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의 이직, 100번의 서류, 30번의 면접

천천히, 시간을 들여 끓여야 제맛이 나는 육수처럼

by 담백

일주일의 70%를 보내는 공간, 매일이 행복으로 가득 차진 않더라도 그 공간에서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싶다. 사실 주변 사람들과 이런 얘기를 할 때면 대다수는 결국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아직도 현실을 모른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는 게 사실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그들이 말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만 하며 세상 탓만 늘어놓는 인생을 살고 싶진 않다.


그들에게 반박하며 힘을 뺄 이유는 없다. 거기다 쓸 힘을 누구보다 끈질기게 나의 이상향을 놓지 않는데 썼고, 이제는 다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게 됐냐며 비결을 물어온다. 그런 삶을 구축하게 된 여정을 이 글에 녹여내고 싶다.


10년 전만 해도 내 생각을 뒷받침할 증빙이 없었기에 답답했지만 선배들의 조언을 부정할 수 없었다. 주변에선 그런 마음이라면 회사가 아니라 사업을 차려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 또한 그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그렇지만 나도, 그들도 만족스럽진 않아도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무작정 박차고 나와 현재 받는 연봉 이상을 만들어낼 담대함도, 재능도, 자신감도 없는 보통의 사람들일 뿐이다. (그리고 할 수 있었으면 이미 했겠지)


처음은 반짝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최후에 살아남는 사업은 꽤 긴 시간 공들인 준비나 앞뒤 과정 없이 무작정 시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아직 나를 잘 몰랐기에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야 나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직업(職業)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을 말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먹고살려면 누구든 직업을 가지면서 노동을 해야 한다.


“일 잘한다”라는 피드백을 받고 싶었던 나

내가 만든 요리를 내어줬을 때 “맛있다!”라는 피드백을 듣고 싶듯이, 일을 하면서도 “잘했다!”는 피드백을 갈망했던 것 같다. 목이 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것처럼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 일을 시작하고 엉덩이가 갈아 없어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렇지만 결과물은 나의 절박한 마음과 비례하지 않았다. 현실은 모든 기를 다 모아 해 갈 땐 왜 이렇게 쓸데없이 고퀄이냐는 피드백을 받거나 매번 최선을 다하다가 한 번 미흡한 자료를 제출했을 때엔 신랄한 돌려 까기 시간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 피드백이 없는 것이 최고의 피드백이라는 것을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잡일? 아니고 노작(勞作): 수행 초반에 하는 반복적인 육체노동 자체

드라마에서만 보던 신입사원을 꿈꾸며 회사에 입사하면 내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단순 서류정리만 하다 끝나는 날도 있고, 여기저기 눈치 보다가 끝나버리기도 한다.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그래도 돈을 받는데 이 정도 일만 하다 가도 되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도 있었다. (사실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이게 맞는지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하루하루들이 지나가고 그게 3개월, 6개월이 지나가면 업무의 흐름이 보이면서 긴장하던 어깨가 조금은 내려가고 몸에 익은 일들이 늘어난다. 여기서 좋은 팀장을 만난다면 적절한 임무를 하나 던져 줄텐데, 이 임무의 강도와 의도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때 몸에 켜켜이 쌓아놓은 눈칫밥을 동원해 팀장님의 의도와 니즈를 파악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가려고 기를 써보지만 사실 팀장님의 잣대엔 택도 없는 일이란 걸.


숯을 만들기 위해선 꽤 오랜 시간 아주 뜨거운 고온으로 나무를 불태워야 한다. 그렇게 초고온의 열정을 불태우고 불순물을 덜어내길 반복해 다방면에 유용하게 쓰이는 숯이 되는 과정, 그 시간을 견뎌야 비로소 잡성분 없는 참숯으로 거듭날 수 있다.


5번의 이직, 100번의 서류, 30번의 면접

직업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남들이 들었을 때 직업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한마디로 정의 내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엔 수백 가지의, 아니 수천 가지의 직업이 있고 결국 직접 입어보기 전까진 상상만으론 이게 정말 내 옷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입어볼 수 있는 횟수도 정해져 있다는 단점 입을 당시엔 맘에 들었던 옷이지만 시간이 지나니 처음 입었던 설렘은 무뎌지고 손이 잘 가지 않는 옷이 있고, 5년, 10년을 입을수록 적재적소에 베이식하게 그 가치를 더해가는 옷들도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1년 정도면 완전히 다른 업종이 아닐 경우 업무가 손에 잡히고 머리에 전체적인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력을 더해갈수록 이전에 익혔던 것들에서 다른 갈래로 방향을 틀어나가는 느낌이라 적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6개월, 3개월로 줄어들었다.


반도체, 빌딩 시스템, 소방, 엔지니어링, 고체전해질, 바이오, 교육.. 내가 이직을 반복하며 경험했던 산업군이다. 식품공학과를 전공했지만 반도체 필드 서비스를 서포트하기도 하고, 사내 ERP 관리자가 되기도 하고, 기계기술영업을 하기도 하고, 사이트 운영, 기획을 하기도 하고, 마케팅을 하기도 했다. '한 우물을 파는'사람이 되기보단 '여러 우물을 경험해 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주변사람들에게 "또 이직했어?"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고, 왜 나는 정착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젠 안다. 여러 번의 이직 경험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직장에서의 '나'라는 페르소나를 찾는 과정이었다는 것. 사내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있다. 지옥을 경험한 사람은 전쟁터가 무섭지 않다.


어떤 일을 하던 결국 나의 필요성을 파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낮은 자세로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팀장님도 사람이라 모든 걸 잘하지 못한다. 팀장이 못하는 것 중 한 가지는 내가 잘할 수 있고 그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내가 긁어주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팀 내에서 나의 존재가치는 충분해진다. 그리고 다음 우선순위로 팀원들이 하지 못하는 일 중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를 우러러보는 팀 분위기가 형성되고, 사내에서의 나의 포지션을 “프로해결러”로 구축해 나갔던 것 같다.


일 잘하고 싹수없는 사람이 되기까지

직장 내에서 팀장님과 팀원들 개개인의 특성과 업무 스타일을 관찰하고 그들의 강약점을 파악하는 은밀한 취미를 갖고 있다. 그렇게 면밀히 지켜봤을 때 사내에선 크게 4가지 분류로 나뉘는 것 같았다.

일은 못하지만 착한 사람

일도 못하고 싸가지없는 사람

일은 잘하는데 싸가지 없는 사람

일도 잘하고 착한 사람 (1%)

차마 내 입으로 1%에 든다고 말할 수도 없겠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서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외강내유 스타일인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은 잘하는데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회사에서 일명 ‘또라이‘로 소문이 나면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일단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처음 보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식 밖의 사람도 많은 게 세상이다. 그리고 나의 인격에 대한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좋은 사람들과는 빠르게 친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회사에선 센스 있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가져오는 사람도 물론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 말길 잘 알아듣고 기한 내에 적당한 결과물을 가져오는 사람을 선호한다. 모르면 혼자 쥐고 끙끙대며 시간 끌기보단 나의 무지함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게 더 효율적이다. 여러 팀, 그리고 여러 부류의 인간상을 만나다 보니 아무리 사석에서 좋은 사람이어도 일을 하다 보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일로 시작해서 일로 끝난다.


회사 내에서 일도 잘하고 인품까지 좋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게 외줄 타기를 하다 혼자 지쳐 쓰러지고 나선 그냥 인간미 있게 살기로 했다. 그게 바로 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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