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데이트 (63 빌딩 museum of color 63)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의 유치원 시절이 최고였다. 오후 4시 30분쯤 하원한 아이를 씻기고 잠깐 놀아주는 시늉을 하다가 저녁을 먹고 나면 재울 수 있었으니까. 초등학교 입학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어떤 날은 무려 1시에도 교문을 빠져나온다. 이른 하교에 힘든 건 나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심심하다, 놀아달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런 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오후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아파트에 살기라도 했으면 단지 내 친구들을 만들기라도 하겠는데 우리는 빌라에 살았고 동네에 아이들이 놀만한 놀이터도 찾기 힘들었다. 거기에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하지 않았던 게 큰 실수다. 함께 놀 친구를 찾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학교 놀이터를 배회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출입이 금지되면서 우리 모녀가 마음 둘 곳은 집뿐이었다.
“엄마~나 뭐 하고 놀아?”
“엄마~우리 게임하자~”
집에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상황극이나 미술놀이가 초등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었고 결국 아이가 택하는 것은 게임이었다. 초등학생과 놀아주기, 노는 법 등을 몇 번이고 검색해 보았지만 대부분 유아용 놀이들이었다. 이래서 형제가 필요한 것 인 가. 외동이면 엄마를 오랫동안 찾는다던 선배맘들의 말들이 귓가에 울리며 외동으로 낳은 것에 대한 자책감 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둘째를 가질 수는 없는 일, 대책이 필요했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끄집어낸 카드는 바로 둘만의 데이트를 하는 것이었다. 일주일 중 제일 일찍 끝나는 금요일에 아이와 어디든 이 동네를 떠나서 무엇이든 함께 해보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집이 너무 좋은 극 I 성향에 저질 체력의 나로서는 큰 결심이었다. 물론 저질 체력을 감안하여 매주는 불가능하고 적절한 시간을 맞춰보는 것으로 스스로 합의를 보았다. 일주일 간 아이와 가 볼만한 곳을 열심히 검색했다. 때마침 여의도 근처에 볼 일이 있었고 63 빌딩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래, 63 빌딩 너로 정했다.
아이의 첫 63 빌딩방문. 첫 미술관 관람이었다. 나도 언제 가 보았는지 기억조차 없는 곳이라 가는 방법부터 검색의 시작이었다. 여의나루 역에서 1km 정도의 거리에 도보 20분~30분이라고 초록창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걸을 만한 거리다. 날씨도 맑고 바람도 선선하니 걷기 딱 좋은 날씨였다. 아이 손을 잡고 신나게 발걸음을 떼었다. 분명 눈앞에 63 빌딩이 보이는 데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빌딩은 그 자리에,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기분 좋음이 지치고 힘듦이 되고 선선한 바람은 온 데 간 데 없이 더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녹초가 되고 발의 감각을 잃고 나서야 도착을 했다. 나 이 정도로 저질 체력이었나, 새삼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다.
전시회는 60층에서 열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커다란 창을 통해 한강뷰가 펼쳐졌다.
“우와~엄마 저기 봐!”
감탄사와 함께 핸드폰 카메라를 켠 아이의 손이 바빠졌다. 몰려왔던 피로가 싹 사라지며 전시회 관람 전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전시회는 기대 이상으로 볼거리가 많았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본 듯한 긴 테이블 위에 많은 접시들과 음식을 구현한 설치미술을 시작으로 판타지 세계에서 찍은 듯한 다양한 색감의 사진들, 귀여운 캐릭터 설치물과 그림들 등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첫 미술 관람이라 아이가 힘들어하거나 지루해할 줄 알았는데, 작품들을 진지하게 관찰하고 사진 찍으며 관람하는 모습에 꽤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짜식, 초등학생이 됐다 이건가.
관람 끝자락에는 역시 빠지지 않는 선물샵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문구 덕후인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이것저것 담기 시작했다. 물론 엄마는 눈을 번뜩이며 안 되는 것을 빼고 있었다. 계산을 하고 있는데 뒤로 슬그머니 다가온 아이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엄마 덕분에 즐거웠어"
코가 찡하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감각이 사라졌던 발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모든 피로를 사라지게 하는 마법 같은 한마디였다. (물론 돌아가는 길은 택시였지만) 그래, 이 부실한 체력이 받쳐주는 한 있는 힘껏 같이 놀아주마. 언젠가 엄마를 떠나 친구를 더 찾게 되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 엄마가 너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줄게. 그렇게 우리의 첫 데이트는 감동의 물결과 함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