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스무 살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나는 따뜻한 남쪽 창원에서 살았다. 겨울에 눈 한번 내릴까 말까 한 정도로 따뜻한 겨울이었고 정말 어쩌다 몇 년에 한 번 쌓일 정도로 내린 날이면 빨리 녹을까 싶어 대형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실컷 그날의 눈을 만끽했다.눈이 쌓이는 날은 특별한 겨울이었다.
국민학교 4학년 함안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 해 눈이 펑펑 쏟아져 집옆 논 둑이 하얗게 덮였다. 그 당시 창원은 발전 중인 나름 도시였고 그 기준에서 함안은 시골이었다. 친구들이 박스를 가지고 와 논둑으로 썰매 타러 가자고 했다. 난 난생처음으로박스 썰매 시도를 해보게 된 도시소녀였다. 재밌을 것 같아 신나게 따라나섰지만 막상 올라오니 아찔한 높이에 덜컥 겁이 나 내려가지 못하고 있었다.
박스 대신 큰 대야를 가져온 친구가 먼저 간다며 출발하더니 생각지도 못한 스핀과 스피드에 엄청 소리를 질렀고 역시나 예상 못했던 남은 친구들은 깔깔거리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빙글빙글 돌던 그 모습이, 놀람과 신남이 섞인 비명이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다른 친구들도 신나게 박스썰매를 즐겼는데 겁 많은 나는 결국 타지 못했다.
다시 창원으로 이사를 하고 몇 년이 지나 고등학교시절. 아마 그 후 처음 쌓인 눈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을 불러 집 앞 작은 동산에 박스를 가지고 올랐다. 그 친구들은 그때의 나처럼 박스 썰매는 처음이었다. 무슨 용기에선지 내가 먼저 출발했고 대야스핀을 보여줬던 친구처럼 박스스핀과 함께 친구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우린 꼬마애들처럼 신나게 박스썰매를 즐겼다.다 큰 고등학생 셋이 눈밭을 뒹굴며 깔깔거리고 웃었다.(얘들아 기억나니..?)
독립 후 서울에 오니 겨울만 되면 눈이 쏟아졌다. 쌓인 눈만 보면 설레고 녹을세라 신나게 놀던 그때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또 눈이야 라며 고개를 저었다. 질리도록 내린 눈 때문인지 성인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를 일이다. 결혼 전에는 이불을 꽁꽁 싸매고 창밖을 감상하며 즐길 수 있었지만, 이젠 눈을 반짝이며 밖에 나가길 원하는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피곤함을 핑계로 아빠의 등을 슬며시 밀어 본다.
아이에겐 여전히 행복함을 주는 눈인데 다음에 눈이 쌓이면 귀차니즘을 살포시 뒤로하고 뒷산에 올라 아이와 함께 박스 스핀을 돌아볼까. 역시 한번 더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