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의 면접

프롤로그

by 청년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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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반이 되자 첫 출근 날 가져온 치약이 동났다. 1년 전 5월에 입사했으니 치약을 다 쓰기까지 11개월 걸렸다. 나는 성인 남자 한 명이, 하루에 한 번, 주 5일 치약을 사용하면 어느 정도 기간이 걸리는지를 체감했다.

다음 치약을 고민하면서 내 근로 계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약 기간에 의하면 내 마지막 출근일은 5월 31일이다. 앞으로 한 달 조금 더 남았다. 만약 이대로 계약이 종료된다면 두꺼운 치약은 불필요하다. 여행자 용 치약이면 족하다.


치약 크기를 결정하는 일부터, 첫 커리어를 어디서 시작할지, 와 같은 중요한 일이 앞으로 수 일 내에 결정된다. 어쩌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다.

정규직 전환 승산을 반반으로 본다. 팀에서는 사람이 필요하고 팀장은 나를 원한다. 하지만 회사는 인력 충원에 보수적이다. 지난 일 년 간 많은 동기들이 정규직에 문을 두드리다 결국 계약 종료됐다. 하지만 적어도 팀과 팀장이 힘쓰고 있으니 승산을 걸어본다.


돌아보면 지난 1년 간 매일 매 순간을 면접 본 것 같다. 나는 파트타이머 신분으로 입사해서 출근 첫날 초고속 승진으로 인턴이 됐고, 3개월 계약 종료에서 1년 더 연장됐다. 이제 이 레이스 마지막 스텝인 정규직 전환을 코앞에 두고 있다.


앞으로 적어 나갈 이야기는 지난 1년간 정규직 전환을 목표로 삼았던 미생의 기록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투쟁”같은 비장함이나, “대기업 입사를 위한 꿀팁”같은 정보는 아쉽게도 없다.

그 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회사 생활 에피소드부터, 거기서 만난 사람들, 혹은 배움들. 비정규직의 서러움, 혹은 직무에 대한 고민 등등이 담길 예정이다. 산만해 보이지만 이 전체의 이야기는 결국 한 지점. “취업”에 관한 키워드로 귀결될 거다.


브런치 첫 책은 “필패하는 자소서”였다. 이 책은 자소서 문항에 대해 제멋대로 대답한 책이다. 당연하게도 취준생 시절 쓰였다.

아직 가제이긴 하지만 “1년간의 면접”은 그렇게 투덜투덜 대는 취준생이 결국 대기업 인턴에 입사해서 1년 동안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두 콘텐츠는 시리즈로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 기록물을 끝마쳤을 땐, 혹은 적어내는 동안엔, 혹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내 거취가 결정날 거다. 프롤로그를 적고 있는 지금으로선 어떻게 될 지 알 리 없다. 다만 정규직 전환이든, 계약 종료든, 나는 어떤 식으로든 적극적으로 행복을 차지할 준비가 돼 있다.


미래에 일어날 일에 내가 가진 결정권은 없으니, 그저 나는 오늘 하루를 묵묵히 보내면서 나에게 벌어질 일을 기대하며,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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