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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1] 주문진해변-강문해변 도보여행 (1)

오늘은 2023년 4월 1일 토요일입니다. 요즘 4월 1일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교복데이"라 해서,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마냥 교복을 입고 캠퍼스에서 봄을 즐깁니다. 다만 올해는 4월 1일이 토요일인지라, 주중에 교복파티가 있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성균관대학교에서는 경영관 앞에 교복대여소를 마련해서 학생들에게 교복을 빌려주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즐거운 장면이었습니다. 4월 1일은 아무래도 만우절로 가장 유명하겠지요? 하지만 4월 1일 만우절 이야기는 아무래도 이제 식상합니다. 저의 절친 가운데 1명이 4월 1일생이라, 이날 생일축하와 함께 놀림을 받는다는 것 정도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4월 1일은 홍콩의 배우이자 가수였던 장국영이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작년인 2022년 4월 1일에는 홍콩에서 그의 기일을 추모했는데, 세월이 참 빠릅니다. 작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아래와 같은 추모를 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올해 홍콩에 부임했더라면 참으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인데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https://www.yna.co.kr/view/PYH20230401058600074?input=1196m


요즘 운동부족으로 인해 제 평생 가장 배가 많이 나온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얼굴에 살이 없어 날씬하다는 말을 듣지만, 사실은 고무줄 달린 유사양복바지를 입고 강의에 임하고 있습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한다지만, 제 배는 전혀 미니멀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제는 <명륜진사갈비>에서 회식이 있어, 숨이 턱까지 닿을 정도로 단백질을 퍼넣고 또 퍼넣었습니다. 그래서 날씨도 많이 풀렸겠다, 오랜만에 뚝섬유원지역에서 팔당역에 이르는 제 최애 도보여행을 하기 위해 아침 6시 지하철을 탔습니다. 날씬한 허리에 단단한 체격의 할아버지들께서 무거운 가방을 지고서 튼튼히 서 계시는 것을 지하철에서 앉아 졸며 지켜봤습니다. 그래도 뚝섬유원지역 2번 출구로 나와 시원하게 펼쳐진 한강을 보니, 예전처럼 다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솟구쳤습니다. 하여, 새로 산 뉴발란스 슈즈와 튼튼한 데카트론 삭스를 믿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고요하게 흐르는 한강을 오른편에 두고 즐겁게 걷고 있는데, 눈앞에 강변역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주문진에 가서 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몇 달 전 스터디 모임에서 주문진해변과 강릉해변으로 워크샵을 가장한 엠티를 갔는데 정말 즐거웠거든요. 다만 차량으로 이동하는지라, 그 아름다운 해변길을 걷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반드시 걷겠다고 마음먹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때가 온 듯합니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T-MONEY GO> 앱을 켜서 버스표를 알아보니, 맙소사, 제가 가장 빨리 탈 수 있는 버스표는 딱 1장 남아 있었습니다. 본디 느긋하게 걷고 있었는데, 이제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입니다. 이 뚝섬-팔당 코스를 수십 번 왕복했었지만, 도중에 강변역으로 빠져나가본 기억은 없습니다. 낯선 코스를 타는 것은 항상 즐겁지요. 하지만 버스표를 끊기 위해(저는 앱결제보다 실물 종이티켓을 선호합니다) 창구 앞에 섰는데 그만 매진되어버렸다는군요. 그 10분 사이 시간에 누군가 저를 앞지른 겝니다. 풀이 죽어서 동서울버스터미널 안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갑자기 김이 새서 팔당까지 걷을 마음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 주문진으로 가지 못하면 그냥 강릉으로 갔다가 거꾸로 주문진까지 올라오지 뭐, 라는 심정으로 다시 창구를 찾았습니다. "강릉 가는 7시 40분 티켓으로 주세요." 그런데 창구 직원이 갑자기 눈을 번쩍이더니, 누군가가 주문진 티켓을 취소해서 1장 여유가 생겼다며, 주문진행으로 구매하시겠냐고 물어오셨습니다. 이렇게 챙겨주시다니,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아울러 이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말 하지 않고 주문진행으로 구매했습니다. 알고 보니, 강릉을 찍고 주문진까지 가는 버스였습니다만. 좋은 게 좋은 거죠.   


오늘 횡성휴게소를 거쳐 저를 주문진까지 편안하게 데려다 준 동해고속 시외버스입니다. 버스 안을 가득 메운 청춘들은 강릉시외버스터미널에서 줄줄이 하차했고, 2명의 어르신이 주문진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렸으며, 저는 종착역인 <주문진해변(청시행)>에서 홀로 내렸습니다. 11시 40분, 무려 4시간이 걸리더군요. 이 점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티머니 고> 앱으로 예약하고자 출발역과 도착역을 검색하면, "주문진시외버스정류장"과 "주문진해변(청시행)" 두 개가 뜹니다. 후자가 몇 백원 더 비쌉니다. 당연히 더 멀리 가겠죠. 이 버스의 최종 종착역입니다. 저는 "청시행"이라는 표현을 처음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해변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청춘의 시작은 여행이다"의 줄임말이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young70x/221536156480

대락 요런 느낌이었습니다(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왔습니다. 계절이 다르죠?). 하지만 오늘은 거짓말처럼 날씨가 화창한 만우절이었는지라, 저 사진보다는 훨씬 보기가 좋았습니다. 오늘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걷는데 집중하기로 했는지라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는데, 다음 번 도보여행 때에는 좀 더 많이 찍는 편이 좋겠네요.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90731.99099015991

저는 청시행비치가 방탄소년단 앨범 자켓 촬영지인 것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 평범한 해변에 어째서 동남아 여성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있는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아하, 조금 걷다 보니 여러 이정표들이 보였고 저는 사태를 파악했습니다. 너무나 행복해하는 그분들을 보니, 제 기분도 한껏 들떴습니다. BTS가 한국 관광에 공헌하는 바가 생각보다 매우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워낙 줄이 길어서 제가 끼어들기는 어렵고, 그냥 먼 발치에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청시행"이라는 네이밍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디 청시행 비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문진 해변과 맞닿은 향호해변의 일부를 떼서 그렇게 명명한 것이지요. 저는 기막히게 푸른 주문진 해변을 보고, 그냥 오늘 일정을 여기에서 접을까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만큼 아름다웠거든요. 하지만 오늘은 제 허리 둘레를 줄이는 도보 여행이 주된 목적인지라, 마음을 고쳐 먹고 다시 하행길로 들어섰습니다. 

잘 있거라, 주문진, 나는 간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주문진 해변에서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강문해변까지는 아무런 생각없이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계속 걸어내려가면 됩니다. 거리도 다소 짧아, 16.2km에 불과합니다. 제 걸음이 다소 빠른 편이긴 하지만 중간에 BTS 앨범 재킷 촬영지에서 소요하고 초컬릿도 사먹어가면서 여유를 부렸는데, 결과적으로 저는 3시간 10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쓰다 보니 예상치 못하게 글이 길어지네요. 2편에서 이어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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