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유학의 극복

강아지 책 읽어주는 우영이 이야기

by 골든로우

소녀의 아우라

노래와 춤을 잘 추는 멋진 아이돌이나 연기 잘하는 배우를 보면 팬심을 가지고 열광한다. 유명한 연예인을 실제로 보면 일반인과는 다른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신체에서 발산되는 보이지 않는 기와 은은한 향기 혹은 그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5학년이었던 우영이를 처음 만났을 때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남다른 시련을 겪은 사람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 만날 수 있는 5학년 여자 아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감이 있는데 자신감이 없었다. 이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이 아이에게 존재하고 있었다.


2살 때부터 미국 뉴저지와 뉴욕에서 살았던 우영이는 4학년이 끝날 무렵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면 일반적으로 국제 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는데 우영이는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대체로 4학년까지 한국 학교에 다니다가 5학년쯤 조기 유학을 보내는 경우는 들어봤지만 반대의 상황은 흔한 일은 아니다.


미국에 조기 유학을 가더라도 6개월 정도는 ESL 수업을 들어서 그곳에 언어를 습득하고 정규 수업을 하는 것이 유학 초기의 절차이다. 하지만 우영이 경우는 반대의 상황이어서 한국어 ESL 수업은 접할 수가 없었다. 원래의 나이보다 한 학년을 낮추어 4학년으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적응을 위하여 학년을 낮추었지만 국어를 못하는 것이 너무 큰 장벽이 되었다.





소녀의 절망


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한국어로 대화는 할 수 있지만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면 못 알아 들었다. 특히 한글을 잘 못 읽어서 힘든 일이 많았다. 수학 문제를 못 풀어서가 아니라 한글로 쓰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여 수학을 못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 평가를 받을 때 제시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수학만은 아니었다. 국어가 가장 문제이고 하물며 영어도 문제가 되었다. 영어를 배우는데 모든 선생님들이 한국어로 해석하고 해설해 주시는 통에 아는 것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학교에서필고사를 치면 모든 과목이 30점 40점이 나왔다. 한글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점수가 나오니 아이는 실망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그 점수로 아이를 평가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영이는 자신이 공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부터 우영이는 책 읽기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경험했던 책 읽기 방법으로 한글 책을 읽었다.





강아지에게 책 읽어주는 소녀

미국에 있을 때 우영이는 학교가 끝나고 나면 집 근처에 도서관에 자주 갔었다. 그 도서관은 동네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했다. 우영이도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신청하여 참여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그중에 영어 책을 잘 읽고 싶은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강아지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에 강아지와 그 주인을 만나서 우영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어주었다. 감정을 살려서 무서운 부분이 나오면 목소리를 줄여서 말했고 즐거운 부분이 나오면 신이 나서 강아지를 보며 이야기해주었다고 한다. 강아지가 귀를 쫑긋 거리며 눈을 맞추어주면 우영이는 더욱 신이 났었다. 처음에는 더듬더듬 읽었지만 강아지가 이해하지 못할 까 봐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 주었었다. 점점 자신감이 들어 더 큰 소리로 더 즐겁게 읽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일을 기억하며 우영이는 한국어로 된 책을 들고 강아지를 찾아다니다 우연히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를 공원에서 발견했다. 얼른 뛰어가서 강아지 주인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그 날부터 강아지와 만나 책을 읽어주었다. 이번에는 한국어로 된 책을 열심히 읽었다. 몇 번 지나지 않아 책 읽기가 쉬워졌다.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더 어려운 책을 읽어주기 위해 강아지를 만나러 나간 어느 날 강아지 주인이 이제 만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놀라서 이유를 물었더니 그 강아지는 시각 장애인을 돕는 안내견으로 훈련을 마치고 진짜 주인을 만나러 간다는 것이었다. 슬펐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집에 오는 길에 우영이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미국에 살 때 다니던 도서관에 강아지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의 진짜 목적은 시각장애인들을 돕는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즐겁기 위해서 했던 일이었는데 그 일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 때문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때부터 우영이는 하루도 책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소녀의 극복


내가 우영이를 처음 보았던 당시 우영이 성적은 50점쯤이었다. 성적을 이야기하면 자신감이 없어 보였고 글 읽기를 이야기하면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래서 우영이가 자신감이 있는데 자신감이 없는 아이로 보였던 것이다. 지금 우영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드디어 이번에 문과 전교 1등도 되었다. 국어, 수학, 영어, 사탐 모두 1등급이다. 국어 공부할 때도 열심히 읽는다, 수학도 열심히 읽고 연구한다. 마치 강아지가 못 알아 들었을 까 봐 걱정하듯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다. 자신이 이해 못한 곳에 메모지를 붙여 질문을 써넣는다.


영어 수업에서 이번 주 주어진 책은 “Fahrenheit 451”이다. 1953년 Ray Bradbury 가 쓴 Fahrenheit 451은 dystopian (반 이상향)에 대한 글이다. 주인공 Montag는 책을 태우는 사람 fireman이다. 주인공이 사는 사회에서는 책을 읽는 것이 불법이다. 그래서 발견되는 책은 모두 불태워 버려야 한다. Montag는 책이 있는 곳을 찾아내어 책을 태우는 사람이다. 결국 그는 책의 몰살이 지식의 몰살이라는 것을 알고 저항 집단에 참여한다는 이야기이다.


우영이는 작은 메모지를 꺼낸다. 한 줄 한 줄 읽으며 궁금한 점을 메모지에 적는다. 등장인물의 행동을 읽고 유추할 수 있는 성격을 써놓는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질문을 붙여 놓는다. 책이 있는 집을 태우는 중 한 여인이 불타는 집안에서 자신은 탈출하지 않고 책을 밖으로 던지는 부분에 질문지를 붙여 놓았다. 자신이 불타는 집에 있는 여인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오래 동안 상상하고 그 상상의 이야기를 적어 놓는다.


한국에 처음 와서 받은 점수 때문에 어린 우영이는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무시당하는 것 같아 속상했고 진짜 자신이 바보인가 하고 울기도 했단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바보로 태어난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의 생존 방법을 알아냈다. 그 방법을 알아낸 우영이의 생존력을 보면 후광이 있다. 이제는 너무나 자신감 있는 그런 아우 라이다. 남들이 겪지 못한 시련을 혼자서 이겨온 그 아우라는 어른이 봐도 부럽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런 시련도 없이 모든 과목에서 100점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그것도 초등학교에서 받는 100점. 나는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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