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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난 양양 인구해변 죽도해변 여름 여행기 (1)

안녕하세요, 알이즈웰입니다. 이번에는 2023년 8월 15일에서 16일에 걸친 1박 2일 양양 인구해변 죽도해변 여름 여행기를 올릴까 합니다. 많은 이들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제 직업을 부러워합니다. 왜냐하면 무려 2달씩이나 되는 방학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에 대해 저는 다만 희미한 웃음으로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학에 근무하는 연구자는 단순히 가르치는 일 뿐만 아니라, 자기 나름의 연구 목표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 연구 목표는 학기 중에 지속가능하게 추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제 자신의 게으름이 가장 큰 문제이겠습니다만,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방학 기간이야말로 각종 업무에서 벗어나 "자기 연구"라는 본연의 일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래서인지, 제 주변의 교수들은 방학 때가 가장 바쁩니다. 저 또한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게 방학이 벌써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여름 휴가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8월 10일, 종로구청에서 진행하는 초등학생 대상 인성캠프를 마친 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그래도 해변은 한 번 보고 와야지!' 저는 부산 해운대 출신으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해도 여름 해변을 보지 않고 지나간 경우가 없었습니다. 올해도 스킵할 수 없었습니다. 참고로 제가 즐기고 싶은 것은 '바다'가 아닌 '해변' 그 가운데에서도 젊음과 열기가 가득한 해수욕장입니다. 홍콩에서는 침사추이에 살아서 매일 바다를 보았지만, 그래도 허전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모래사장이 없었고, 수영복을 입고 신나게 뛰어 노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 지금은 홍콩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군요. 여하튼 저는 후배 한 명과 함께 급히 8월 15일 공휴일에 양양 인구해변으로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숙소는 양양 종합버스터미널과 인구해변 시내를 연결하는 버스 정류장 코 앞에 있는 <만월도>로 정했습니다. 솔 게스트하우스를 위시한 어마어마한 클럽형 놀이공간과는 몇 블럭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곳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전 인구해변 여행 때도 눈독을 들였는데, 이번에는 여자 친구가 아닌 남자 후배와 가게 되었군요....라고 생각했는데, 여행 당일에 사정이 생겨 후배는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번에는 저 혼자서 힐링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2023년 8월 15일, 7호 태풍 '란'의 영향으로 인해 강원 영동 지방에 소나기가 예상되는 가운데 저는 6시 30분 첫 버스에 올라타서 동서울 버스터미널 역을 뒤로 하고 양양으로 출발했습니다. 사실 7월과 8월에 서울에서 인구해변으로 직통 왕복 버스를 운행하는 회사가 여럿 있는데, 제가 그 사실을 잊었습니다. 솔 게스트하우스에서 운영하는 버스 이외에도 액트립 등의 서비스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동서울이나 서울경부에서 버스를 타고 양양 종합터미널에 떨어지면, 다시 인구해변으로 들어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렸다가 타야만 합니다. 물론 인구해변으로 가는 마을버스(농어촌버스) 12번 등이 있기는 합니다만, 시골 버스들이 그렇듯이 언제 도착하고 출발할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띄엄띄엄 다녀서 잡아 타기도 쉽지 않고요. 그냥 서울에서 인구해변이나 하조대 서피비치로 곧장 가는 셔틀 버스를 타는 편이 가장 좋습니다. 


새벽같이 출발했다 보니, 인구해변 <만월도> 맞은편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뭐, 그래도 6시 반에 출발한 것을 생각해보면 4시간 가까이 걸렸죠. 강남 쪽에 거주하시는 분들의 경우, 평일에 자가용으로 쏘면 2시간 안에도 도착한다 합니다. 속초양양 고속도로가 왜 신의 한 수인지 잘 알 수 있죠. 하지만 원래 관광지란, 오전에 도착한다고 해서 딱히 뭐 할 일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만월도>의 빈티지한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저는 그만 놀라고 말았습니다. 여기 카운터를 보시는 서퍼 분의 외모는 그야말로 조각상 같았습니다. 작은 머리에 큰 키, 쭉 뻗은 팔다리에 슬림탄탄 근육, 무엇보다 정말로 시크한 듯 잘생긴 그 외모는 <만월도>를 방문하는 여성들을 설레고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특정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도 충분했지만, 제 성정체성이 그 쪽은 아닌지라 저는 간신히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만월도>에서 숙식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도, 이곳 커피&바를 이용할 겸 한 번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온몸을 어지럽게 덮고 있는 문신마저도 사납지 않고 멋져 보이는 그런 분입니다. 

참고로 대부분의 서퍼들이 그렇듯이, 친해지기 전의 그들은 굉장히 시크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얼이 빠질 정도로 다정다감하게 대해주지 않으면 금세 불편해지는 "프로불편러"라면, 차라리 방문하지 않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 간지나는 시크남들이 카운터를 맡은 <만월도> 관련 글들에 악플이 담기는 슬픈 상황을 감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뭐, 심지어 40대 노인인 제게는 무척 친절하기까지 했습니다만, 이 간지남들과 대화하고 싶으시면 나이나 취미, 사연 등을 묻지 마시고 곧바로 '서핑'에 대해서만 질문하세요. 그러면 간지남스럽지 않게 2시간 동안 오디오가 비지 않을 정도로 수다쟁이가 되는 그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 서핑에 미친 멋쟁이들은 으레 그렇더군요. 뭐,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겠지요. 아, 여기에는 시원한 미소를 자랑하는 여성 서퍼분도 계십니다. 이 분은 처음부터 매우 다정다감하시니, 시크함으로 인한 상처 등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16시(오후 4시)에 체크인인데, 무려 오전 10시에 도착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아무런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2층 루프탑으로 가는 좁은 계단 옆에 무심하게 짐을 툭 던져놓고 놀러나가면 되니까요. 사진 오른쪽 깊숙이 자리한 야자수 옆에 툭 던져놓으시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제 공식 일정을 8월 15일 오전 10시 반에 시작했습니다. 


본디 인구해변으로 들어오는 시외버스는 <만월도> 코앞에서 정차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8월 말까지는 성수기라서 진입하는 차량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불행히도 버스가 시내까지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을버스는 그렇지 않아서 드물게 왔다갔다 합니다. 그 덕분에, 저는 내일 아침에 주문진 버스터미널까지 그냥 걸어갈까 생각해 봅니다. 12km밖에 되지 않고 해안을 따라가는 평지 코스인지라, 2시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물론 내일 아침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지요. 피곤에 찌든 얼굴로 맞은 편 정류장에서 주문진으로 향하는 마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 남녀들을 보니, 어제 아주 열정적으로 놀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몇 달 전 사장님 사정으로 문을 닫은 짜장면 3천원의 신화 <인구반점>과 인구해변 고인물 서퍼들의 놀이터인 <스톤피쉬>를 지나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태풍 란의 영향으로 하늘은 흐릿해서 선크림을 바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물론 쨍쨍하니 푸른 하늘도 좋습니다만, 흐릿한 하늘에 커다란 파도가 넘실거리는 이 날이 서퍼들에게는 천국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느끼지만, 서핑 강습을 받는 사람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나 서핑을 즐기는 여성들의 증가가 괄목할만 한데요, 일단 서핑을 배우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표정은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운동 내내 즐거운 표정 짓기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10km 달리기를 하는 이들 가운데 웃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축구나 농구 또한 즐겁기는 하지만, 하는 내내 웃음꽃이 터지지는 않지요. 하지만 서핑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항상 어린애와 같이 맑고 밝습니다. 뭐, 프로 서퍼들의 경우는 즐겁게 타기 보다 이기기 위해 탈 수밖에 없으므로 또 다를 수 있겠네요. 제 이번 여행의 버킷리스트에 서핑은 들어있지 않기에, 어슬렁거리며 인구해변에서 죽도해변으로 넘어갑니다. 


인구해변과 죽도해변은 죽도를 사이에 두고 갈리는데요, 매우 흥미롭고 바람직하게도 두 해변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흔히 "젊은이들의 성지"라고 알고 있는 "양양"은 "양양군 현남면"에 자리한 인구해변입니다. 그곳에는 바베큐파티로 유명한 <솔게스트하우스>, <스케줄청담>의 양양 브랜치인 <스케줄양양>, 촌스런 이름과는 달리 핫하디 핫한 <인구시장> 등이 몰려 있죠. 그래서 밤새도록 클럽 음악이 빵빵 터지고, 길거리에는 근육 몬스터들이 어슬렁거리며 신나게 흔들어댑니다. 요즘 가장 핫한 <양리단길라운지>도 인구해변 뒷쪽에 자리하고 있죠. 

https://www.youtube.com/watch?v=ZbtVeKiR4E0  

반면에 죽도해변은 상대적으로 한적하며, 서퍼들과 가족들이 많이 찾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아싸"는 "양양"에 가서 놀기를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구해변이 아닌 죽도해변에서 어슬렁거리며 힐링하면 되거든요. 물론 극성수기에는 인구해변에서 넘쳐나는 인파들이 죽도해변까지 장악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8월 15일에 방문했을 때에는 그런 상황이 전혀 없었습니다. 새만금에서 잔뜩 고생했던 잼버리 대원 일부가 죽도해변에서 캠핑을 하면서 놀고 있었고, 가족 단위 모임들이 많았습니다. 참고로 파도 또한 인구해변보다는 죽도해변이 훨씬 셉니다. 그래서 실력파 서퍼들은 죽도해변 쪽에 더 많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제 공식일정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요? 물론 올해 초 방문한 뒤로 몇 개월 동안 보지 못했던 인구해변과 죽도해변, 동산항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추억을 음미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저는 죽도해변을 바라볼 수 있는 CU 편의점을 찾았습니다. 제 브런치스토리에서 거듭 언급했지만, 저는 16:8 간헐적 단식을 제 라이프스타일로 삼고 있습니다. 평상시는 아침을 거르고, 점심과 저녁을 8시간 안에 먹고 있죠. 최근에는 자연식물식을 결합했습니다. 물론 저는 비건이 아니며, 종교나 철학적인 이유로 해서 채식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채식만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소주와 맥주, 고량주, 쇠고기, 돼지고기, 양고기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부지런히 집어넣습니다. 맛있으니까요! 다만 기능적인 측면에서 볼 때, 자연식물식이 가장 제 몸 상태를 "가볍고 가뿐하게" 해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혼자 또는 평소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할 때, 저는 자연식물식에 가장 가깝게 먹습니다. 

그리고 16:8 간헐적 단식의 기초 철학은 "과식을 하지 말자!"인데, 우리를 과식하게 만드는 주범이 2개 있습니다. 바로 "양념"과 "국물"입니다. 여기에서 양념이란 샐러드에 올라가는 드레싱까지 포함한 것입니다. 또한 맵고 짠 국물 요리들은 단연코 과식의 제1 주범입니다. 물론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ZRWq9vYEgs

<국물을 버리면 몸이 변한다. 하루 세번, 나를 살리는 습관 (KBS 20230201 방송)>

그래서 저는 일단 쌀밥과 두부, 채소 이 3가지를 주된 식단으로 하고 거기에 국물요리를 제외한 싱거운 반찬을 한 두 가지 곁들이고 있습니다. 혹시 채식을 하면서도 자꾸 살이 찐다거나, 건강식이라고 추천받은 식단을 하면서도 몸에 힘이 없으신 분들은 일단 딱 2주일만 쌀밥과 두부, 채소만으로 식사해보시길 권합니다. 다만 채소를 찍어먹을 쌈장이나 드레싱, 두부를 찍어먹을 간장, 그리고 쌀밥에 곁들일 국물이나 기타 양념들을 일체 써서는 안 됩니다. 오직 쌀밥과 두부, 채소만 드셔야 합니다. 2주 정도 그렇게 먹어도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양은 상관없습니다. 먹고 싶은만큼 마음껏 먹어도 됩니다.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쌀밥과 두부, 채소만으로 식사할 경우에 자동적으로 어느 정도 이상은 먹지 못합니다. 절대 과식할 수 없고, 소식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내 몸 상태에 가장 적합한 "정량"을 오직 이 방법으로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간장게장은 밥도둑입니다. 양념을 추가할 때 우리는 과식합니다. 하지만 쌀밥만을 먹을 경우는 과식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양질의 단백질을 제공하는 두부는 포만감이 매우 큽니다. 두부 1모를 양념 없이 앉은 자리에서 뚝딱 해치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채소는 칼로리가 없고 소화가 빨리 되기 때문에 포만감을 주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탄수화물 섭취가 두려워서 쌀밥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는 예민해지고 날카로우며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허기져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상추나 깻잎 등으로 배를 채우고자 마구 입에 밀어넣어도, 어느 정도 이상은 절대 먹지 못합니다. 참으로 신기하지만, 오직 이 방법으로만 우리는 현재 내 몸 상태에 가장 적합한 "정량"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일단 2주만 이렇게 하면 입맛이 매우 싱거워지면서 쌀밥과 두부, 그리고 야채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아울러 자극적인 음식을 일부러 찾아먹지 않게 됩니다. 이제 자신의 입맛에 자신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하루에 섭취해야 할 칼로리 양 충족 및 영양 밸런스를 위해서 조금씩 다른 반찬을 한 두 가지 추가해도 됩니다. 저의 경우에는 김치를 추가했습니다. 김치는 양념이 진한 음식이지만, 저는 김치를 퍼먹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조그만 김치 조각을 두부에 얹어서 먹는 정도이지요. 그래서 어쩌다 보니 쌀밥과 두부, 채소, 그리고 김치 이렇게 4가지만 매 끼마다 계속해서 먹고 있습니다. 점심과 저녁 중간에 배가 고플 때에는 바나나 등의 간식을 추가로 먹고 있습니다. 이렇게 몇 주 하다 보면 정말로 몸이 "가뿐해지고 가벼워집니다." 아, 자연식물식을 겸한 16:8 간헐적 단식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따로 글을 쓰겠습니다. 여기에서는 제가 편의점에 들어가서 햇반과 두부, 그리고 김치를 사서 나왔다는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아니, 여행 가서 좀 맛난 거 먹어야지, 양양까지 가서 뭐하는 겁니까?!"라는 시큰둥한 반론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동안 양양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거기 있는 맛집들을 섭렵했습니다. 딱히 찾아서 먹고 싶은 요리가 이제 없습니다. 물론 저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므로, 제가 먹고 싶다면 얼마든지 맛집들을 찾아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여행하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별로 그러고 싶지가 않네요. 그래서 저는 파도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죽도해변의 풍경을 즐기면서, 다리를 꼬고 앉아 느긋하게 제 오늘 첫 끼를 즐겼습니다. 강원도에 왔으니, 강릉초당순두부 한 모 정도는 먹어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양이 너무 많아, 결국 <만월도>의 냉장고에 보관해야만 했습니다. 여하튼 첫 끼니를 마무리한 뒤, 저는 한 손에 책을 들고 어슬렁어슬렁 동산항 쪽으로 향했습니다. 

죽도해변을 따라 양양의 대표 인도네시아 요리 전문점 <와룽빠뜨릭>을 향해 데크 길을 걷노라면, 바다를 면한 흔들의자를 여러 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 흔들의자에 앉아 얼굴에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독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제가 가장 앉고 싶었던 의자가 비어 있어, 저는 냉큼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제 눈 앞에는 미국인 두 커플이 부지런히 주황색 텐트를 치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미국인이라고 판단했나면, 거대한 체구의 두 여성이 모두 성조기가 그려진 비키니를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해변에서 비키니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래쉬가드가 대세니까요. 수영하고 놀기에는 사실 래쉬가드가 훨씬 낫습니다. 비키니는 이태원 해밀턴 수영장 풀파티 때에 요긴하겠지요. 그 외에 잼버리 대원들이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었으며, 갈매기들이 한가로이 모래사장에 앉아 뭔가를 쪼아먹고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평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몇 번씩 읽어도 여전히 좋은 <삶을 향한 완벽한 몰입>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 인생의 모토 가운데 하나가 <슬로 앤 미니멀 Slow and Minimal>인데, 작가인 조슈아 베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니멀리스트입니다. <작은 삶을 권하다>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그가 2022년 코로나 팬데믹 때 쓴 책이 바로 아래의 <삶을 향한 완벽한 몰입 Things that matter>입니다.

조슈아 베커는 이 책에서 '심플 리빙'은 수단이며, 의식적이고 목적 있는 삶을 사는 것만이 본질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합니다. 저 또한 이 내용에 동의합니다. 이 책에 대해서도 따로 글을 써서 설명해야겠군요. 지금은 다만 파도 소리를 들으며 흔들 의자에 앉아 독서하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스마트폰을 아예 꺼놓고 들고 오지 않은 탓에 사진을 찍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적어도 독서할 때만큼은 스마트폰과 작별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흔들의자를 앞뒤로 밀면서 어린아이처럼 정신없이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배가 고파 손목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3시였습니다. 간식타임이 되었지요. 인구중앙길, 흔히 "양리단길"이라고 불라는 그 거리에는 다양하고 개성 있는 레스토랑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하와이새우트럭> 근처에, 야외 테이블을 겸비한 CU 편의점이 있습니다. 흠뻑 젖은 서퍼들이 주로 거기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데요. 제가 바나나를 사러 갔을 때에는 백종원 도시락을 먹고들 있었습니다. 보는 순간 확 당겨서, 저도 흑미밥에 돼지고기, 감자조림이 포함된 백종원 도시락 하나를 집어들고 전자레인지에 냉큼 집어넣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비건도 아니고 자연식물식 맹신자도 아닙니다. 가끔씩 이렇게 먹고 싶을 때는 또 먹으면 그만이지요. 평소에 입맛을 담백하게 해놓으면, 이제 자극적인 요리를 더욱 꿀맛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은 바로 사람 구경입니다. 서울 시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엄청난 문신들을 한 간지 남녀들이 여유롭게 제 앞을 지나칩니다. 정말 멋집니다! 여름 해변은 육체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자기가 좋아서 몸을 가꾼 경우도 있고,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어 몸을 만든 경우도 있겠지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몸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운동 뿐만이 아니라 식단과 휴식 또한 엄격하게 가져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멋지게 몸을 가꾼 남녀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들은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느긋하게 간식으로 도시락 하나 때리고 난 뒤, 저는 산책 삼아 죽도해변에서 인구해변을 거쳐, 해송교를 건넙니다. 해송교와 휴휴암 사이에 또 조그마한 모래사장이 하나 있습니다. <양리단비치x플리즈웨잇서프>라는 간지 철철 넘치는 건물(솔게스트하우스 옆에 자리한 분홍빛 건물 아닙니다!)를 하나 지나면, <영자민박>을 비롯한 소소한 숙소들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가 어찌나 큰지, 저는 그곳에서 낚시를 즐기는 아저씨들과 함께 물보라를 맞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방파제 안의 파도는 당연히 고요해서, 진정한 가족 물놀이는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2023년 8월 15일과 16일은 온종일 비가 내린다고 예보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기 예보는 보기좋게 틀렸고, 저는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녹초가 되지도 않은 채 집채만한 파도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을 모래사장에 풀어놓은 채 낚시에 흠뻑 빠져 있는 아빠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다보니 어느덧 7시가 넘어 주변이 점차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들과 작별을 고하고 인구중앙로에 자리한 농협에 가서 햇반과 물을 샀습니다. <만월도>에 돌아와 햇반을 데운 뒤 냉장고에서 남은 두부를 꺼내들고 인구해변으로 나가 벤치에 앉아서 배불리 먹었습니다. 헌팅을 목적으로 방문한 근육남들에게는 아쉽게도, 태풍이 예고되었던 터라 해변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해변에 잘 차려놓은 바(bar)에서는 EDM 음악들이 터져 나왔지만, 사람들의 환호와 섞이지 못한 채 공허하게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제 저만의 저녁 일정을 위해 다시 죽도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다음 편은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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