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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Sep 02. 2022

돌고 돌아서 다시 경제적 갈등

저축을 하라고? 나더러 과소비 한다는 거지?

 세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 주말부부를 시작하고, 신랑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가서 서운했던 날 이후로 나는 살림 도우미를 알아보았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에 오시도록 부탁드렸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4시간 동안 청소를 해주시는데, 평수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우리 집은 31평이라서 4만원이었다. 한 달이면 20만원 정도 되는 돈이 지출되는 것이다. 

 살림도우미 여사님이 오시고 난 후로는 화요일 오후부터 '오늘은 애들이 어질러놓은 장난감이며 책을 정리하지 않아도 되네. 밥먹고 설거지도 안 해도 되고. 내일 빨래 개어 놓으실 수 있게 오늘 빨래를 돌리고 건조기도 돌려 놓아야겠다.' 이런 믿을 만한 구석이 생긴 편안함이 있었다. 그리고 수요일 오후 퇴근을 하고 와서 구석 구석 깨끗하게 정리된 집을 보면 '역시, 4만원이 아깝지 않다.' 싶었었다.


  사실 나는 조금 부지런을 떠는 편이라서 애들이 셋이지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정리를 하고, 아이들이 자고 난 후에도 청소를 해서, 화요일 저녁 단 하루의 편안함 이외에 다른 날은 다시 전투 모드로 들어가 청소를 했으니 단발성 기쁨을 위한 4만원이 조금 아깝기도 했다. 하지만 수요일 오전에 누군가가 나 대신 청소를 해주고, 퇴근해서 돌아왔을 때 나를 귀하게 맞아주는 듯한 행복함이 중독과 같아서 한 1년 넘게 살림 도우미를 이어 갔었다. 살림 도우미 여사님이 오시고 난 뒤로는 신랑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가지 않아도,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아도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수요일에 여사님이 다 해주실거니까.'하고 이틀 정도를 기다리면 여사님이 오셔서 신랑보다 더 깨끗하게 구석구석 청소를 해 주셨다.  

 

 신랑은 살림도우미에 돈 쓰는 걸 싫어했다. 

 "그거 돈 얼마야?"

 "일주일에 한 번이고, 4만원이야. 수요일 오전에 오셔." (사실 중간에 4만 5천원으로 올랐지만, 4만원이라고 말을 했다. )

 "그거 안 하면 안 돼? 아니면 우리 어머니한테 부탁드리고 그 돈을 우리 어머니한테 드리던지."

 "내가 시어머니한테 우리 집안일을 시키라고? 불편해서 어떻게 그래. 이것 저것 말씀드리기도 불편하지. 그럴거면 내가 하고 말지."

 "여사님 부르지 마. 내가 할게. 내가 주말에 와서 한꺼번에 다 할테니까 집안일 하나도 하지 말고 그대로 둬."

 "왜 그래. 그냥 내가 고생해서 버는 돈으로 한 달에 20만원 정도 쓴다고 생각해. 전에는 자기가 음식물 쓰레기 안 버리고 가면 화를 냈었지만, 이젠 그런 거 안 하고 가도 내가 화를 안 내잖아. 다 살림 도우미 여사님 덕분이라고."

 시어머니께 우리 집안일을 부탁하고 일주일에 4만원을 드리라고? 어떻게 하면 이런 생각이 떠오르고 말이 되어 나올 수 있을까? 굳이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해보자면, 신랑은 4만원이 큰 돈이라고 생각되었나보다. 시어머니의 고생과 나의 불편함을 상쇄할 수 있을 만큼 큰 돈. 나는 시어머니께 '어머니, 애들이 어제 이불에 요플레를 흘렸어요. 빨래 돌리고 건조기 부탁드려요. 시간 되시면 냉장고 정리도 한 번 부탁드릴게요.'라고 말하며 4만원을 건네는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동시에 시어머니가 친구분들께 '요새 아들네 집에 청소 다녀. 며느리가 선생이라 바쁘거든.'하고 말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서 고개가 절로 내저어졌다. 

 한 끼만 먹어도 그릇이 몇 갠데, 이틀만 빨래를 안 돌려도 빨래바구니에 빨래가 차고 넘치는데 일주일 동안 그냥 두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제껏 주말에 약속한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싸우고, 내가 혼자 울분에 찼던 많은 날들은 모르는가 보다. 


 그렇게 신랑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살림 도우미 여사님을 불렀었다. 신랑에게는 되도록 여사님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스쳐가는 대화에도 말하지 않았었다. 1년 정도 지나자, 아이들이 조금 커서 자기가 가지고 논 물건들을 정리하라고 하면 서툴지만 정리할 줄 알고, 아주머니가 다녀가고 난 후에도 내가 평소에 청소하던 것과 별다를 것이 없어서 수요일의 기쁨이 연해져 갈 즈음에 여사님을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 




 주말에는 신랑이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기로 한 후로 싸울 일이 거의 없었던 우리가 얼마 전 또 싸움을 했다. 돈 때문이었다. 


 사실 신랑은 돈을 잘 쓰지 않는 편이다. 저렴한 술집을 찾아 일주일에 네 다섯 번 정도 술을 마시는 것을 제외하고는 자기 옷이나 신발도 나에게 사달라고 부탁을 하고, 스스로 사입지 않는다. 월급에서 보험, 월세, 톨비, 기름값, 저녁식사비, 약간의 용돈 등을 제외하고 나에게 90만원을 가져다 주는데, 술을 마시는 것에 용돈을 다 쓰니 자신의 옷이나 신발을 살 여유가 없는 것이다. 주말부부라서 신랑의 출근 복장을 볼 일이 별로 없으니 늘 같은 옷만 입고 다니지는 않는지, 계절에 맞춰 제대로 갖춰서 입고 다니기는 하는지 모르겠다. 자취를 하다보니 옷을 사줘도 금새 어디론가 사라진다. "작년에 사줬던 헤지스 티셔츠 어디에 뒀어? 분홍색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받았다던 거 있잖아." "몰라. 그게 어디로 갔지?" 이런 식이다. 


 "우리 올해 저축 얼마나 했어?"

 "얼마 못 했어. 자기도 알잖아. 우리 저축하기에는 빠듯한 거."

 "내가 일을 안 할 때도 자기가 버는 돈으로 살았었는데, 이젠 나도 버니까 내가 버는 만큼은 저축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애들도 커가고, 피아노랑 탁구랑 수영이랑 이런 저런 학원비가 한 달에 100만원이 넘어. 쓸 데가 자꾸 늘어난다고. 얼마 전에 우리 급여 명세서 보고 나가는 돈 다 계산 했었잖아. 왜 그래."

 "학원같은 거 보내지 마. 그냥 집에서 놀게 둬."

 "뭔 소리야. 가르치는 것에 돈을 아끼는 건 아니지."

 "그럼 나한테 돈 다 줘. 내가 살림하고 저축해볼게."

 "그럼 나도 자기처럼 90만원 줄테니까, 자기가 살림해. 그럼 됐어?"

 "그건 아니지. 자기 월급 다 나한테 줘야지."

 "자기도 나한테 90만원 주고, 내가 살림 다 하는 거잖아. 공평하게 해야지. 자신 없으면 내가 하는거지."

 이쯤 되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신랑이 답답해 한다. 그럼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사람을 화나게 하는 무논리의 필살기가 나올 차례다. 

 "형님네는 처형이 저축도 잘 하더만. 이번에 새 집으로 이사도 가고. 처형이 자기보다 낫네."

 "어디서 비교야! 기분나쁘게. 진짜 못 됐네. 자기가 승진을 하고 더 벌어와야 저축을 하지. 나한테 90만원 보내주고, 주말에 아이들 돌본다고 40만원 다시 가져가면 자기가 벌어오는 돈은 50만원 밖에 안 되는 셈인데, 나한테 지금 저축하라는 말이 나와?" 

 신랑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 내 입밖으로 나와 버렸다. 돈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또 벌어오는 돈을 탓하고 말았다. 


 나는 화가 나서 강경해졌다. 

 "앞으로 우리, 탁구장도 가지마. 탁구장비가 한 달에 12만원이야. 탁구 끝나고 치킨에 맥주 같은 것도 다 사치야. 그 돈도 아껴야지. "

 "그래도 탁구장은 가야지."

 "애들 학원도 못 가게 하면서, 우리가 무슨 탁구장을 갈 여유를 부려. 탁구장비, 외식비 다 내가 계산했던 거 잖아. 아까는 저축하라면서."

 "알았어. 알았어. 그냥 됐어. 저축하라고 안 할게."

 이번엔 마지막에 신랑이 꼬리 내리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뒤에서는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엄마, 아빠가 그러는데 나 수영하지 말래. 돈 많이 들어간다고. 나 이제 수영 끊을래. 그리고 피아노도 끊으면 안 돼?" 학원 다니길 귀찮아 하던 작은 아이가 아빠의 말을 고스란히 전하면, 나는 속으로 '이걸 데리고 살어, 말어.' 한다. 오후 5시면 퇴근해서 침대에 누워 영상통화로 자기를 비추며 "애들 좀 바꿔봐."하고 베시시 웃는데, "저축하고 싶으면 이렇게 일찍 퇴근하고서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왜 딸한테 학원을 그만 두래." 이런 말이 목끝까지 올라왔다가 가라앉는다. 


 신랑도 나에게 과소비한다고 병맛이라고 하겠지?

 1000원, 500원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인터넷으로 살림살이를 사는 부인 속도 모르고, 맨날 무슨 택배가 오냐고 쌓여있는 택배를 보며 '이거 또 과소비. 병맛이구만.'했겠지?




 부부사이에 경제 관념이 다른 것은 커다란 갈등 요인이다. '이 정도 아끼고 살면 되는거지, 얼마나 더 아끼고 살아 ' 싶은 사람과 '좀 더 아끼면 저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리 낭비를 하지?" 싶은 사람이 같이 사는데, 어느 정도가 절약이고 낭비인지 기준이 같을 수 없다. 어떤 돈(학원비)은 낭비인 것 같다고 하다가도 어떤 돈(탁구장비, 외식비)은 낭비가 아니라고 한다.. 내가 더 버는 입장이라 상황이 나은 편이지, 내가 덜 버는 입장이었더라면 '가계부를 써라.', '허튼데 돈 쓰지 말아라.', '전에 쓰던 것이 있는데 왜 새로 산 것이냐.' 간섭을 받았을 것이다. 넉넉하게 벌면 나을까?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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