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대체로 내가 본 삼성 사람들의 첫인상은 좋은 편 같다. 아무래도 삼성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잘난 척하고 남 무시하는 깍쟁이들만 모인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위에서 시키는 일 군말 없이 잘 할 것 같은 사람들이 남아있는 곳 같다. 물론 수많은 경쟁자들을 꺾고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남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무기들이 하나씩 있고, 거기서 오는 묘한 자부심과 자만심도 있긴 하다. 그게 바로 삼성스러움인가... 어쨌든...
삼성이라는 간판에서 오는 신뢰와 안정감은 아마 나만 느끼는 게 아닌 것 같다. 동기들은 회사 밖에 나가서 곧잘 이성친구들을 만들어 오곤 했다. 다만 그 친구들과 오래 가지를 못하는 게 문제였다. 보통 가장 크게 싸우는 요소는 연락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반도체 사업장은 보안이 철저하기 때문에 생산 라인 내에 개인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라인 안에서 일하는 동안은 바깥사람들과 연락이 두절된 상태가 된다. 라인에 가끔 들어가는 사람들은 상관이 없지만, 주로 설비를 담당하는 엔지니어 직군들은 라인에서 살다시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외부와는 연락이 끊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나만 해도 그날그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 먹고 오전에 라인 들어갔다가 점심 먹으러 나오고, 다시 오후에 라인 들어갔다가 업무 정리하고 퇴근하는 루틴이 일상이다. 오랫동안 서로 아는 친구 사이였으면 믿음이 있기에 연락이 좀 안되더라도 크게 문제가 없겠지만, 이제 막 만나 썸 타는 연인에게 이런 식으로 연락한다면 아마 나 같아도 싫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악명 높은 3교대이다. 너도 나도 대학 정도는 졸업하는 21세기에, 그것도 수도권에 사는 젊은 처자들은 잘나가는 삼성 다닌다는 소개팅 상대방이 3교대 근무를 할 것이라 상상도 못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는 돈이 된다고 판단되면 대졸 사원은 물론이고 카이스트 박사님들도 가차 없이 3교대를 굴리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니까... 평일에는 야간근무라고 낮에는 자느라 연락이 안 되고,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회사에 출근할 것이며, 어쩌다가 휴일을 얻게 되면 밀린 잠을 자느라 데이트는커녕 기숙사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 그런 남친을 보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 같아도 싫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내에서는 결혼 상대로 회사 사람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굳이 변명 같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고충을 이해해주고 격려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내연애도 꽤 괜찮은 선택지이다. 특히 최근 들어 반도체 산업의 입지가 높아진 것도 사내연애를 긍정하는데 한몫한다. 삼성전자는 외부에 비해서 연봉이 꽤 괜찮기 때문에 사내커플 둘이서 알뜰살뜰 모으면 웬만한 중소기업 매출만 하다는 농담도 들린다. 내가 들은 가장 성공한 부부 이야기는 수원 무선사업부 사내커플 이야기였다. 여태까지 삼성전자 내에서도 최대치의 성과급을 받아왔던 무선사업부에서 맞벌이를 했던 이 부부는 이제 평화롭게 은퇴를 하시고는 수원 삼성 앞에 썩 괜찮은 상가 빌딩의 건물주가 되셨다고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