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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Aug 29. 2022

주말부부의 육아와 살림 분담은 어떻게 하는게 정답일까.

주말이면 내가 쉴 수 있게 애들을 더 봐달라구. 그러니까 얼마나?


 주말부부 워킹맘의 역할은 너무도 버거워서, 신랑이 오는 금요일이 그렇게 간절히 기다려질 수가 없었다. 아이들보다 내가  신랑이 오기를 기다렸고, 금요일 아침이면 "얘들아, 오늘은 저녁에 아빠 온다!"하고 기뻐했다. 금요일 오후, 신랑이 퇴근해서 오는 시간은 드디어 내가 혼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던 독박육아에서 해방되는 순간이.




 하지만 신랑이 집에 들어서면 반가운 마음은 잠시, 신랑이 왔음에도 이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ep1. 금요일 저녁을 먹고 일주일의 피곤이 이제서야 몰아치는 것 같아서 "나는 좀 쉬고 싶어."라며 방으로 들어가 누워있는데, 신랑이 "오늘은 탁구 안 갈거야? 피곤해? 그럼 나 혼자 갔다 올까? 내가 첫째 탁구장에 데리고 가고, 둘째랑 셋째는 우리집에 맡기고 갔다 올게. 자기는 쉬어."하면 그게 왜 기분이 좋지 않지?


ep2. 신랑이 나더러 쉬라고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으로 가서 하루 종일 오지 않기에 전화를 하니 첫째가 전화를 받아서 하는 말이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술 마시고 있어. 우리는 티비 보고 있지."라고 말을 하면 왜 그리도 기분이 좋지 않지? 나는 신랑의 배려로 쉬고 있는데 말이다.


 ep3. 신랑이 주말이니까 쉬고 싶다고 자기 싫다는 애들을 억지로 뉘여서 잠을 재우면 왜 그게 그리도 싫지? 사실 낮잠을 잘 수도 있는건데 말이다.


 ep4. 주말이면 시어머니가 전화해서 "며느리야. 우리00이 좀 올려 보내라. 시아버지가 들어오는 길에 족발을 좀 사왔는데, 술안주 좀 하게. 너는 족발 싫어하지?"해서, 신랑은 올라가서 두 세 시간 동안 낮술을 마시며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  근황을 나누는데, 나는 주말에도 애들을 보고 있는 게 왜 그렇게 싫지? 나는 족발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술은 못 마시기에 어차피 그들 사이에 이방인처럼 끼어서 앉아있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신랑이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데 왜 나는 곱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되느냔 말이다. 그리고 그걸 지적하면 괜히 '속좁은 사람'이 되는 듯한 분위기가 될 것 같아서 말도 못하겠고 말이다.


ep5. 신랑이 좀 씻는다고 휴대폰을 들고 들어가서 화장실에서 탕에 누워 2시간째 나오지 않으면, 나는 왜 화가 나지? 신랑이 사는 좁은 원룸에는 탕이 없어서 오랜만에 집에 오니 몸을 푹 담그고 쉬고 싶을 수도 있는데 왜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화가 나지?


ep6. 신랑이 '오전에 나 머리 좀 깎고 올게. 애들 좀 봐줘.' 라고 하거나, '차를 좀 고쳐야 해서, 오전에 다녀와야겠어.'라고 하면 주중에 퇴근하고 충분히 할 수도 있는 일을 굳이 왜 주말에 하는데? 라며 마음에 화가 나는 건 속이 좁은 건가?


ep7. 신랑이 나더러 쉬라고 하고, 주말 내내 세 아이들과 나들이를 가서 놀아주고 돌아와 피곤하다고 저녁을 먹고 티비를 보고 쉬는데, 분명 신랑은 하루 종일 아이들과 놀아주고 와서 피곤한 건 알겠는데 아이들이 어지럽힌 방을 치우고 물걸레질을 하고 빨래를 돌리면서 왜 화가 나지?


ep8. 한번은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저녁 아이들 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마친 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는데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 차서 더 이상 버릴 수 없을 정도로 차 있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날 것 같이 서글펐다. 신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음식물 쓰레기 버려주기로 했었잖아. 그냥 갔네... 나 너무 힘들어. 이런 거 꼭 해줘."라고 하니, "나 분명 버렸는데. 분명히 버렸어. 진짜 버렸다니까.", "내 눈 앞에 음식물 쓰레기 가득 차 있어. 그냥 다음부터는 잘 버려달라고.", "아니, 분명히 버렸다고. 내가 들고가서 버린 게 똑똑히 기억이 나는데.", "그건 지난 주였나봐. 암튼 안 버려져 있으니가 내가 좀 서럽다." "나는 분명히 버렸다니까. 억울하네."




 나는 주말에 신랑이 아이들을 보거나 살림을 하는 것이 성이 차지 않았다. 주중에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티비도 안 보여주면서 책을 읽어주고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서 놀아주며 고군분투하는데, 신랑은 나처럼 열심히 하지 않자 화가 났다. 또한 신랑이 주말에 하지 않고 간 살림과 육아는 그 다음 주에 나의 일이 되는 것에도 화가 났다.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분리수거, 아이들 손발톱 깎기, 손빨래를 해야 할 아이들 옷, 화장실 청소, 주말동안 어지러진 집청소. 신랑이 주말동안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피곤하다고 하지 않고 월요일 아침에 떠나버리고 나면, 그건 전부 내 일이 되었다. TV 볼 시간에 이걸 하고 갔어야지. 낮잠 잘 시간에 하고 갔어야지. 시댁에서 술 마실 시간에 하고 갔어야지. 탁구치러 갈 시간에 하고 갔어야지. 신랑의 비교적 여유로웠던 주말은 나의 쉴틈없는 주중과 비교되었다. 그 시기에 나는 속으로 '당신은 평생 나의 삶을 이해할 수 없을거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언젠가 신랑이 "우리 학교 실무원 중에 젊은 여자분이 있는데 너무 일을 못 해. 어떻게 그렇게 일하고 월급을 받나 몰라. 답답해. 알려줘도 몰라. 어후."라고 몇 번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얘기를 들으며 속으로 '나는 당신이 이렇게 대충 애들을 돌보고 살림을 하는 걸 보면, 어떻게 밖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오는 건지 궁금해요. 당신이 일 못하는 직원을 보며 느끼는 그 마음이 당신을 보는 내 마음이라고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간신히 충동을 참았다.




 그런 마음들이 켜켜이 쌓여, 여러 번의 갈등이 되었다. 초반의 갈등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고 해결책도 없이 감정만 상하는 식이었다.

 

 "나 진짜 힘들어. 주변 선생님들보면 남자들도 육아랑 살림도 많이 하는데, 자기도 좀 많이 해 줘."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 거의 없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그렇게 육아랑 살림 열심히 하는 남자 없어. 나 정도 하면 많이 하는거야. 실장님은 부인이 아침밥도 다 차려주고 술마시고 오면 해장국도 끓여준대. 00이는 부인이 혼자 애들도 보고 살림도 다 해."

 "거기는 오빠가 혼자 벌잖아. 언니는 전업주부잖아."

 "어휴, **이는 부인이 맞고 살아."

 "그래서 지금 나를 때리겠다는거야? 미쳤어? 말을 말자."

 남들과 비교하는 나의 접근이 잘못되었다. 신랑은 자기가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은 말로 대꾸를 했다. 내가 공격적인 말을 했기에 자기도 모르게 방어적으로 나오는 말일테고 본심은 아니었다는 걸 알면서도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아 답답했다.


 "집안일이나 육아 좀 더 도와줘. 내가 돈도 더 많이 버는데, 육아랑 살림도 더 많이 하고 너무 힘들다고."

 "얼마나 더 번다고? 내가 알바라도 하라고? 그래. 잘났다. 우리 부모님이 내가 못하는 것만큼 맨날 애들 봐주시잖아. 그리고 너 화요일마다 우리집에 애들 맡기고 운동도 다니잖아. 별로 힘들 것도 없으면서 뭐가 힘들다고 해. 놀러다닐 거 다 다니면서."

 육아휴직 기간동안 나와 시부모님과 함께 육아를 했던 신랑은 주말부부가 된 후 나의 육아도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에게 하는 것에 비해 너무 심하게 툴툴댄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이면 아이들 밥을 먹이고 시간을 내어 운동을 갔었는데, 그것도 꼬투리를 잡아 너무도 서운했었다. 아마 이것도 자기도 모르게 나온 방어적인 말이었으리라. 급여 이야기는 내가 애초에 꺼내지 말았어야 할 실수였지만, 금전적인 이야기가 나올 때면 결혼 초기부터 나보다 급여가 적었던 부분에서 자격지심이 있어서 예민하게 반응했다. 육아를 더 도와달라는 말이었는데 돈을 못 벌어온다는 말로 들었다. 이 날은 내가 고생하는 걸 정말 하나도 몰라주는구나 싶어서 싸우고 펑펑 울었었다.

 

 "나 학교에서 일도 엄청 많이 해. 퇴근하면 애들 보는 것도 버거워. 주말에 애들 좀 잘 봐."

 "내가 지금 뭘 못하고 있는데. 여기서 얼마나 더 해야 하는데? 우리 학교 교무랑 엊그제 술도 마셨는데, 별로 일도 많지도 않더만. 교무가 하는 일이 뭐가 그렇게 많다고 그래."

 신랑의 대꾸는 사실을 확인할 수없는 시원찮은 논리의 말들이라서 원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의 진위를 다투다가 결국 감정만 상하고 말았다.


 "나 혼자서 직장다니면서 애들도 셋이나 혼자 키우고, 힘들다고. 자기는 퇴근하고 맨날 쉬잖아. 그러니까 주말에 애들 좀 더 봐. 내가 완전히 편히 쉴 수 있게."

 "그래서 그럼 내가 큰 애 데리고 갈까? 어? 내가 하나를 데리고 가서 키우면, 둘 다 일하면서 애 키우면 속이 시원할 거 같아?"

 그래서 신랑이 큰 애를 데리고 갈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 상상의 끝에는 큰 애가 늘 유치원에 늦은 시간까지 혼자 남아있다가 하원을 할 것이고, 아빠와 같이 술집에 가서 한쪽에 앉아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을 상상이 되어서 차마 보낼 수가 없었다. 신랑도 차마 실행하지는 않았다.


 "자기는 평일에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저녁약속 가고 술마시잖아. 주중에 나보다 편히 지내는 거 맞잖아. 그러니까 주말에는 애들을 더 보라고."

 "그럼 내가 일주일에 하루만 술 마시는 걸로 하면 되겠어?"

 해결책이 논점에서 완전히 어긋났는데, 나도 같이 논점을 잃고 그렇게 하라고 해서 실질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갈등 끝에, 해결책으로 주말이면 신랑이 꼭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목록으로 정하게 되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중에 청소는 꼭 한 번 하기(물걸레질 포함),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아이들 티비 보여주지 않기, 하루에 책 3권 읽어주기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나중에는 '했네, 안했네'의 싸움이 되었다. 나중에는 또 싸울까봐 신랑이 떠나기 전에 할 일을 알려줘야 겠다는 마음에서 "설거지 좀 해줘요. 자기야, 방청소 해야 해요. 분리수거 가기 전에 해주고 가요."라고 말을 하면 긴 한숨을 쉬고 기분이 상한 티를 냈으며,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하지 않고 시켜야만 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다. 이것도 좋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신랑은 어떻게 더 잘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나를 고생시키려고 악의적으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지 정말로 몰랐던 것이다. 육아와 살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나의 고생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매주 주말이면, 나의 끝없는 요구에 신랑은 진이 빠져가고 있었을 것이다. 요점없는 갈등을 반복하며 '어떻게 해도 저 여자는 만족시킬 수 없을거야, 늘 짜증이 가득 찼잖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실제로 짜증이 가득 차 있었으니까. 날이 서서 불만이 가득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에서 신랑은 하나 둘 살림과 육아를 배워갔다. 시키지 않아도 눈치껏 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나중에는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방청소를 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식으로 내가 쉬지 않고 육아나 살림을 하는 동안에는 자기도 쉬지 않고 뭔가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금씩 맞추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족스러운 해결책도 찾았다. "금요일 신랑의 퇴근 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모든 육아와 살림은 전적으로 신랑이 하는 것"이었다. 신랑이 모두 책임지고 하는 육아와 살림은 내게 온전한 자유를 주었고, 간혹 내가 개입할 때에는 "내가 도와주는 거야."라며 생색을 낼 수 있었다. 신랑은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주체가 되어서 살림과 육아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다툴 일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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