기서 부상한다. 즉 그는 ‘경제적인 문제’를 다룰 때 주로 사회와 같은 ‘큰 세계’와 관련해서 분석한다. 반면에 ‘승인의 문제’를 다룰 때 그는 연인이나 친구, 동료 등의 ‘작은 세계’와 관련지어 이야기한다. 결국 그가 2장에서 제시한 ‘작은 세계’ vs ‘큰 세계’ 이론은 마지막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이분법 구도가 결코 그 자신에게도 확신이 서지 않음은 다음과 같은 그의 고백 속에서 드러난다. “이 나라가 조금씩 침몰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직 장래의 일을 생각해 볼 시간 정도는 남아 있다. ‘기묘’하고 ‘뒤틀린’ 행복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나는 솔직하기 그지없는 노리토시가 자신이 생각한 행복을 기묘하고 뒤틀렸다고 표현한 대목이 매우 마음에 든다. 노리토시와 같이 솔직한 학자와 발전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에는 어느 누구나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옳든 그르든 나는 노리토시 본인이 분명치 않다고 고백하는 바로 그 지점을 그와 함께 논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노리토시를 포함한 모든 회의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노리토시가 큰 세계의 침몰을 주장할 때, 그는 경제적 면에만 치중해서 분석에 임한다. 즉 일본 경제가 침몰하면 일본 국민들 또한 불행해질 것임이 틀림없다고 그는 암묵적으로 가정한다. 반대로 나는 일본이나 한국의 국민들이 능동적 사고방식을 통해서 스스로 행복을 찾아간다면, 일본이나 한국 경제의 버블이 점점 자연스레 꺼져가며 경제는 연착륙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경제규모는 과거에 비해 줄어들 것이다.

경제규모의 크기와 행복의 크기를 달리 보지 않으며 GDP 지수와 행복지수를 동일하게 보는 이들에게, 내 이야기는 뜬 구름 잡는 유토피아적 망상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경험과 수많은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 토로를 참고해 볼 때, 모든 사람들이 진정 자신의 타고난 본성에 따라 행복하게 살면 경제 또한 그에 맞춰서 차분히 가라앉아 안정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큰 세계’와 ‘작은 세계’의 이분법은 필연적으로 지역 이기주의를 불러오게 되어 있다. 그들은 ‘큰 세계’와 상관없이 ‘작은 세계’만 행복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 ‘작은 세계’는 ‘큰 세계’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큰 세계’에 의해 지탱된다. 이제 ‘작은 세계’를 사랑하는 주민들은 자신이 속한 ‘작은 세계’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큰 세계’의 곳간은 눈먼 돈에 불과하니 털어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작은 세계’가 ‘큰 세계’에 의해 방해받는다고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공격적으로 변한다. 또한 불행히도 그들이 생각하는 ‘큰 세계’는 사실상 수많은 ‘작은 세계’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그들만의 작은 세계’에 대한 집착이 큰 주민일수록, ‘큰 세계’에 속한 여타 ‘작은 세계’ 주민들에게 배타적이고 공격적이기 쉽다.

나는 노리토시 본인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6장의 논의에서 뚜렷이 드러나듯이, 그는 일본에 자기 자신을 가둔 사람이라기보다는 세계시민에 가깝다. 그는 어떤 배타적인 태도도 보이지 않으며, 자신의 ‘작은 세계’ vs ‘큰 세계’ 이론이 행여 일본 vs 여타 국가의 전쟁 구도에 오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면 기꺼이 자신의 이론을 철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론이 여타 사회과학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자칫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을 그르칠까 염려된다. 따라서 나는 이 주제에 관한 한 어떤 선행 연구자보다도 노리토시를 지지하지만, 내 생각에 미흡하다고 보이는 점 몇 가지를 한 장(章)을 빌려 분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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