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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훈 Oct 29. 2019

사내연애 (4)

(이어서)



헤어진 이후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사내연애는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다. 사업장도 정말 크기 때문에 산책할 곳도 많다. 물론 이리저리 숨어 다니며 몰래 만나는 것도 워낙 보는 눈이 많기에 쉽지는 않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사내연애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내부에 식당도 많고 매점도 많고, 카페는 물론이고 던킨도너츠와 파리바게뜨 등 외부 프랜차이즈 매장까지 입점해있으니 비는 시간 짬짬이 만나 데이트를 즐긴다는 이야기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때문에 충분한 능력을 갖추신 분들은 사내에서도 아련아련한 에피소드들을 하나둘씩 가지고 있다. 내가 들은 가장 아련한 에피소드는 크리스마스 3교대 이야기이다.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당일에 근무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남자친구는 휴일임에도 같이 출근했다고 한다. 근무 시간 중간 몰래 빠져나온 두 사람은 겨울 바람에 차가워진 손을 맞잡고 잠깐이지만 산책을 했는데, 그 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흰 눈이 내렸다고 했다.



사내연애가 한 편의 멜로 영화라면, 결혼한 사내 커플은 시트콤 드라마 같다. 이미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사이이도 하고, 게다가 가정과 회사에서 서로 어떤 입장과 역할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연인과 배우자라기보다는 전우와 동지 사이에 가까운 것 같다. 가끔은 유부남 형들이 결혼생활 이야기를 해주는데 얼마나 웃긴지 진짜인가 농담인가 구분이 안 갈 때도 있다. 한 번은 야간 교대를 끝내고 퇴근하는 새신랑에게 요즘 맨날 아침에 퇴근하느라 와이프도 못 보고 어떡해요, 라며 인사를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싱글벙글한 표정을 하며 와이프 있는 집은 좋지만 와이프 없는 집은 더 좋다고, 빨리 들어가서 혼수로 가져온 새 컴퓨터에서 게임할 거라고 했다.



마누라 등쌀에 못 이겨 출근했다는 차장님도 있었다. 아내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 오느라 늦게 출근했다고 하시면서 걱정된다고 하시길래 그럼 오늘은 급한 일도 없고 연차 쓰시지 그러세요, 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안 그래도 연차 쓴다고 했다가 마누라한테 등짝 맞고 오는 길이라고 대답하셨다. 같이 삼성에 다녔던 아내분은 미사용 연차비가 얼마나 쏠쏠한지 잘 알기에, 도움도 안 되는 병간호하느니 빨리 회사 가서 돈 벌어 오라고 한 마디 하셨단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마냥 삭막하지만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국정 농단 뇌물이나 삼성 바이오 분식회계, 일본발 소재 수출 금지 조치 등 삼성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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