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 보니 어느새

아무튼, 다이어트

by 담백

인생에서 꽤 많은 날들을 달려왔구나, 달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달린다"라는 어구 안에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은연중에 흘러갔던 의미들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꽤 흥미로운 단어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달리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 하자며 1차, 2차, 3차 달리고. 마지막 열차 놓칠까 달리고.

속을 달래고 다시 또 달리고, 맡은 일의 성패가 나한테 달리고, 직급이 달리고, 식구가 달리고, 체력이 달리고, 말 달리고.


달리는 일들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지금의 내가 되었나 싶다. 주 5일 정도 최소 3km 달려왔으니, 1년에 260km정도 달리는 셈이다. 매일 달리기로 아침을 달리기로 시작하는 일은 얼핏 자몽을 먹는 일과 비슷하다. 자몽을 반 갈라 보이는 자몽의 빨간 속살만 봐도 입에 침이 고인다. 아무래도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심리적 방어를 낮추기 위해 설탕을 솔솔 뿌린다. (어쩌면 생각보다 많이) 그렇게 설탕이 마음의 허들을 낮춰주면 칼로 미리 조각을 낸 자몽을 한 수저 떠먹어본다. 잠시 설탕이 혀를 스치며 둔감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쓰고 신맛이 부리나케 밀려든다. 아무래도 먹지 말걸 그랬어 싶지만 여름만 되면 유독 자몽의 신맛을 맛보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달리기도 그렇다. 매일 아침에 운동을 하는 나는 눈뜨기도 힘든 와중에 달린다고 생각하면 정말 곤욕이 아닐 수 없다. 우선 현실을 부정하며 워밍업으로 폼롤러존을 찾는다. 근육통은 없지만 내 몸의 이곳저곳을 달래 가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는 아쉽지 않냐며 타이른다.


그렇게 몸 전체를 한번 고 나면 자연스레 살짝 정신이 깬다. 달릴 수 있을 때까지만 달리자며 머신 위로 올라 원하는 속도를 맞추고 달리다 500미터쯤 되면 아니나 다를까 몸 구석구석에서 그만하자며 아우성을 낸다.


매번 놀라운 것은 1km가 되는 순간부터는 마치 불을 지피듯이 활력이 돈다는 것이다. 이걸 잘 알고 있기에 잠시 다리와 몸뚱이의 아우성은 못 들은 척 지나가곤 한다. 그렇게 2.5.. 3킬로가 되면 딱 20분. 기분 좋은 훈훈함이 나를 감싸고 근력 운동을 시작하면 금상첨화다. 라고 끝나는 듯하지만 매번 헬스장을 나오면서는 그제서야 정말 징글징글한 곳이라고 침을 퉤퉤 뱉는다. 그리곤 또 다음날 아침이면 운동 후의 개운한 하루를 되새기며 집을 나선다.


어린 시절엔 달리기를 생각하기만 해도 숨이 가빠왔다. 은연중에 밀려드는 압박감 또는 밑에 깔려있는 선입견이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그러고보니 달리기도 그렇고 내 인생을 구성하는 여러 칼럼들도 어떻게 보면 '나'에게 맞는 방법, 스타일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싶다. 알려진 방법이, 또는 누군가에겐 정석이라고 굳게 믿는 방법일지라도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달리기 속에서도 "빨리" 달리기는 유독 "느린" 나에겐 맞지 않았고, 공부에서도 선행 학습보단 후행 학습이 나에겐 더 맞았다. 대학 입시 준비 때도, 일단 넣고 봐야 한다는 수시 전형이 나에겐 맞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억지로 넣으며 나를 희망고문 하고 싶지 않아 정시에 올인했다. 족집게 학원이나 과외도 마다하고 점수가 나오지 않더라도 고시원에 처박혀 EBS로 혼자 공부하는 방식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그래서인지 결과에 후회가 없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다들 한 번쯤은 한다는 미팅이나 과팅조차 하지 않았고, 극 I인 나는 다들 무리지어 다닐 때 고집스럽게 혼밥을 고수했으며, 그 흔한 엠티 한번 가지 않았다.


있어 보이는 척한다고 비웃음을 살까 봐 어디 가서 말을 아끼는 편이지만 한국인이면 다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소주도 나와 맞지 않는다. 그보단 와인이나 위스키, 하이볼 또는 막걸리 쪽이 더 나와 맞다. 당시엔 좀 특인한 애, 이상한 애라며 손가락질받았을진 몰라도 그것이 나임을 인정해 주는 친구들이 주변에 모였고, 30대에 들어 나 자신으로서 꾸밈 없이 본연의 삶을 살아가는 초석을 마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개개인의 차별성이 인정받는 시대가 온 것도 나로선 반가운 일이다.


생 브로콜리는 싫었지만 구운 브로콜리는 그런대로 바삭한 식감이 좋아졌고,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일이나 회식은 극도로 꺼려하지만 또 1:1 만남엔 강하다. 빨리 달리기는 싫어도 내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뛰는 조깅은 좋다. 관심 받는 일은 싫지만 사람들 앞에서 내가 만든 자료를 발표하는 일은 좋다. 인스타에 올릴만한 예쁜 요리를 만드는 일은 약해도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음식을 만드는 일은 좋아한다. 광고성 글을 포스팅 하는 일엔 젬병이지만 나의 일상글을 쓰는 블로그는 꾸준히 쓰고 있다. 그때는 싫었지만 어떤 방법을 취하느냐 따라 음식도, 활동도, 취미도, 취향도, 모습도 변해왔다. 그래도 한번 싫은 사람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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