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설록 사업기획
나는 손으로 하는 건 다 못한다.
원래 둘째는 그런다. 멀쩡하던 손잡이도 내가 잡으면 빠진다. 뭐를 아주 잠깐 만졌는데도 고장 날 때가 있다. 군대에선 총기 분해가 곤욕이었다. 그래서 많이 혼났다. 손으로 오밀조밀 만지는 건 재주가 없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마치 게임에서 어떤 캐릭터는 특정 능력을 몰빵 받는 것처럼, 나는 대장장이 스텟이 0으로 태어났다. 나랑 같이 총기 분해 못하던 친구가 한 명 더 있었다. 그 친구도 둘째였다. 우리가 뭘 만져서 부러지거나, 뭐가 빠지면 우린 항상 이렇게 스스로를 변호했다. 원래 둘째는 그렇다고. 그러니까 둘째 시키지 말라고. 마법의 주문이다.
퍼즐 맞추기는 고문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퍼즐을 완성해 본 적이 없다. 대신 조금 다른 방식으로 완성시켜 본 적은 있다. 옆에서 누가 날 쳐다보는 게 느껴지면, 일부로 말도 안 되는 것을 이리저리 갖다 대 보는 거다. 그러면 답답한지 "아이씨 이리 가져와봐"하면서 본인이 퍼즐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리곤 이내 퍼즐이 완성돼 있다. 신은 나에게 대장장이 손을 주지 않았지만, 눈치는 주셨다.
핸드폰 액정필름도 더럽게 못 붙인다. 그걸 붙이기 전엔 번지점프를 앞 둔사람처럼 숨을 꾸욱 참고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필름을 입히지만, 내가 참았던 그 공기 두 모금이 약 올리듯 꼭 필름 안으로 "까꿍"들어간다. 그럴 때면 별안간 내 옆에 어떤 사람이 "아이 그거 하나 못 붙이냐"면서 가져가 직접 붙인다. 선풍기를 고치거나, 전구를 갈아 끼우는 일, 사과를 예쁘게 깎는 일이나, 바느질을 잘하는 일은 이번 생에서 포기한 일이다.
손재주가 없는 건 어느 직무에선 사소한 일이 아니다. 나는 맥도날드에서 알바했다. 매니저는 인터뷰를 볼 때 어느 포지션을 맡고 싶냐고 물었다. 맥도날드 직무를 크게 분류하자면 버거 만드는 그릴 포지션이 있고, 카운터를 보는 일이 있다. 나는 도저히 버거를 만들 자신이 없었다. 만약 내가 버거를 만들었다간 더블패티를 트리플 패티로 만들거나, 빅맥을 스몰맥으로 만드는 사태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면대면으로 사람을 대응하는 건 자신 있었다. 나는 카운터를 담당하겠다고 말했다.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자신 있는 역량이다.
그러나 그땐 몰랐다. 세계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있으며, 이제는 키오스크가 모든 주문을 맡는다. AI니, 빅데이터니, 이런 것들로 일자리를 잃는다는 건 뉴스로나 보던 일이었지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 카운터 직무가 손님과 만날 일이 없으면 무엇을 하냐고? 버거 만드는 일을 제외한 모든 일을 한다. 콜라를 뽑고, 환타를 뽑고, 제로콜라를 뽑고, 핫초코 만들고, 콘수프를 만들고, 매장을 청소하고, 쓰레기통을 비운다. 카운터라기 보단 잡부에 가깝다.
나는 둘째 손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눈치도 있었기에 정체를 숨긴 채 그럭저럭 일을 해결했다. 게다가 아무리 둘 째여도 쉬운 일은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건 일주일 차 때였다. 나를 당황시킨 건 "감자튀김 넣기"였다.
나도 손님으로 갔을 땐 몰랐다. 그러나 감자튀김을 담는 일에도 일종의 엄격한 규율이 존재한다. 감자튀김은 일자로, 똑바로 서야 한다. 빨간 종이 안에서 감자튀김이 옆으로 누우면 안 된다. 그러면 식욕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걸까. 감자튀김은 일직선으로 올곧게, 꼿꼿이 서 있어야만 안전히 고객에게 전달될 수 있다.
하나 더 있다. 감자튀김을 담는 배가 뽈록 해지면 안 된다. 감자를 예쁘게 담기는 게 손님을 위한 일이면 배가 볼록해지지 않는 건 본사를 위해서다. 그건 감자튀김이 정량보다 더 많이 들어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칼 같은 맥도날드가 그런 실수를 용납할 리 없다. 그래서 감자를 빨간 종이에 넣을 때는 아기의 주먹을 잡듯이(실제로 교육 때 들은 말) 웅크려서 살짝 잡고, 감자를 일직선으로 팍팍, 두 번의 손목 스냅으로 넣어야 한다. 이게 뭐가 어렵냐고? 당신은 둘째가 아니라서 모른다.
그래도 감자는 양반이다. 진짜 문제는 아이스크림이다. 나는 진심으로 아이스크림을 예쁘게 만드는 일이 전공 수업보다도 어렵다.
알바 한 지 2주쯤 됐을까, 점심시간이 지난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바깥이 웅성웅성하더니 엄청나게 많은 손님이 밀려 들어왔다. 말 그대로 매장이 급습을 당했다. 당연히도 매장은 바쁜 시간을 제외하고는 최소한의 인력만 배치해 있다. 카운터도 나 혼자 맡고 있었다. 널널한 시간이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중이었다. 우리 매장 근처에는 대학이 많이 있는데 그 날이 수시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끝나는 시간이 되자 하나 둘 매장으로 몰려온 거다.
그 날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아이스크림 콘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들어와도 보통 사수가 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쩐담. 사수는 퇴근하고 다음 사수는 저녁에 온다. 점심시간이 지난 학생들은 키오스크 앞에서 "그냥 간단하게 아이스크림만 먹자"라는 말이 들려온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리고 결국 아이스크림 콘 주문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근처 맥도날드에서 내 돈 주고 아이스크림을 사 와 손님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옆에서 곁눈질로 봤던, 티브이 광고로 몇 번 봤던, 우리 매장 앞에 포스터에 붙어있는 아이스크림 모양을 기억해내며 아이스크림 레버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콘 위에는 계속해서 도라에몽 주먹 모양의 아이스크림만 쌓여갔다. 답답하던지, 다른 포지션을 맡은 사람이 달려와서 아이스크림 주문을 몽땅 해치웠다. 그때는 내가 둘째인 게 많이 억울했다.
감자를 담는 일, 콘을 만드는 일도 어려웠지만 일을 배울수록 다른 곳에서 실수가 생겼다. 눈치로도 해결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점점 나를 향한 시선도 좋지 못했다. 나는 그래도 살면서 똘똘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언수외는 못하지만 일 머리 라던가, 사회에 대한 관심이라 던가, 글쓰기라던가, 책 읽기 같은 일은 꾸준히 했다. 그러나 그런 건 손으로 하는 일의 실패를 극복할 수 없었다. 나 스스로, "내가 이 일을 못하는구나"를 인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반복되는 실수 끝에 나는 그걸 받아들였다. 나는 맥도날드에서 카운터로 요구하는 역량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역량개발을 위해 어떤 활동과 노력을 하였느냐고? 안 했다. 나는 일을 그만뒀다. 내가 못하는 일을 열심히 노력해서 평균으로 만드는 일 보다야, 그나마 잘하는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글 쓰는 부업을 했었다. 인터넷에 칼럼을 기고하면 4만 원을 받았다. 또는 국가기관에서 하는 기자단 활동을 했는데 이건 한 편에 7만 원을 받았다. 당연히 생계를 유지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용돈 벌이는 됐다. 어차피 알바가 용돈 벌이지 않은가. 스트레스받으며 콘을 만들 바에야 글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게 당장 맥도널드만큼의 돈을 가져오지는 못해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개발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선택과 집중이다. 나는 확실히 손으로 하는 일은 못한다. 이 일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그런 사람은 장인이 될 수도 있고, 훌륭한 셰프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둘째라, 그쪽엔 역량이 없다.
대신 나는 사람 앞에 서서 말하는 거는 조금 자신 있다. 영어로도 말할 줄 안다. 영어 경시대회도 입상했다. 마케팅 역량이라고 해야 할까. 2년 동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기획안도 여럿 내봤고 칭찬도 들었다. 떨어지긴 했지만 마케팅 공모전도 많이 출품했고 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1등도 해봤다. 20개가 넘는 나라를 여행하면서 많은 국적의 친구들을 사귀었다. 좋게 말해서 글로벌 역량이라고 해보자. 아무튼 그게 꼭 손으로 오밀조밀해서 뭔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분명 내가 잘하는 다른 게 있다고 믿는다.
못하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일은 분명 어렵고 자존심 상한다. 그러나 뭐 다 잘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내가 어떤 걸 못하는 만큼, 분명 다른 거는 잘하기 마련이다. 어떤 일을 못하는 건, "나"를 이루는 수많은 조각 중에서 한 부분의 실패다. 그 한 조각이 실패가 내 삶 전체를 무너트릴 순 없다.
여러분은 무엇을 잘하는가. 또는 무엇이 부족한가. 그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가. 노력해도 천상 안 되는 일이 있지 않은가? 난 많던데. 그럴 땐 받아들이는 건 어떤가. 좀 못할 수도 있지 다 잘할 수 없지 않은가. [4,155자]
“필패하는 자소서”에선 자소서 문항을 제 맘대로 대답하는 형식의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진로 고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 사이에서의 갈등, 부끄러움, 대인 관계 등이 키워드입니다. 기획 의도가 담겨있는 프롤로그를 첨부합니다. 팔로우를 하시면 글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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