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게 운동하기 싫은 날, 나는

아무튼, 다이어트

by 담백

더럽게 운동하기 싫은 날. 오늘은 그런 날이다. 아마 365일 중 300일 정도 이런 날들이 이어진다. 이제 '주 4일, 5일' 하며 날짜를 세기 보단 헬스장이 문을 닫는다거나, 헬스장을 갈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거나 같은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곤 기본적으로 매일이 운동하는 날이 되었다. 그래도 나름의 포상으로 평일 5일을 운동했다면 주말 하루 정도는 기꺼이 쉬어주는 인간미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 3년 전의 나라면 이마저도 가혹하다며 온 동네 소리치고 다녔을 테지만 이게 일상이 된 지 까마득한 세월을 지나고 나니 그런 감정소비조차 의미 없이 느껴질 뿐이다.


운동하기 싫은 날, 오늘도 그런 날이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데..여전히 오늘도 운동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속옷과 세면도구를 챙길때면, 귓가에 운동 타도 랩소디가 들려온다. "이 망할 놈의 인생, 아직 인생의 3할밖에 살지 않았는데 남은 6 할 넘어는 이런 끔찍한 루틴을 반복해야 되다니", 앞으로 남은 영겁의 세월이 아득하게 느껴져 한숨만 나온다.


특히 한 달에 한번 돌아오는 주기가 올 때쯤이면, 모두 저리 비키세요-. 이 동네 예민 보스가 등장했습니다. 내가 운동을 가자고 해놓고선 같이 운동을 나서는 남편한테 왜 바닥 청소를 안 했냐며 같잖은 태클을 건다. 바로 분노 기작을 눈치챈 남편은, 운동하기 싫으면 가지 말자며 던지는 달콤한 회유에 속으론 고마웠지만 이미 파탄난 인성의 예민 보스는 겨우 가다듬은 나의 의지를 건드렸다며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입이 댓 발 나온 입술은 모르겠고, 이성적인 나의 몸은 여느 때와 같이 일단 헬스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럴 땐 나의 일부분이라도 이성을 놓지 않음에 감사할 뿐이다. 보통 때 같으면 헬스장에 도착하는 순간 누가 마음에 소화기라도 뿌린 것처럼 이젠 어쩔 수 없다며 반 쯤 포기한 상태로 조깅을 시작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곤 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런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러닝머신에 올라서는 순간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자빠지지도 않았는데 왠지 발목도 쑤신 것 같고, 이 몸뚱이를 운동시키기엔 정말 질려버려서 당장이라도 집으로 몸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운동복까지 갈아입은 노력이 너무 아까웠다.


이번생은 어쩔 수 없다며 이놈의 몸뚱이를 어디에라도 내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누르고 조깅은 무리이신 것 같으니 천국의 계단에 올라탔다. 지피지기는 백전백승. 머리의 열을 허벅지에 옮기는 작전이다. 화가 많이 나서인지 의외로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화를 연료로 운동하기 싫은 마음의 눈을 살짝 가려 운동 시작을 성공했다는 기쁨에 마음이 살짝 놓였다. 운동은 헬스장에 오는 일이 반, 시작하는 일이 40%, 나머지가 10%인 것이 국룰이다.


몸이 살짝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에 남은 화를 땀으로 발산시키기 위해 내친김에 러닝머신도 올라탔다. 2km를 내리 달리고 나니 한소끔 열기가 올랐다. 유산소를 제일 싫어하는 나로서는 여기서부터는 훨씬 수월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 운동하러 와선 몇 번 기구를 끄적이곤 핸드폰을 하는 회원, 노닥이러 온 건지, 운동하러 온 건지, 큰소리로 여성회원들에게 애매한 근육을 선보이는 아저씨, 평소 같으면 신경도 안 쓰일 것들이 쓸데없이 눈에 포착되며 꺼져가던 마음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대놓고 뭐라 할 자신은 없고 운동하며 내려온 머리 사이로 가자미눈을 뜨고 째려보며 분노의 기립근 운동. 이거 원 품앗이 운동시키기가 따로 없다. 그렇게 모든 화를 땀으로 승화 시킨 이후에 찾아오는 평화의 샤워 시간. 따뜻한 물로 끈적한 땀을 씻어내고 개운한 기분으로 헬스장을 나와 제일 좋아하는 커피집에서 진한 아이스아메리카노로 카페인 수혈 엔딩을 맞이하고 나면 이 모든 고생이 보상되는듯한 짜릿함. 이 맛에 오늘도 운동을 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내일의 운동이 걱정되는 건 안 비밀..


그럼에도 내가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

1. 운동을 하고 지긋지긋한 소화불량과 종아리 저림, 피부 트러블이 사라졌다.

2. 운동 후 죄책감 없이 먹는 밥이 제일 맛있다. (운동하면 오히려 입맛이 저하돼서 적게 먹게 되는 것 또한 이득)

3. 나같이 감정기복이 심한 스타일들에겐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운동이 필수다.

4. 운동하기 위해 받는 스트레스가 과도해서 오히려 일상생활이 쉬워진다.


나같이 운동하기 싫은 사람들에게 한 줄기 응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썼지만 오히려 의지를 꺾는 글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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