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암기왕 세훈이 이야기

by 골든로우

엄마의 욕심

15년 전쯤 일이다. 한 아이를 가르치게 되었다. 2년을 가르쳤는데도 아무런 발전 없이 그 아이와는 헤어졌고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내가 아이를 낳으면 어릴 때 영어를 안 가르치겠다는 결심이었다. 그 아이와의 경험 때문이었다.


어느 날 제 나이보다 등치가 큰 아이와 엄마가 찾아왔다. 아이에 대한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한글도 떼지 못한 일곱 살에 아이는 중국인 화교 학교에 입학을 했다. 중국어를 배워 주겠다는 엄마의 의지로 2년을 다니고 3학년 때 필리핀으로 유학을 갔다. 이번엔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의도였다. 영어에 어느 정도 적응할 시기인 6학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립학교에 들어간 상태였다. 아이 엄마는 사립 초등학교에서 아이에 실력을 자랑하고 싶었는데 막상 현실은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고 했다.


부족한 곳을 채우고 싶어서 문법부터 가르쳐 달라고 하셨다. 처음 두 달 동안 수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글씨였다. 한글 글씨도 영어 글자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문장 기본 5 형식을 한국말로도 설명하고 영어로도 설명해 주었다. 그 나이의 평범한 남자아이처럼 대답도 곧 잘하고 알아듣고 있는 듯했다.


정보의 오류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 선생님, 수요일까지 문법 숙제해 와야 해요?”라고 아이가 물었다. “ 아니, 우리 수업은 수요일이 아니잖아 월요일이 수업이야~ 월요일까지 문법 숙제 해오면 돼~”라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수업일은 월요일이었고 숙제는 문법이었다. 그런데 다음 월요일 약속 시간에 아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내가 ‘수요일까지 독해 숙제를 해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와 이야기할 때 내가 정정해준 이야기와는 완전히 딴 이야기였다. 자신이 이야기한 것을 철썩 같이 믿고 수요일 수업으로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정보의 오류까지 넣어가며 엄마에게 전한 것이었다. 요일 변경은 그렇다고 해도 문법 숙제는 자신의 임의대로 독해 숙제로 바꾸어 전달했다. 이런 오해에 대해 엄마에게 이야기했더니 “ 아 ~ 얘가 가끔 그래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하며 웃으셨다. 그래서 나도 별일 아니다 싶어서 앞으로 엄마에게 아이의 숙제를 직접 알려 드리겠다 라고 했다.


얼마 후 진짜 문제를 발견했다. 이 아이는 공부한 내용을 하나도 이해 못하고 있었다. 정보가 완전히 섞여서 뭐가 뭔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필기한 노트 필기의 글씨도 못 알아보고 있었다. 이런 심각한 상태를 부모님과 의논하였다. 그리고 2년 가까이 함께 공부했는데 실력은 나아졌으나 아이는 점점 피폐 해져 갔다. 중학교에 진학하여 과목이 많아진 데다가 여러 가지 결점을 극복하지 못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견뎌 내지 못하고 있었다. 공부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이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 여러모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큰 원인은 언어였다. 한글이 완성도 안된 상태에서 중국어 한자가 들어왔고 그것도 완성은커녕 시작 단계에서 알파벳으로 넘어갔으니 아이의 머리는 복잡해진 것이다.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어떤 언어도 완성되지 않아 학습이 어려워져 버렸다. 그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국어와 중국어와 영어를 알아들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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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나에게는 답습하지 않고 싶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내 아이는 절대로 한국어 한글이 어느 정도 익숙하기 전까지는 다른 언어로 아이를 괴롭히지 말아야지 작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3학년인 나의 아들은 영어 학원을 안 보낸다. 나도 안 가르쳤다. 내가 영어 선생이니 당연히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겠지 하지만 5개월 전까지는 안 가르쳤다.


나도 학부모이고 또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어떻게 할지 많은 고민을 하며 기다렸다. 만화로 되었지만 다섯 권으로 된 한국사 이야기를 한 권당 5 회독할 때까지 기다렸다. 춘향전, 홍길동전, 심청 전등 읽어야 되는 책을 읽고 모르는 단어가 웬만큼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신문에 해드 라인만 읽고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게 하며 기다렸다. 야당이 뭔지 여당이 뭔지 국회가 뭔지 헌법이 뭔지 물어보고 대답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5개월 전에 드디어 영어를 읽히기 시작했다.


신중한 시작


3월부터 시작했으니 딱 6개월 되었는데 3년 동안 영어학원 다니는 아이보다 훨씬 더 영어를 잘한다.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읽는다. 받아쓰기도 잘한다. 3년의 다른 사람의 노력에 비하면 정말 잘한다. 하지만 아직 3학년 수준에서 잘한다.


그 비결을 말하기 전에 먼저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는 분명한 자기의 모국어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영어로 시작했으면 영어가 잡힐 때까지 중국어로 시작했으면 중국어가 어느 정도 잡힐 때까지 한 가지 언어가 중심 잡을 때까지 다음 언어의 학습은 기다려야 한다. 간단한 대화에 노출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자의 노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대한 노출을 기다려 줘야 한다는 것이다.



암기 왕


초등학교 3학년 세훈이는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다. 드라마 도깨비의 배우 공유를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단다. 아이의 결심이 바뀔 수도 있지만 아이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연극배우를 하는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연기 학원에 다니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학원에서 배운다고 연기가 늘겠니? 그냥 무대에 세워! 무대에 서면 연기가 늘어.‘


연극 문대에 세우는 것을 어떻게 하는 것 인지 감이 안 잡혔다. 어린이 연기자 에이전시를 찾아가 봐야 하나 고민도 해봤다. 그러던 중 1년간 연습해서 직접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영어 뮤지컬을 하는 곳을 우연히 발견했다. 세훈이가 바라는 연기와 노래에 영어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모두 발달시킬 수 있는 절호에 기회였다. 이제 슬슬 영어를 가르쳐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어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영어로 된 대본을 받았다. 하루 만에 영어 노래 한 곡을 불러서 가야 했다. 글자를 못 읽는 세훈이는 영어 단어 밑에 한글 발음을 써서 가사를 읽게 했다. 음에 맞추어 발음을 해서 익숙하게 하고 그 노래의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한글로 된 대본을 받아 내용을 설명했다. 지금은 자신의 배역의 대사를 말하고 노래를 유창하게 부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어를 아주 잘한다고 생각할 것 같다. 특히 세훈이 자신이 영어를 잘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영어 지문 암기 법



뮤지컬 대사를 외우는 것을 보니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소리로 먼저 배우고 이해하고 그 후에 글자로 알아보기 순서로 영어를 가르쳐 보기로 했다. 한 가지 주제를 12 문장 정도로 설명해 놓은 영어 책을 골랐다. 각 문장을 읽어주고 한국어로 번역해 주었다. 그리고 각각의 단어 뜻을 알려주었다.

영어 철자 밑에 한국어로 발음을 써주어서 한국어 발음을 읽혔다.


다음날 한국어 발음을 지우고 영어단어를 읽혔다. 한국어 없이도 영어를 읽었다. 문장을 한번 쓰게 했다. 그리고 자기가 쓴 걸 보고 다시 읽게 했다. 어느 정도 완성된 것 같았다. 다음날 같은 지문을 다시 읽고 정확한 발음을 확인한 다음 함께 외워주었다. 한 문장을 외우고 그 문장의 핵심 단어를 기억하게 했다. 바로 다음 문장에 그 핵심 단어가 다시 나오기 때문이다. 각 문장을 이어주는 단어를 상기시키며 12 문장을 모두 외웠다. 그날의 연습은 거기에서 끝냈다.


셋째 날 외운 것을 세 번 다시 읽고 완전하게 외웠다. 그리고 나는 영어를 읽고 세훈이는 들리는 데로 받아 쓰기를 했다. 세 번째 완벽하게 받아 쓰기를 완성했다. 그리고 외운 것을 한번 확인했다. 첫날 수업은 한 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날까지 하루 수업은 30분씩 정도 공부했다.


넷째 날 외운 것을 안 보고 쓰고 안 보고 말하는 것을 10분 안에 끝냈다. 그리고 그 문장에 나왔던 모든 단어들은 새롭게 보는 지문에서 읽고 뜻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렇게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12 문장 지문에 각 단어에 한글 발음 쓰고 읽고 내용 이해하기, 읽고 쓰기, 외우기, 외운 것 쓰고 말하기를 4일에 걸쳐했다. 학습하고 외우는 것의 총시간은 3일에 걸쳐 총 네 시간이 걸렸다.


관리


지금 외운 지문이 20개가 되었다, 20 지문 12 문장 5개월 동안 240 문장을 외웠고 그 문장 안에 단어들의 뜻도 95% 외웠다. 외운 문장도 쓴다. 처음 배웠던 지문은 거의 래퍼처럼 빠르게 영어로도 말하고 한국어로도 말한다. 게다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4일에 걸쳐 4시간을 투자해서 12 문장 말하는데 30초가 걸리게 만들었다. 현재 20번째 지문을 공부할 때 투자한 시간은 이틀에 걸쳐 2시간 정도이다. 하루에 한 시간이다. 욕심 내지 않고 일주일에 주제 하나이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안 배우는 날에는 누적한 내용을 물어본다. 30초씩 20개라 해 봤자 10분이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20개의 주제로 12 문장씩 10분을 쉬지 않고 떠든다고 생각해봐라. 3년 동안 영어 학원 다닌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학원에 다녀온 후에 그다음은 엄마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번 바르게 외우게 하고 잊지 않게 자주 물어봐 주는 것이다.


영어를 배우고 이해하는 것은 학원에서 공부한다. 그리고 배운 것을 유지하는 것은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이다. 배운 것을 잊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데 영어 못한다는 소리는 안 할 것이다.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물어봐 주어라. 내가 영어를 가르쳐서 아이가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엄마로서 매일 물어봐 주는 것이다. 그러면 평생 영어를 잘하게 될 것이다. 유학이 대안이 아니라면 평생 영어는 엄마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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