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n하게, 최대의 브랜딩 아웃풋 만들기.
브랜딩이라는 행위는 작은 스타트업에게는 사치스러울 수 있다. 당장 팔아야 할 제품/서비스가 있는데 한가하게 브랜딩이나 하고 앉았나 라는 자괴감이 들 수 있다. 대기업에서 브랜딩을 하는 업무를 지켜보면서 그 중요성과 임팩트에 공감이 갈때도 있었지만, 문서를 위한 문서와 허세를 볼때면 쓴웃음이 나오기도 함.
그래서 ‘삼분의일'에서 브랜딩을 하려고할때 이거 정말 해야할까?에 대한 의문을 반복하면서 큰기업에서 하는 브랜딩 업무는 잠시 내려놓고 스타트업에서의 브랜딩 본질을 얻어내고자 했다.
브랜딩에 많은 시간과 리소스를 쓰고 싶지 않았다. 딱 필요한 만큼만 진행하고 최대의 아웃풋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브랜딩을 해야하는 목적을 정의하는 일이었다. 딱 아래 3가지 목적을 위해서만 브랜드딩을 했고 그 이상의 리소스는 쓰지 않기로 했다.
1) 정체성 찾기
우리가 누구인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2) 남들에게 각인시키기
우리가 누구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최대한 선명한 모습으로 알려야 한다. 이 무한경쟁 시장에서는 정체성이 분명한 브랜드만 사람들은 기억한다.
3)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일하기
구성원 모두가 브랜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익히고, 일관성을 가지고 지켜야 한다. 브랜드를 내재화해야 흔들림 없는 선명한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다.
브랜딩에 정답은 없다. 사람, 기업마다 정의가 달랐고 팀내에서도 용어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으나 (그건 비전이 아니라 미션이다 등등) 이런 디테일에 신경쓰기보다는 위에서 정의한 브랜딩의 목적 3가지를 달성하는데 집중하고 싶었다. 논문을 쓸것도 아니고 내부 구성원들끼리 끄덕끄덕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삼분의일 브랜드에서 정리할 카테고리를 아래 6가지로 나누었다.
1) 핵심가치
삼분의일을 나타내는 핵심 키워드
2) 비전
삼분의일의 궁극적인 목표
3) 미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수행할 과제
4) 타겟
가장 집중하여 생각할 사용자층
5) 페르소나
삼분의일 브랜드가 사람이라면 누굴까?
6) 브랜드 아이덴티티
사람들이 직접 경험할 브랜드의 표면과 시각화된 모습
브랜드 정의를 할 때 핵심가치부터 시작했다. 창업자로서 이것저것 정의하기에 앞서 다른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삼분의일'의 인상을 알고 싶었다. 먼저 어느 정도 합의를 한 후 구체적으로 살을 붙여나가고 싶었다. 슬랙에서 쓰레드를 열어서 거기에 삼분의일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공모받았다 총 35개 형용사 후보가 나왔다.
투명한, 저렴한, 합리적인, 꾸미지 않은, 멋 부리지 않은, 편한, 캐주얼한, 기존에 없던, 남다른, 담백한, 미니멀, 심플, 꼭 필요한 것만 있는, 전문적인, 스마트, 똑똑한, 분석적인, 효율적인, 나에게 꼭 맞는, 친절한, 완벽한, 거품을 뺀, 실속 있는, 유능한, 믿을 수 있는, 명쾌한, 필요한, 실용적인, 새로운, 흥미로운, 몰랐지만 뒤늦게나마 알게 된, 가치 있는, 신뢰 가는, 재미있는, 호감 가는
이 형용사들을 펼쳐놓고 모두 모여서 각자 5개씩만 골라달라고 했다. 각자 골랐다. 그런 다음, 2개씩 버리라고 했다. 5개를 고르기는 쉬웠는데 3개로 추리는 건 다들 어려워했다. 3개씩 고른 후 모두 펼쳐놓고 각자 고른 걸 비교했고 고른 이유를 돌아가며 설명했다. 재미있는 건 모두가 ‘합리적인’을 골랐다는 점이었고, 나머지는 겹쳐지는 부분이 있거나 유사한 내용이었다. 오랜 토론 끝에 핵심 키워드를 3개로 정리했다.
합리적인 : 이유가 타당하고 납득이 간다. 꼼꼼하게 따져보고, 꼭 필요한 것만 간결하게 제시한다.
전문적인 : 우리가 가장 잘 알고 능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계속 연구하고 분석한다.
섬세한 : 사용자에게 관심이 많다. 주의 깊게 관찰하고 사용자의 문제 해결을 위해 친절하게 다가간다.
핵심가치를 정의한 후 나머지는 정하기 쉬웠다. 막연하게 맴돌던 이야기들을 다듬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삼분의일 비전은 처음 이 사업을 논의했던 단계부터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이 비즈니스를 왜 하고 싶고 해야 하는지, 꿈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여러 글을 통해서 공유했기에 그동안 내가 했던 말들을 이렇게 정리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완벽한 수면을 누려야 한다."
시작은 매트리스라는 단일 상품의 판매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수면이라는 영역을 지배(!)하여 수면 전문 브랜드로 확장하고 싶다. 사람들이 하루의 2/3를 생산적으로 보내기 위해 하루의 1/3은 '완벽한 수면'을 경험해야 한다.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을 위한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닌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대중적이고 편한 브랜드이고 싶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 3가지 미션을 세웠다. 미션은 앞서 정의했던 핵심 가치와 호응하도록 정리했다.
완벽한 수면
: 수면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완벽한 수면을 제공한다. 우리가 수면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가가 된다.
합리적인 구매
: 쉽게 구매할 수 있고, 배송과 설치가 간편하고, 거품을 뺀 합리적인 가격으로 승부한다.
평생 케어
: 한번 팔면 끝이 아니다. 관계의 시작이다. 고객의 평생 수면 경험 전반을 책임진다.
모두가 좋아할 브랜드를 만들려고 하면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일부층에서 찐한 사랑을 받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배달의 민족은 메인 타겟을 ‘회사 막내’로 좁게 잡아서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B급 정서로 승부했다. 이 전략은 통했고 소수의 팬층을 만들었다. 그 코드를 좋아하는 인접 소비자층까지 퍼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었다.
우리도 메인 타겟은 최대한 좁게 잡았다. ‘30대 직장인 남성’ 같은 모호한 개념보다는 라이프스타일과 철학을 반영할 수 있게 잡고 싶었다.
그래서 설정한 타겟은 ‘자부심을 가진 개발자’
공대 나오고 IT 업계에서 개발자로 일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진다. 빅뱅이론, 실리콘밸리, IT 크라우드 등의 미드/영드에서 나올법한 괴짜(geek)이며, 개발자 농담을 좋아한다. IT 전반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오면 한 번씩 써본다. 쇼핑은 주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쇼핑은 귀찮다. 허세 떠는 명품 브랜드보다는 합리적이고 가성비 높은 브랜드가 좋다. 이를테면 샤오미. 과도한 업무로 피로가 쌓여있고, 건강을 염려하고 크로스핏등 physical 운동을 즐겨한다. CGM과 위고비에 대한 정보를 레딧에서 적극적으로 탐색한다.
메인 타겟의 사람들이 좋아할 사람을 떠올리며 브랜드를 의인화한 페르소나를 잡았다. 타겟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뭘 좀 아는 형’
공대 등 남자가 많은 집단에 한 명쯤 있는 뭘 좀 아는 형. 잡스보다는 워즈니악 타입. 모르는 건 이 형한테 물어보면 된다. 따르는 후배들이 많고 이 형이 얘기하면 왠지 믿음이 가고 귀 기울이게 된다. 현실 왜곡장이 있어서 이 형이 하는 말은 무조건 믿게 된다.
앞에서 정의한 내용이 브랜드의 상위 개념이라면, 브랜드 아이덴티티부터는 사용자가 직접 보는 표면에 해당한다. 사용자와의 접점이고,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브랜드의 외관이다.
네이밍: '삼분의일'
하루의 ‘삼분의 일’은 잠을 자는 시간이다. 인생의 2/3를 생산적으로 살기 위해, ‘삼분의 일’ 수면 시간은 완벽해야 한다. 사용자는 일상에 집중하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우리에게 믿고 맡기면 된다.
우리의 비전을 담아 네이밍을 만들었다.
슬로건: ‘하루의 삼분의 일, 완벽한 수면의 시간'
우리의 비전을 한 문장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슬로건을 만들었다. 네이밍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피드백을 받고 이를 일부 해소하려고 했다.
톤(말투)
'뭘 좀 아는 형'의 말투를 상상하며 톤을 '진지한, 담백한, 캐주얼한'으로 잡았다. 정색하며 진지 빨고 쓴다. 농담을 해도 진지하게. 단호하고 확신에 찬 말 투로 신뢰를 준다. 담백하게 쓴다. 할 말만 간결하고 명확하게 전달한다. 불필요한 설명은 생략한다. 캐주얼하게 쓴다. 극존칭보다는 편하고 자연스러운 말투를 쓴다.
고객센터 응대부터 소셜 채널에서의 포스팅, 마케팅, 그리고 웹사이트 팝업 하나까지도 일관된 톤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
브랜드 디자인
우리의 브랜딩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이건 다음번에 제대로 써보고자 한다.
1. 핵심가치: 합리적인, 전문적인, 섬세한
2. 비전: 더 많은 사람들이 완벽한 수면을 누려야 한다.
3. 미션: 완벽한 수면, 합리적인 구매, 평생 케어
4. 타겟: 자부심을 가진 개발자
5. 페르소나: 뭘 좀 아는 형
6. 브랜드 아이덴티티
- 네이밍: 삼분의 일
- 슬로건: 하루의 삼분의 일, 완벽한 수면의 시간
- 톤: 진지한, 담백한, 캐주얼한
브랜드 정의가 브랜딩의 완성이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 직원 모두의 관심과 노력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하다.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건 ‘일관성’이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한 목소리를 내며 ‘내가 곧 삼분의일 브랜드’라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 마케팅, 사용자 경험, 콘텐츠, 제품에서 일관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면 조직문화, 일하는 방식 그리고 채용까지도 브랜드의 날카로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대단한 문서를 만든 건 아니었지만 브랜드 정의를 한 후 직원들끼리 커뮤니케이션하거나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한결 수월해 지리라 믿는다. A/B 선택지가 있을 때, 우리끼리 묻는다. 이게 합리적인지, 전문적인 선택인지, 섬세한 접근인지. ‘자부심을 가진 개발자’가 과연 이걸 좋아할지, ‘뭘 좀 아는 형’은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할지. 그렇게 묻다 보면 고민했던 문제의 답이 의외로 명쾌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삼분의일 브랜딩 과정이 정석은 아니지만, 빠르게 정리하고 필요한 것만 간추리고 직원들과 소통 하기에는 ‘합리적’이었다. 브랜딩을 해야겠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우리 사례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