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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Feb 20. 2024

불행히도 창작을 결심한 모두에게

창작자들

혹시라도 이 책을 읽는 여러분 중 창작자의 길을 걷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불행히도 창작을 시작해버린 여러분, 창작자 선배로서 희망을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게, 우리는 100만큼의 시간을 투자해도 0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끔찍한 효율의 직업을 선택했어요. 그러나 제가 꼭 말해주고 싶은 건 지금까지 그걸 몰랐을 리도 없는데 도망가지 않고 이 일을 붙잡고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100번도 넘게 때려치울 만한 일인데, 아직까지 때려치우지 못했다면 이유는 한 가지겠죠.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107page 봉준호 감독의 글


"창작자들"은 동아방송예술대학에서 기획하여 출간된 책으로 11명의 창작자들이 각자 창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강제규 감독, 곽경택 감독, 김용화 감독, 봉준호 감독, 이명세 감독, 이순재 배우, 임순례 감독, 장준환 감독, 전무송 배우, 정진영 배우, 허진호 감독이 글을 썼다.


어떤 책은 표지만 보고도 바로 구매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 "창작자들"이 그랬다. 왜냐면 언젠가 막연하게 내가 그런 주제로 책을 써보고 싶다고 고민했었기에. 가구를 만드는 사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음악을 만드는 사람 등 다양한 창작자들을 인터뷰해 보고 싶었다. 저마다 만드는 것은 다를지언정 고민하는 내용은 같을 거라고 기대했기에. 다만 이번에 읽은 "창작자들"은 아무래도 출판사의 성향에 따라 영화와 연기 쪽에 비중이 실려 있었다.  

"창작자들"에선 말 그대로 저마다의 창작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영화를 만드는지, 혹은 창작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건네는 게 좋을지 와 같은 이야기들이 많다. 또한 창작에 관해 꽤나 실용적인 조언들도 많이 첨언돼 있다. 가령 "스스로를 설득시키지 못한 이야기라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와 같은 조언들. 임순례 영화감독의 "창작을 할 때 스스로 만든 결정에 따라 움직이세요, 다른 사람의 말에 기대지 말고"라는 조언도 와닿았다. 

쓰여 있는 대부분의 글이 좋지만, 아무래도 봉준호 감독의 글이 가장 좋았다. 그건 그만큼 그의 작품이 친숙해서이기도 할 테다. 봉준호 감독은 본인의 초기 작품인 "폴란다스의 개"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는지에 대해서 회고한다. 그리고 창작을 결심한 후배들에게 건네는 "같이 갑시다"라는 말도 좋았다. 허진호 감독의 이력이 인상적이었는데, 철학을 전공하고 일반적인 회사를 다니다 퇴사한 뒤 30살 때부터 영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의 명작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30살 근처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꼭 늦은 나이는 아니겠구나 위안이 됐다.


이 책은 문답의 형식으로 구성돼 있지 않고 스스로 회고하고, 이야기 건네듯 적혀져 있어서 좋았다. 아무래도 인터뷰를 보게 되면 묻는 사람, 답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보는 "나"가 구분되지만, 서술자가 작가 본인이면 지면엔 서술자와 "나"만 남게 돼 더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다. 


꼭 영화계에 종사하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창작" 하기로 결심한 모두에게 재밌게 읽힐 수 있는 책이라고 믿는다. 창작을 결심한 누구라도 이 책에서 나온 문제, 어려움, 보람, 응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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