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오래전 수능을 보고 온 날, 가채점도 하지 않고 알 수 있었다. 나는 수능을 망쳤다. 내신도 안 좋은 난 수시도 쓸 수 없었다. 재수하거나, 하향 지원하거나, 아니면 대학을 안 가는 방법뿐이었다.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대학을 안 갔겠지만 그땐 남들 다 가는 대학 안 갈 배짱도 없었다. 달리 선택지도 없어 재수를 결심했다. 재수 종합반은 2월에 개강했다. 개강 전까진 집에서 쉬기로 했다. 수능은 못 봤지만, 충분히 지쳐있었다. 앞으로도 긴 레이스가 기다리기 때문에 충분히 쉬고 싶었다.
다행히도 우리 부모님은 그런 나를 이해해줬다. 그럴 만도 한 게, 부모님은 내 고 3 시절의 대부분을 함께하면서 힘들게 보냈다. 입시생보다도 일찍 일어나 아침을 챙기고 독서실에서 돌아오는 늦은 저녁까지 깨 있었다. 그러니 체력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지, 심리적으로는 얼마나 위축돼 있을지도 가장 잘 알고 계셨다. 내가 방에서 문 닫고 혼자 속상해하고 있을 때도 모른 척 가만히 두셨다.
부모님은 나를 다그치지 않았다. 내가 충분히 슬플 수 있고, 힘들어 할 수 있게 가만히 두셨다. 앞으로 어떻게 공부할 건지, 진로는 정했는지도 묻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부모님은 내 모든 결정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갖는다. 부모님은 다만 그 질문 자체가 시기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질문은 어울리지 않았다.
불행히도 개강보단 설날이 먼저였다. 큰 집이라, 어른들은 우리 집에 모였다. 죄진 것 하나 없었지만, 수능 좀 못 봤다고 죄인이 된 마음이었다. 실패에 무덤덤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나는 대학 입학 - 입대 - 취업 - 결혼이라는 전형적인 한국 사회의 삶에서 첫 관문부터 실패한 상태였다. 당연히 내 실패 소식은 다른 친척의 인 서울 대학 합격 소식만큼이나 빠르게 퍼졌다. 빈 술병이 쌓여가는 늦은 저녁이 되자 인내심의 끈을 놓은 한 어른이 질문을 건넸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궁금해서 하는 질문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상대방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아낄 수 있는 질문이 많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안 하냐는 질문도, 취업은 안 하냐는 질문도, 미래 계획은 뭐냐는 질문 같은 "화자 위주"의 물음이 그렇다.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묻지 않았던 건 안 궁금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나를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선 대단한 관심도 필요 없다. 조금만 신경 쓰면 그 친구가 취업 준비는 잘 되는지, 결혼 생각은 있는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는 대강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예상 답변이 긍정적이지 않을 것 같다면 안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 기자는 묻는 게 직업윤리라지만, 우리나라 어른들은 기자도 아니면서 진심으로 궁금하지 않은 걸 자주 묻는다.
1년 간 아일랜드에 어학연수를 하며 가장 좋았던 건 그들의 무관심이었다. 그 문화에선 서로가 서로에게 사적인 질문을 건네지 않는다. 그들의 무관심에 가장 놀랐던 건 동성 커플에 대한 태도였다. 한국이라면 동성끼리 손잡고 다니는 일이 모두의 이목을 끌 일이지만 아일랜드에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여느 평범한 이성 커플이 손잡고 지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정말로 관심 없다는 건 아니다. 아일랜드는 동성애가 합법화된 나라다. 정말로 관심이 없다면 합법화 국민 투표율이 60%나 됐을 리 없고, 더구나 찬성표가 62% 됐을 리는 더더욱 없다. 이 무관심은 철저하게 관심을 전제로 한다.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충분히 관심을 준 뒤에, 이제는 그들이 편할 수 있게 무관심을 선물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에서 때리는 사람은 누굴까. 아마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어른들이지 않을까. 아일랜드에선 튀는 색 옷이라고 뭐라는 사람 없었고 남들과 다른 행동 한다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한국에서 어른들에게 많이 받았던 질문도 아일랜드에선 어색한 물음이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질문에 부응하기 위해 쫓기며 살지 않았다. 새로운 세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어른은 질문을 가장해서 나무라거나, 요즘 애들은 철없다고 여기지 않는다. 내가 만약 충분히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면, SKY를 갈 수 있냐는 물음보단 요즘 잘 지내냐는 물음이 먼저였어야 했다. 내 진로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됐다. 아일랜드는 날씨도 안 좋고 음식도 맛없지만 그때의 무관심은 그립다.
이제 또 설날이 온다. 대학에 대한 질문은 오래전 끝났으니 이번 명절은 취업에 관해 물어올 것이다. “지난 하반기에 10군데에 지원해서 전부 떨어졌고, 이번에는 알바를 하며 상반기 공채를 준비 중에 있으며, 인적성 공부와 자소서를 다듬고, 최근에는 창업 경험이 관련한 직무에 좋다고 해서 창업 프로그램에도 참여했으며, 직무는 마케팅이 1순위이지만, 기업의 규모에 따라서 영업관리와 영업에도 지원할 생각 중이다”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내 실패에 대한 얘기를 길게 하는 것 보다야, 어른들이 안 묻는 게 더 쉽다.
“뭐야, 이것저것 다 질문하지 말라는 거야? 그러면 궁금해해서도 안 되는 거야?"라며 억울해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질문이 진심을 바탕으로 한 건지 아닌지 정도는 구별하기 쉽다. 요즘 취준생은 수준이
높아 질문 의도를 파악하는 훈련이 잘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실수를 할까 두렵다면 다른 대화 주제를 얘기하면 된다. 세상엔 재밌고, 누구도 다치지 않고, 평화로운 이야깃거리가 많다. 최근 재밌게 본 영화나, 손흥민이 얼마나 잘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재밌는 에피소드 등등 말이다. 만약 그런 이야기도 날 선 채로 이야기한다면,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관심의 끝은 무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관심을 가져서, 내가 취업을 힘들어한다는 걸 알게 됐다면 부디 내 취업 안부에는 철저히 무관심하기를. 배려는 관심에서 나오고, 상대가 불편해할 질문은 안 하는 게 상책이다. 이번 설에는 이 규칙을 잘 지켜 모든 가정에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 남 걱정할 거 없이 나부터 잘 보낼 수 있기를.
이 글이 브런치 에디터의 픽으로 선정됐네요 기분 좋은 명절이 되려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