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를 시작하며, 두 번째 이혼 위기를 겪었다
내 고생과 노력을 알아주란 말이야
우리는 맞벌이 주말부부가 되고 거의 1년이 넘게 치열하게 싸웠고, 나는 그 시기에 마음 속으로는 몇 번이나 이혼을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이혼하고 싶은 마음을 가까운 지인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내가 돈도 더 많이 벌고 애들도 다 돌보는데, 신랑은 왜 있는거지? 내가 신랑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뭘까? 주말에 만나면 괜히 짜증만 나고, 이럴거면 이혼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나도 진짜 이혼하고 싶기는 해. 넌 이혼하면 경제적인 건 어떻게 할건데?"
"나는 지금도 거의 혼자 벌어서 사는데, 뭘. 주말부부라서 애들도 혼자서 보고. 내가 왜 신랑이랑 살아야 하는지 의미를 모르겠어."
"좋겠다. 그래도 너는 돈이라도 잘 벌어서. 내가 너였으면 진작 이혼했을 거 같애. 난 신랑이 돈을 벌어다주니까 이혼을 못해. 참고 살아야 돼."
경제력만 있다면 이혼하고 싶다는 지인의 말에, '결혼도 돈이 있어야 하는데, 이혼도 돈이 있어야 하구나.'했다. 경제력을 가진다는 것은 현실에서 이런 힘이 있다. '돈'을 따진다는 것이 속물같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돈'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인격과 품위를 유지하는데 절대적인 필요 조건이다.
가장 싸움이 극에 달할 때는 이혼을 품에 안고 사소한 불만에도 신랑을 도끼눈으로 쳐다보다가, 아이들이 신랑을 나와 달리 '세상에 하나 뿐인 다정한 우리 아빠'로 여기는 해맑은 눈으로 볼 때면 차마 이혼을 입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주, 두 주 지나다보면 한 달이 지나는 식으로 일상을 버티다가, 다시 참고 있던 힘겨움에 대해 입밖으로 꺼내면 싸움이 되고 '차라리 이혼을 하고 편히 살자. 애들은 내가 혼자 키워도 충분히 잘 키울 수 있어.'라고 생각하길 반복했었다. 싸우지 않은 평상시에도 신랑은 아마 나의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는 성인이라면 불쾌한 감정을 아무리 숨기려 한들, 적막을 깨는 무심한 걸음에서도 거리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그 즈음에 신랑은 이런 말을 많이 했다. "교사랑은 결혼하는 게 아니야. 사사건건 가르치려 들어.", "걔네 커플은 남자가 아깝지. 00이는 여자가 너무 드세. 그런 여자랑 결혼하면 완전 최악이지.", "00형님 부인은 00형님을 얼마나 챙기는데. 그런 여자가 진국이지." 신랑은 내가 육아와 살림을 더 도와달라고 말하 때마다 늘 '여기서 얼마나 더 해야 하냐. 이만하면 잘 하는 거다.'라고 말했고, 변하지 않는 신랑을 보며 답답한 마음에 아이 가르치듯이 이래라 저래라 했던 것은 사실이다. 말과 함께 더해지는 서늘한 표정을 보고 '드세다'고 할만하다. 그래서 사실을 콕 짚어서 말하는 신랑과 또 싸웠었다.
신랑이 늘 나에게 “말 좀 예쁘게 해.”라고 했기에, 신랑에게 요구할 때는 되도록 높임말을 썼다. "애들 티비만 보여주지 말고 책도 좀 읽어줘요.", "애들이 놀이터에 가고 싶다는데, 맨날 누워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같이 놀아줘요.", "맨날 라면 말고 자기가 요리를 하나라도 좀 해줘요.” 그걸 우리 집에 놀러온 남동생이 듣고 가식적이라며 왜 그런 말투를 쓰냐고 했었다. “너 왜 갑자기 시킬 때만 그런 말투쓰냐? 아, 오글거려. ‘애들한테 책 읽어줘.’ 이렇게 평소처럼 말해. 그렇게 말하는 게 더 하기 싫어질 거 같은데?”, “너도 살아보면 알게 돼. 평소대로 하면 나도 화를 참지 못하고 짜증나는 말투로 말하더라고. 말에 감정을 빼보려고 그러는거야.”
자기를 가르치려 드는 선생 부인을 보고 신랑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여자는 나를 늘 무시하지. 같이 있는 것 자체로 가슴이 답답하다. 늘 자기만 옳다고 하고,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시키면서 제대로 못한다고 짜증이잖아. 어쩌라는 거야. 내가 제 하인이야? 맨날 집에서는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잖아. 매사에 불만이라 기분을 맞춰 줄 수가 없네. 차라리 이혼하고 싶다.' 신랑도 입안에 맴도는 '이혼'을 삼키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쇼윈도 부부였다. 부부가 동반하는 자리에서는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주는 관심이 어서 지나기를 바랐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식적인 웃음'뒤에 참았던 내면의 불만과 증오를 쏟아낼까봐 애써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멀어지는 식으로 행동했다.
그 상태가 변함없이 지속되었더라면, 우리는 결국 이혼을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감정의 골을 깊이 파며 싸우고 또 싸워가면서, 신랑은 천천히 육아와 살림을 배워갔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배워나가기에 처음엔 서투르더라도 빠르게 배우는 반면, 성인은 이제껏 해오던 습관과 그에 맞춰진 사고를 깨는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채로 배우기 때문에 더딘 것 같다. 신랑은 불만을 가진 채로 배우며, 천천히 조금씩 변해갔다. 티비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밖으로 나들이를 나가는 시간이 늘어났고, 내가 시켜서 하는 때가 대부분이기는 했지만 불만있는 표정을 감추고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려고 노력했다.
제일 중요한 변화는 내가 살림이나 육아를 할 때, 신랑도 쉬지 않고 함께 한다는 점이었다. 아마 부단히 의식하며 행동한 것이리라. 내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신랑은 설거지를 하고, 내가 식사를 준비하면 신랑은 아이들을 목욕시켰다. 할 일이 없나 주변을 둘러보고 해야 할 일을 잘 찾아서 했는데, 그러고 난후로는 누구 하나가 애써 고생을 하고 다른 하나가 득을 보는 듯한 느낌이 아니라, 함께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인지 요새 신랑은 금요일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오면, 바로 팔을 걷어붙이고 설거지와 분리수거를 한다. '퇴근하고 긴 시간 운전을 하고 와서 피곤할텐데, 저렇게 쉴틈도 없이 집안일을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는 거지.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의지.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집에 와서 엉덩이를 붙일 시간도 없이 집안일을 시작하는 건가.' 너무 안 할 때는 그렇게도 밉더니, 그렇게까지 하니 또 미안하고 고마워서 신랑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설거지를 하게 되는 심리는 뭔가.
긴 싸움 끝에 주말에 모든 살림과 육아를 신랑이 하자고 합의를 한 뒤로, 싸울 일이 없어졌다. "요새 신랑이 너무나 잘해서 싸울 일이 없어요. 너무나 애들도 잘보고 육아도 잘 해요. 저는 주말이면 완전히 자유시간이예요." 진심인지라 신랑 자랑이 절로 나오고 신랑도 그걸 들으며 어깨가 들썩이는 것 같다. 물론 합의처럼 신랑이 주말동안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우리는 같은 집에 살고 있으니, 나도 여유가 되면 아이들과 놀아주고, 책을 읽어주고, 신랑에게 쉬라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다녀오기도 한다.
나는 신랑이 주가 되는 육아와 살림에 도움을 주는 위치로 물러나면서 '나만 애써서 애들을 본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후로는 신랑이 벌어오는 '돈'을 셈하지 않게 되었다. '얼마를 벌어오면 어때. 신랑도 나랑 똑같이 애를 써가며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잖아.' 함께 하고 있다는, 우리가 힘겨움을 비슷한 비율로 나누어 지고 있다는 인식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더 이상 나의 힘겨움과 신랑이 벌어오는 돈을 저울질해가며 '돈이라도 잘 벌어오면 이 고생을 좀 위로 삼아 볼 텐데.'했던 마음을 벗어던질 수 있어서 시원하다.
신랑은 자기가 변했다는 것을 잘 모르는 듯하다. 원래 육아와 살림에 만랩이었는데, 애꿎은 사람을 내가 갈구었다고 기억한다.
"자기야. 예전에는 내가 설거지하고, 방청소하고 바닦 닦아도 자기는 쇼파에 누워서 휴대폰만 봤잖아."
"내가 언제? 나 그런 적 없어. 참나,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
그렇다고 아예 부부싸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육아와 살림이 공평해진다고 해도 서로 '병맛'같은 구석이 있어서 그 맛을 볼때면 또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