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 SHOP 마케팅 직무
나는 기부에 실패했다.
그때는 군대에 있을 때였다. 나이는 23살쯤 됐을까. 2014년이니 요즘처럼 병사들 월급이 풍족하지 못했다. 병장 즈음엔 17만 원 정도를 받은 것 같다. 그것도 월급이면 월급이라고 전역날까지 월급 전날은 항상 설렜다. 이런 거 쓸 시간에 자소서 한 편을 더 써야 다음 월급을 받을 텐데, 왜 이러고 있을까.
나는 JSA에서 군 생활을 보냈다. 영화에 나오는 공동경비구역 그곳이다. 군대에선 전방에서 근무하면 생명수당을 준다. 당연히 JSA도 생명 수당인 33,000원을 받았다. 취지는 알겠으나 이름을 꼭 그렇게 지어야 했는지 싶다. 생명을 담보로 한다는 수당으로 33,000을 받으면 꼭 내 목숨 값이 그 정도로 책정된 것 같지 않은가. 역시 국방부는 참 일을 못한다, 고 불만을 가지면서도 매 달 더 들어오는 돈이 좋긴 좋았다.
이제 막 일병이 꺾였을 무렵, 평소처럼 내무반에서 TV를 보던 중에 한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제3세계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한 기부금을 모집 광고였다. 평소였다면 무시하고 넘어갔겠지만, 하필 그때 읽고 있던 책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였다. 이게 얼마나 좋은 책이냐면, 결과적으로 내가 기부를 시작하게 됐다. 운명처럼, 평소 관심 있던 것과, TV 광고 속 아이들의 절절한 이미지가 만났기 때문이다.
빠르게 나오는 전화번호를 메모지에 옮겨 적고 일과가 끝난 뒤에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을 들으며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 오는 이상한 흥분을 느꼈다. 곧 한 여자 안내원이 전화를 받았고 나는 기부 의사를 밝혔다. 안내원은 기부 금액을 2만 원, 5만 원같이 설정된 금액으로 기부할 수 있고, 원할 경우엔 자유롭게 낼 수 있다고 알려줬다. 나는 33,000원을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그 이름도 대단한 생명 수당으로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혼자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그제야 생명 수당이라는 이름이 제 몫을 해낸 것 같았다. 상담원도 왜 하필 그 금액이냐고 물어서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월급 통장에서 매 달 자동 이체로 결제 되게 설정 한 뒤 몇 가지 안내사항을 듣고 전화를 마쳤다. 정수리에서 뿌듯함이 콸콸 쏟아졌다.
그렇게 결제일이 되면 33,000원이라는 금액은 오차 없이 빠져나갔다. 더 이상 TV광고 속 아이들도 예전만큼 감동을 불러내지 못했다. 이제는 내가 저들을 위해 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몇 달이 지났고 내가 기부를 한다는 사실은 집에도 전해졌다. 후원하는 아이의 사진과 편지가 집으로 전송됐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나를 무척 대견해하셨다. 이따금씩 잊고 지내다가도 내가 누군가를 위해 기부하고 있다는 게 번뜩 떠오르면 그 순간 내 삶이 굉장히 의미 있어졌다. 나는 그 우쭐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얄팍한 동기는 지속되기 힘든 법이다. 여름이 지나고, 이젠 상병이 됐다. 나는 8박 9일 정기 휴가를 앞두고 있었다. 그건 군인에게도, 바깥사람에게도 아주 긴 시간이다. 하루도 휴가를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서 모든 날을 약속 잡았다.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 면회 와준 후배들, 사촌 형까지. 점심과 저녁 약속을 분리해서 잡기도 했다. 축제 시즌 속 연예인 스케줄 같았다. 단순한 셈으로도 내 잔고로는 모든 약속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예전에 적어두었던 메모지를 다시 찾았다.
불경기를 가장 먼저 반응하는 건 사치품 아닐까. 기부 행위는 내게 그런 셈이었다. 33,000이란 금액이 아니라 행위가 말이다. 나는 기부자라는 명패가 좋았다. 그 감정은 이상하게 고등학교 때 처음 나이키를 신었을 때와 비슷한 종류의 흥분이었다. 안내원은 해지하겠다는 말에도 실망한 기색이 없었다. 어쩐지 그 차분함이 나를 조금 더 슬프게 만들었다. 정기 휴가에서 돌아올 때, 오히려 내 잔고는 불어 있었다. 만난 사람들은 군인이 돈이 어딨냐면서 사주고, 가족들은 가족들대로 용돈을 줬기 때문이다. 다시 전화를 걸어 기부를 재개하겠다고 말할 뻔뻔함도 없었다. 휴가 중 친구들에게 호탕하게 쏜 술 값이 5만 원쯤이었다. 지금도 33,000과 50,000을 생각할 때마다 그 아이의 편지와 술자리가 겹쳐 생각난다.
모든 것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에, 당연히도 언젠가는 끝이 날 기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낸 것에 비해 너무 많이 즐겼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자주 부끄럽게 만든 건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이상형을 갖기 마련이다. 나는 내가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고 싶다는 듯 기부를 했다. 그런데 내 기부 중단기는 실제의 내가, 되고 싶은 나에게 실패한 모습이었다. 아마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내 실패에 쿨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는 마음으로 털어버릴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요즘도 나는 수 없이 "되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내"가 자주 싸운다. 예를 들어 되고 싶은 나는 사회적 약자에게 배려심을 갖는 사람이다. 그러나 실제의 나는 꽉 차 있는 주차장에서 딱 한 칸 비어져있는 장애인 주차구역을 보면서 "어쩌면 저건 낭비이지 않을까"라는 마음을 가질 때도 있다. 법은 모두에게 공정해야 한다고 믿으면서, 동시에 어쩔 땐 내 쪽으로 조금은 유리했으면 하고, 복지 정책은 소득분위로 차등 지급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소득분위로 배제될 땐 많이 서운해했다.
형편이 넉넉할 땐 “되고 싶은 내”가 이기는 편이다. 그런데 형편은 보통 안 넉넉하다. 왼쪽 귀에선 천사가 오른쪽 귀에선 악마가 유혹하는 것처럼 내 마음에선 항상 이 두 자아가 싸운다. 그리고 자주 “실제의 내”가 이기는 걸 본다. 그러고 보면 나는 매일매일을 되고 싶은 나로부터 실패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기부 실패기는 "내가 가장 되고 싶어 하는 내 모습"으로부터의 실패라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누구든 하나쯤은 자기 이상형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당신은 어떤 "되고 싶은 나"를 가지고 있는가? 그 둘은 얼마나 일치, 또는 불일치 하는가. [2,984자]
“필패하는 자소서”에선 자소서 문항을 제 맘대로 대답하는 형식의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진로 고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 사이에서의 갈등, 부끄러움, 대인 관계 등이 키워드입니다. 기획 의도가 담겨있는 프롤로그를 첨부합니다. 팔로우를 하시면 글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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