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에는 "릴라(lila)"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신(God)의 놀이(play)라는 의미이지요.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계를 힌두교에는 신의 유희라고 보았습니다. 이 때문에, 힌두교도들은 힘든 삶 또한 신의 놀이 가운데 일부라 보고, 숨 쉴 틈을 찾게 되지요.
우리네 생업이 놀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이럴 때는, 적어도 취미 생활만큼은 신의 놀이에 값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세상 모든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놀이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국책은행에서 근무했을 당시, 회계관리를 끔찍히 사랑하던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숫자들이 딱딱 맞아들어가는 데에서 말 못할 쾌감이 온다고 했지요. 저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존중만큼은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제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틀리거나 괴상한 것이 아니니까요. 이 세상에 동일한 것은 단 하나도 없으며, 모든 것은 신의 서로 다른 유희에서 비롯된 것일 따름이지요.
제가 QWER을 좋아하며 그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양한 재미로 풀어낼까 고민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남들이 야구장이나 골프장에 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듯, 제가 QWER 관련 콘텐츠들을 생산해내는 것 또한 전혀 괴이쩍지 않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다수의 취미가 아니거나 자신에게 맞지 않는 취향은 이상한 것으로 취급하죠. 한 걸음 더 나아가, "틀린" 것으로 여깁니다. "저 나이에 해서는 안 되는" 취미라고 판단해 버리죠. 이 때문에 우리 모두는 자기도 모르게 타인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끊임 없이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취향 또한 무시 당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간단한 상식에 입각해서 말이지요.
<온 세상이 QWER이다> "출판 놀이"를 끝내고 나니, 뭔가 새로운 놀거리에 대한 욕구가 생겼습니다. 물론 QWER 관련 콘텐츠면 좋겠죠. 그리고 그 놀거리는 제 생업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시간과 노력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거나 QWER 오프라인 행사 참여하는 것 이외에 또 어떤 놀거리가 있을까요? 겨울이 다가오면서 QWER 오프라인 행사도 줄어들 예정이니, 행사 참여 시간만큼 다른 것들을 해보면 어떨까요? 고민하던 저는 바위게(QWER 팬덤)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QWER을 잘 모르는 친구들을 바위게로 끌어들이는 컨셉으로 2편 정도 촬영하면 꽤나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바위게들끼리 주책맞게 모여 앉아 QWER 잡담으로 1시간 넘게 떠드는, 말하자면 <침착맨 초대석> 같은 컨셉을 기획했었습니다. 그러나 제 주변 바위게들을 섭외하려 했지만, 다들 얼굴 노출을 꺼렸습니다.아쉽지만 프로불편러의 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지라, 그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온라인 영상에 출연하는 것을 숨 쉬듯 자연스레 여기는 학부생들을 만나서 의견을 타진했습니다. 친한 학부생이라고 해 봐야, 제 업무를 도와주며 저를 잘 아는 근로장학생 뿐입니다.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도 부탁하기가 쉽지 않죠. 제가 바위게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학생들이니까요. 그래서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캠퍼스에서 제 일을 돕는 근로장학생 "마키마"에게 제안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었습니다. 그녀의 평소 헤어스타일이 <체인소맨>의 히로인(?) "마키마"와 유사해서 제가 붙인 별명입니다. 만화 속 마키마와는 달리, 마음씨가 천사 같은 착한 학생입니다.
저와 마키마 둘 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점심 시간을 활용해서 1시간 만에 촬영을 끝냈습니다. 세팅 시간이 30분, 실제 촬영시간이 25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점심 시간을 빌려 편하게 찍은 일상 브이로그 분위기를 내고 싶었습니다. 저와 마키마 소개, 제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바, 제가 참석했던 축제 등이 이번 영상의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설명은 영상에 나오니, 따로 적지 않겠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나서는 항상 후회가 남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게스트를 모셔 놓고, 이 분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에 대한 아쉬움이죠. 바위게가 아닌 분을 모시고 QWER 이야기를 하는 컨셉이었는지라, 대화 지분의 대부분이 제 몫이었습니다. 마키마는 평소에 싹싹하게 말을 잘 하는 사교성이 높은 친구입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주제(QWER)가 나오면 눈치 없이 계속 떠들어대는 제가 폭주하는 바람에, 그녀는 제대로 말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과연 그녀를 바위게로 만드는데 제가 성공했을까요?
착하고 예의 바른 마키마는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함께 촬영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브런치스토리를 연재하면서 또 다른 놀거리를 런칭하기에는 제가 힘이 모자랍니다. 애초에 기획했던 대로 1편 더 찍고, 저의 짧은 일탈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영상을 기획하고 촬영하는 과정 내내 즐거웠습니다. 또 한 번 멋지게 "릴라"했습니다. 촬영을 함께 해 주신 마키마에게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재 바위게는 앞으로도 또 다른 "QWER 놀거리"를 찾아 신나게 즐겨볼까 합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현생에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덕질하며, QWER과 동반성장합시다! 알이즈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