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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Feb 16. 2020

대학교에서 경험했던 팀 프로젝트 중 하나를 선택하여,

소니코리아 마케팅팀

소니코리아 마케팅팀

대학교 입학 이후 경험했던 팀 프로젝트 중 하나를 선택하여, 본인이 팀 내에서 맡았던 역할과 기여한 바를 중심으로 자세히 작성해 주세요.(1,000자)


나는 팀 프로젝트에서 조장을 맡아, 팀이 깨지는 걸 막았다.


그 수업은 소위 꿀 강의였다. 이 글이 유명해질 수 있으니 과목 이름은 비밀로 부치겠다. 인기가 많은 교수님이었다. 젊고, 수업을 일찍 끝냈다. 강의도 잘했다. 학생들 사이에선 경영학 1타 강사로 불렸다. 오늘 수업할 내용이 전부 머릿속에 담겨있다는 듯 PPT를 안 보면서 강의했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됐는데, 교수님은 미국 출신이라 발음도 좋았다. 그리고 재치도 있었다. 특유의 미국인 조크라고 해야 하나, 말장난을 자주 했다. 나도 자주 웃었다. 혹시 이해가 잘 안 돼도 옆 사람이 웃으면 일단 웃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좋은 학점을 쉽게 받는 수업이었다. 교수님은 학점을 주는 게 아니라 너희가 가져가는 거라고 말했다. 무슨 말이냐면,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절대평가로 성적이 결정되는데 특정 구간만 넘기면 A를 받기 때문이다. 그 기준도 까탈스럽지 않았다. 꿀 강의에 필요한 모든 항목을 갖췄다. 재밌고, 빨리 끝나고, 성적 잘 받고. 수강신청에서 잡기도 어려울 만큼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진실로 완벽하기만 했다면 이 글은 나오지 않았을 터. 그 강의는 팀 프로젝트가 2번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모든 학생이 열외 없이 발표를, 그것도 영어로 해야 했다. 어차피 경영학 과목 중에 팀 프로젝트 없는 수업은 없다. 그러니 이왕이면 점수 잘 받는 곳으로 모인 거다. 중간고사는 교수님이 정해준 주제로, 기말고사 발표는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녹여서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교수님은 수강생이 40명이니 8명씩 5조를 만들자고 했다. 8명이라, 그때부터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일단 축구 동아리끼리 뭉쳤다. 나를 포함해서 3명이 됐다. 앞자리에서 동기 3명이 같이 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6명이 됐고 이제 2명만 남았다. 그러던 중 축구팀 친구의 지인 2명이 같이 하자며 다가왔다. 이때만 해도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줄 알았다. 그렇게 나를 가운데로 앞 엔 동기 3명과, 왼쪽엔 축구팀 2명, 오른쪽엔 축구팀의 지인 2명으로 팀이 짜졌다. 그러니 볼 것도 없이 조장은 내 운명이었다. 나이가 제일 많기도 했다. (이건 좀 억울하다, 왜 나이 많으면 조장이지? 아무튼 이건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고)

 

중간발표는 쉬웠다. 무난히 분담해서 해치웠다. 진짜는 기말고사 발표였다. 여기서부턴 적극적으로 주제도 정하고 조사도 필요했다. 앞으로가 기승전결에서 "전"부분이다.


동기 세 명은 말하자면 학구파 친구들이다. 왜 다들 주변에 성실한 친구들 있지 않은가. 수업 필기도 꼼꼼하고 지각도 한 번 안 하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경영학 과목을 배우는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 조 발표 3주 전부터 빨리 시작하자고 나를 다그쳤다. 경영학 덕후는 아니겠지만 학업에 진지한 친구들이었다. 기말고사 발표를 준비하면서 실제로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잘 녹여내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단톡방에서도 먼저 제안하기도 하고 기업 조사도 적극적이었다.


그 세명을 제외한 친구들은 실리파였다. 이 친구들은 A학점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 수업은 쉽게 A를 받을 수 있었다. 적당한 PPT 띄우고, 5분만 견디면 된다. 경험상으로 그렇게 발표해도 좋은 학점 받는 데에 큰 지장이 없다. 특히 상대평가라면 끝나고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온다. 거기선 남을 무너트려야 내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절대평가 과목이다. 학생들도 교수님 눈치 보면서 적당한 질문만 던졌다. 실리파 친구들은 A학점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만 들이고 싶어 했다. 그러니 적극적일 수가 없다.


마치 아인슈타인의 무슨무슨 법칙처럼, 조별과제 제1법칙엔 이런 말이 있다.

"한 프로젝트에서 적극적인 사람과 안 적극적인 사람이 있으면 싸움은 필연적이다"


학구파 친구들이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단톡방에 "기업 조사를 이렇게 부실하게 하면 어떡하냐"라고 질문 아닌 질문을 한 거다. 객관적으로도 미흡한 조사였다. 그러니 관점에 따라 실리파 친구들이 먼저 방아쇠를 먼저 당겼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쪼록 이 한 마디는 1차 대전의 시작을 알린 총성처럼 단톡방의 금을 그었다. 읽씹과 안 읽씹이 오갔다.


이 단톡방 대전은 두 친구가 상이한 목표를 추구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학구파 친구들은 조별 과제를 통한 배움이 중요했다. 그들은 열심히 하면 A학점은 따라오는 거라고 믿는 친구들이었다. 실리파 친구들은 학점이 중요했다. 그 친구들은 좋은 학점이면 됐다. 그리고 이 수업은 쉽게 해도 누구나 A를 받는다. 그러니 분산 투자하듯 이 과목에선 힘을 아껴 다른 과목에 에너지를 쏟자는 생각이었다. 두 주장 다 그럴듯 하다. 그러면 조장인 나는 어떤 선택을 했냐고? 나는 팀이 안 깨지는 게 중요했다. 누구라도 단톡방을 나가면 그땐 배움이고 학점이고 나발이고 말짱 도루묵이다.


일단 과열된 단톡방을 진정시켰다. 이럴 땐 나이가 많은 게 유리했다. (그래서 조장은 나이가 많아야 하나?) 그리고 PPT를 1/8로 나눴다. 어차피 발표는 모두가 해야 하니, 자기가 발표할 부분을 자기가 담당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마치 옴니버스식 구성이다. 이러면 발표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통일성도 부족하고 앞에서 했던 말을 뒤에서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 수 있는가.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진행이 안 됐다. 결국 발표날이 됐다. 학구파 친구들은 역시나 탄탄한 발표를 했고, 실리파 친구들은 준수한 발표에 그쳤다. 그리고 결론적으론 전부 A학점을 받았다. 이러면 누군가 "열심히 한 애들 덕분에 모두 좋게 받았네"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실리파 친구들보다 더 엉성한 발표를 한 다른 조 친구들도 A를 받은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이 정도면 팀 프로젝트에 아주 많이 기여한 거 아닌가?


그 조별과제가 끝나고도 이 질문은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내가 평소에 고민했던 논의는 "좋은 결과를 위해 과정이 소외돼도 괜찮은가?"따위였지만 이 문제는 한 단계 더 꼬여 있었다. "만약 좋은 학점이 이미 결정돼 있다면, 체력을 아낄 것인가?, 혹은 그럼에도 열심히 수업을 들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어느 쪽을 답해도 틀린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실리파와 학구파는 조별 과제가 끝나자마자 나에게 숙제를 남겼다.    


여러분은 어떤가. "굳이"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그럼에도"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나는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큰 사람이 못 되나 보다. [3,610자]


“필패하는 자소서”에선 자소서 문항을 제 맘대로 대답하는 형식의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진로 고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 사이에서의 갈등, 부끄러움, 대인 관계 등이 키워드입니다. 기획 의도가 담겨있는 프롤로그를 첨부합니다. 팔로우를 하시면 글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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