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대학원 후배들과 혜화역 <하나마토>에서 가볍게 한 잔 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일본풍 이자카야인데, 널찍한 실내 공간과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안주들이 준비되어, 제가 자주 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배경음악으로는 일본 가수들이 부른 크리스마스 시즌 송이 메들리로 계속 흘러나왔죠. 그렇습니다! 이제 12월말, 크리스마스 시즌입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거리에서 캐롤 송을 듣기 어려운 2024년 대한민국, 크리스마스 시즌 때에 들을 만한 QWER 곡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밝은 분위기를 내고자 한다면 <메아리>가 딱입니다. <메아리> 도입부 종소리는 아리아나 그란데 <Santa tell me>의 시작 부분과 일치합니다. 제가 19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때 자주 들었던 "고등학교 수업 시간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미.도.레.솔.~~솔.레.미.도.)" 바로 그것이지요(요즘은 이 벨소리를 안 쓸 수도 있겠네요, 제가 아재라...). 여하튼 2014년에 발매된 아리아나 그란데의 캐롤송에 익숙한 우리에게 <메아리>의 도입부는 당장 크리스마스를 연상케 하죠. 시요밍 또한 아리아나 그란데의 <Santa Tell Me>를 커버했습니다. 다소 수줍은 시요밍의 보컬이 오히려 매력적인 이 커버를 들을 때마다, 저는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 없습니다. 아마 지금의 시요밍은 이런 방식으로 부르기 어려울 테니까요. 2024년 12월을 기준으로, QWER이 부른 유일한 캐롤송이네요. 그래서 그 때도 좋고, 지금도 좋습니다. 알이즈웰(All is well), 다 좋습니다!
반면에 차분한 분위기를 내고 싶다면, <고민중독> 답가인 <마니또>가 어떨까요? 저는 요즘 퇴근길에 쵸단의 <마니또>를 자주 듣습니다. 듣다 보면 참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며 절로 미소 짓게 됩니다. 사실 이 곡도 명곡의 반열에 들어 마땅한데, 라이브 공연에서 듣기 어렵다 보니 팬사이트에서 관련 글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죠. 게다가 예능천재 마젠타가 "I know it's you~"를 "알고 있슈"로 조롱했던 것이 워낙 커서, 제 귀에도 이제는 "알고 있슈"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고민중독>에 답하는 가사라는 점에 유의해서 듣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져면서 코끝이 시립니다. <고민중독>과 <마니또> 두 곡을 놓고 보면, 시요밍의 목소리는 여름이자 한낮이며, 쵸단의 목소리는 겨울이자 한밤입니다. 쵸단이 자정 넘어 개인방송을 하면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저는 그녀의 목소리가 고급 호텔 라운지바의 재즈 싱어에 어울린다고 항상 생각해왔습니다.
QWER의 코어 팬덤인 바위게는 핵인싸들이 모인 집단이기에,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나 25일 성탄절 당일에는 QWER 컨텐츠를 볼 시간이 없겠지요.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만...여하튼 저는 12월 24일 오후에도 계절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해서 직장인들이 출근까지 접을 일은 없겠지요. 무엇을 즐기든, 퇴근 시간 이후에 일어날 일들이니까요.
제 브런치는 "40대 아재의 덕질 일기"입니다. 만약 QWER의 역사만을 기록하는 재주라면, 저보다 챗GPT가 낫겠죠. 물론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역사책 또한, 이제 사람보다는 AI가 훨씬 자세하고 정확히 쓸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인간이 감수를 하는 마무리 작업이 아직까지는 필요하겠지만 말이죠. 다만 AI는 제가 아니기 때문에, 저만의 덕질일기를 쓸 수는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나만의 덕질 문학" 장르가 향후 여타 글쓰기 장르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 봅니다. 이미 AI가 몇 분만에 쓴 동화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사례도 있으니까요. 인간이 만든 예술품 가운데 상당수는 앞으로 AI의 작품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다만 개인의 취미 생활에 관한 개인적 에세이만큼은 아직까지 AI가 넘볼 수 없는 비밀의 화원입니다.
왜 이렇게 서두가 길었느냐? 크리스마스 이브에 중년 싱글남 셋이 모여 즐기는 술자리는 AI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놀랍게도 3명 가운데 2명이 바위게였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자축하는 자리이지만, 아이돌에 전혀 관심이 없는 "수유G"를 바위게로 만들려는 속셈도 있었습니다. 수유G는 제 대학원 선배인데, 수유 역 근처에 살기 때문에 이와 같이 명명했습니다. 노원역 근처 닭집에서 시작된 우리 모임은 이자카야를 거쳐 수제맥주를 파는 <미학맥주>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세 명 모두 "부어라 마셔라" 스타일이 아니라 맛있는 맥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타입이라, 일찍 끝났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수유G를 바위게로 포섭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요즘 <포토이즘>에서 "QWER 프레임"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벤트가 진행 중입니다. 수유G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셀프사진관을 방문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오늘을 기념하는 의미로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다른 바위게인 노원K 선배는 항상 오케이죠. 노원역 앞에 위치한 <포토이즘>에 들어서니, 수많은 선남선녀들이 줄을 서서 사진 찍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여하튼 이런 비지니스 하나는 기가 막히게 세팅합니다. 저도 제가 앞장서서 들어온 적은 처음이라, 사실 내부 구조를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화장대가 있더군요. 거기서 젊은 여성분들이 부지런히 화장을 고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소품들을 골랐지만, 결국에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포토부스에 들어서서, 저는 "앙코르" 버튼을 찾았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인기 있었던 연예인 프레임들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페이지를 몇 번 넘기다 보니, 드디어 QWER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타임 당 하나의 프레임밖에 쓸 수 없다는 것을 아재 바위게들은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다시 말해 멤버 4명 가운데 한 명만 골라야 했죠. 논의 끝에, 오늘은 "따뜻한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젠타맘" 마젠타 프레임으로 결정했습니다. 사진을 8번 찍고 그 가운데 4개를 고르는 시스템이더군요. 저도 남들 손에 끌려서 들어온 적은 있지만, 제가 직접 포토기계를 다뤄본 적은 처음입니다. 세 명의 싱글남들은 사진 찍는 스킬이 부족해, 허둥지둥거렸습니다. 그래도 제법 만족스럽게 4컷을 찍었습니다. 이제 마젠타의 프레임에 갇힌 수유G, 당신도 이미 바위게! 솔직히 셀프사진관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왜 가지?"라는 심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번 다녀보니, 이유를 알 수 있겠더군요.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렇게 소중한 추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는게 참 좋았습니다.
귀가해서 모든 정리를 마치고 잘 준비를 하는데, 밤 11시 반 경에 마젠타가 트위치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 당일을 바위게와 함께 보내고 싶다는 맘으로 말이죠. 솔직히 마젠타가 개인 방송을 할 것이라 예상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꾸준함의 여왕" 마젠타이니까요. 다만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당일에 태국 방콕으로 출국하는 일정이 잡힌 QWER이라, 이렇게 늦게 방송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일찍 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녀는 크리스마스 산타 복장을 하고 축하 케이크를 먹고 노래를 부르며, 바위게들과 함께 했습니다. 저는 너무 졸린 나머지, 녹화를 해놓은 상태로 곯아떨어졌지만 말이죠. 결국 마젠타는 1시간 가까이 개인 방송을 진행하며, 크리스마스 당일까지 바위게들과 함께 파티를 즐긴 뒤 방송을 마무리했습니다.
[241224 케이크를 먹는 마젠타]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저는 아침부터 일감을 싸들고 집 근처 카페를 찾았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강의가 추가되어, 준비할 것들이 태산이었죠. 오후에도 식사 후 잠시 산책한 뒤,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QWER 자체 콘텐츠가 올라왔습니다. 마카오에서 미리 보낸 크리스마스 특집이었죠.
멤버들끼리 꽁냥꽁냥하고 놀 때 가장 재미있는 QWER의 자체 콘텐츠! 마카오 TFT 오픈에 참석한 QWER이 현지에서 "바위게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연다는 컨셉이었는데요. 언니즈(쵸단, 마젠타)와 동생즈(히나, 시요밍) 두 팀으로 나뉘어 파티 용품들을 준비한 뒤, 호텔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콘텐츠의 재미 포인트가 달라지는데요. 저는 여기서 동생즈를 향한 언니즈들의 배려심에 감동했습니다. 특히 뒷굽이 까졌는지 다리를 절룩거리는 시요밍을 위해, 마젠타는 뒷굽이 말랑한 슈즈를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그것을 구입할 경우 100만원이라는 예산을 초과하게 되지만, 결국 언니즈는 사비를 보태서 동생들을 위한 신발을 구입했습니다.
그 외에도 20대 여성 4명이 선물을 고르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솔직히 시커먼 남성들은 어째서 여성들이 온종일 기프트샵에 머무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지요. 저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그런데 QWER의 멤버 4명은 서로를 위한 선물을 고르는데 무척이나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들이 얼마나 서로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지니고 배려하고 있는지 잘 드러났죠. 쉽게 말해, QWER의 쇼핑은 "물건 구입"이 주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선물을 고르는 과정에서 수다를 떨면서 우정을 다지고 확인하는 일종의 사교 행위였죠. 저는 이 나이를 먹도록 이런 과정들에 대해 무심했습니다. 왜냐하면 구매욕 자체가 별로 없어서,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만 온라인 쇼핑으로 딸깍!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QWER 덕분에 "여성들의 쇼핑놀이"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어서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저와 같은 방식으로 쇼핑할 자신은 없지만 말이죠.
12월 25일 오후, QWER은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AAA(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참석 차, 인천공항에 들어섭니다. 지난 마카오 출국 때에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기자들이 몰리지 않아 다소 쓸쓸한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죠. 기자들과 바위게들은 QWER이 출국장에 들어서기 이전부터 생중계에 들어갔습니다. 덕분에 저 같이 항상 소식이 늦는 아재들이 편히 감상할 수 있었죠. 여기서도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마젠타와 시요밍입니다. 늘어선 팬들과 인사하고 대화하느라 뒤쳐지니까요. 시요밍이 콜라보한 <니티드> 제품을 입고 온 바위게에게, 시쪽이는 키스를 날렸습니다. 이 멋에 덕질하는구나! 하는 장면이지요.
마젠타는 크리스마스 당일 밤에도 개인 방송을 하겠다고 미리 공지했습니다. '응? 비행기 안에 있을 시간인데? 그리고 도착해서도 무척이나 피곤할텐데...' 인천공항 출국을 알리는 QWER 멤버들의 메시지가 SNS에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과연 마젠타가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방송할 수 있을까,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꿈나라에 가 있는 새벽 1시, 마젠타는 태국 도착을 알리는 SNS를 시작했더군요. 그리고 한국 시각으로 새벽 2시 40분 경, 마젠타는 위버스 개인 먹방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라운지에서 음식을 고르고 있었는데, 그녀는 빨리 고른 다음 바위게들과 함께 하고 싶어 룸으로 들어온 것이죠. 비록 10분 정도의 짧은 영상이었으며 그녀 특유의 갑작스러운 방송 종료가 당황스러웠지만, 저는 "꾸준함의 여왕" 마젠타에게 다시 한 번 감탄했습니다.
<2025 트렌드 노트>(북스톤, 2024)에 따르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2024년 화두는 "성장"이었다고 합니다. "워라밸"이나 "힐링"은 이미 "팔자 좋았던 그 시절"의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그 키워드들이 뜬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성공"과는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과거 한국인들이 항상 입에 달고 다녔지만 현실 속에서는 찬밥 취급을 받았던 "자아실현"이, 10대와 20대 젊은이들 사이에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결국 가장 바람직한 라이프스타일은,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미친 듯이 즐겁게 하면서 성장하는 것"이죠.
우리가 일을 싫어하는 까닭은, 내가 싫어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하는 내내 지겹고, 생산성은 바닥을 치며, 어떻게든 월급 루팡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대다수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으며, 동병상련의 입장인 저 또한 이것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평등주의"를 강조할수록 오히려 "능력주의"가 강해지고 능력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오늘날 20대들은 절실히 깨달은 듯합니다. "주 40시간 근무"가 스탠다드라지만, 일찍이 깨달은 이들은 퇴근 후에 "N잡러"가 되죠.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일론 머스크처럼 "온종일" 일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택해서 말이죠.
또한 오늘날의 20대들은 국민연금이나 기본소득이 내 생계의 최소한을 보장해 줄 거라는 장밋빛 프로파간다에 절대 속지 않습니다. "기계적인 일들은 기계가 모두 대체하게 될" AI의 시대, AI가 하지 못할 "나만의" 영역전개가 이들의 관심사죠. 그런데 이런 영역전개는 타인의 이해를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진정성"과 "성실성"이 나만의 영역전개를 해나가는 데에 기본 요건이죠.
제가 2024년 내내 지켜본 마젠타는 "진정성"과 "성실성" 그리고 "정서적 유대" "성장" 이 키워드 모두에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아티스트라고 봅니다. 참고로 저는 여기에서 "실력" 등을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베이스 연주 실력 또한 무럭무럭 성장 중이지만, 실력이나 외모는 오늘의 주제와는 맞지 않는 기준입니다. QWER 멤버 모두를 고르게 사랑하는 올팬 바위게의 입장에서도, "성장형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에 가장 부합하는 멤버는 마젠타가 아닌가 합니다. 그만큼 그녀는 진정성이 있고 성실하며, 바위게들과의 정서적 유대를 항상 최우선으로 합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꾸준합니다. 이 "꾸준함(성실함)"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브런치에 QWER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때가 올해 6월이니 고작 반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꾸준히 글을 쓰는 작업이 팬심으로도 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힘들 때마다 "글 잘 읽고 있다"는 격려의 한 마디가 저를 일으켜세우듯, 마젠타 또한 바위게들의 변함 없는 사랑과 응원에 힘 입어 꾸준히 방송을 이어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일과 덕질은 둘이 아니죠. 어찌 보면, 마젠타는 "바위게 덕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바위게는 덕질하기에 딱 좋은 대상입니다. 제가 봐도 좀 많이 특이하고 신기하거든요. 어? 저도 사실은 그 돌I 같은 바위게 중의 한 명입니다만...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현생에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덕질하며, QWER과 동반성장합시다! 알이즈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