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밥장사의 현장을 파헤쳐 보자.
몇 년 전까지는 멕시칸 레스토랑과 인도커리 레스토랑을 직접 운영하면서 치열한 밥장사 현장을 2년 동안 누볐다.(남는건 얼마 안되지만 약 10억 원어치의 브리또와 커리를 팔았다.) 이때 손님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레스토랑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이런 경험을 토대로 제가 레스토랑을 살펴볼때 중요하게 보는 요소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1. 간판 및 외관
간판과 외관은 레스토랑의 얼굴이다. 이성을 볼 때 보통 얼굴을 처음 보듯이, 손님들은 레스토랑을 선택할 때 보통 간판과 외관을 먼저 본다. 일단 간판과 외관을 통해 시선을 빼앗어야 손님을 가게 안으로 모실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내가 운영했던 심플리인디아의 간판과 외관을 살펴보자.
전경은 예쁘다. 하지만 지금 내가 봐도 카페인지 밥집인지 모르겠고, 도대체 British 인도커리전문점은 뭘 하는 곳인지 갸웃거려진다. 실제로 수많은 워킹 손님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가게 앞을 지나쳤다. 실패한 간판과 외관의 전형이다. 흑흑.. 이번엔 백종원씨의 브랜드 한 곳의 간판과 외관을 살펴보자.
심플리 인디아와 같은 노란색을 썼지만 무슨 가게인지 헷갈리기는 쉽지 않다. 차돌박이 고깃집이다. 간판에서 뙇 차돌박이 전문점임을 보여주고 있고 큼지막하게 백종원 씨가 고기를 들쳐 업고 있는 사진이 붙어 있다. 간판과 쇼윈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불판 위에서 차돌박이를 굽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사실 어제 저기 앞을 지나갔는데 밥을 먹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갈 뻔했다.
2. Originality
간판과 외관이 레스토랑의 얼굴이라면 오리지널리티는 레스토랑의 심성이다. 단번에 알아보긴 힘들지만 알게 되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오리지널리티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이 영상을 한번 보고 갑시다. 내가 밥장사에 빠져있을 때 이 영상을 보게 되었고, 이들의 스토리에 매료되어서 결국 실제로 방문하게 된 Rockaway Taco에 대한 영상이다.
뉴욕주의 Rockaway Beach에서 배고픈 서퍼들의 배를 채워주는 타코집 이야기이다. 1년 중 4개월만 일하고 나머지는 전 세계의 파도를 찾아서 서핑을 즐긴다는 타코집 사장님. 나는 이제까지 이런 타코집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들의 독특한 스토리는 Rockaway Taco를 세상에 하나뿐인 가게로 만들어 주었고, 매일 가게 앞에 수십 명이 줄을 선다. 나는 이렇게 오리지널리티가 뚝뚝 흘러 넘치는 가게를 격하게 애정 한다.
오리지널리티는 굉장히 포괄적인 개념이지만 레스토랑과 연결될 때는 그 가게를 세상에서 하나뿐인 곳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를 뜻한다. 주위에서 대박집을 둘러보자 반드시 하나 정도는 그 가게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다.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사람들이 레스토랑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볍게 비틀어주면 된다. 너무 추상적인가? 암튼 비틀기가 성공적이라면 이때부터 그저 그런 레스토랑에서 세상에서 유일한 레스토랑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가게에는 매일같이 손님들이 북적일 것이다.
3. 사장님
성공한 레스토랑의 사장님은 운영, 전략, 인력관리, 마케팅, 회계, 영업 등을 모두 마스터한 대단한 사람이다. 그리고 레스토랑은 이런 대단한 사장님의 분신이다. 운영방식, 음식의 맛, 서비스 퀄리티, 철학, 분위기 , 음악 , 직원 채용에 이르기까지 오너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나는 처음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사장님을 찾아보려고 두리번거린다. 보통
1) 카운터에서 홀을 노려보고 계시거나
2) 주방에서 열심히 요리를 하고 계시거나
3) 사장님이 안 보인다.
1),2)의 경우 사장님의 스타일을 주의 깊게 보게 된다. 옷차림새, 말투, 직원과의 소통 , 취향이 모두 스타일에 해당한다. 그리고 가끔씩 흉내 낼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는 사장님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사장님의 가게는 보통 위에서 언급한 오리지널리티가 흘러 넘치는 가게이다. 왜 사장님은 이런 소품을 가져다 놓았을까? 왜 사장님은 이런 메뉴를 만들었을까? 왜 이런 음악을 틀어주고 있을까? 하나씩 곱씹으면서 사장님의 인생과 철학을 배워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이런 재미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단골이 된다.
3)처럼 사장님이 안 보이고 모든 서비스가 매끄럽게 굴러가고 있는 경우, 장사를 넘어서 사업의 영역으로 진입한 경우이다. 사장님 자신의 인건비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기에 훌륭한 매니저를 고용할 여력이 생겼다고 보면 된다. 이 경우 사장님은 대단한 능력 자시다. 이러하나 저러하나 레스토랑을 리뷰할 때 사장님은 항상 놓치면 안 된다.
4. 메뉴판
사장님이 레스토랑 메뉴판을 기획할 때는 3가지 의도를 가지고 있다.
1) 가게에서 가장 맛있거나, 마진이 높은 메뉴를 고객이 골라주기를 기대한다.
2) 주방의 로드가 심하게 걸리거나, 원가가 높은 메뉴를 너무 많이 고르지 않았으면 한다.
3) 가장 이상적인 조합을 세트로 만들어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동시에 객단가를 높이길 기대한다.
잘 만들어진 메뉴판은 사장님의 명확한 의도를 담고 있고, 자연스럽게 고객도 사장님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한다. 여기서 잠시 심플리인디아의 초기 메뉴판을 살펴보자.
먼저 베이스 커리(토마토, 시금치, 캐슈넛, 양파 등등)를 고르고 토핑을 고른다. 6가지 베이스 커리가 있었고 6가지 토핑이 있었기에 총 6x6 =36가지의 메뉴를 주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상적인 조합을 13개 골라서 우측 메뉴판에 적어두었다. 하지만 주방인력은 36가지 메뉴에 대한 프로세스를 모두 익히길 힘들어했고, 손에 익지 않은 메뉴가 들어오면 주방이 마비되었다. 그리고 이상적인 커리조합에만 신경 쓴 나머지 탄두리치킨, 난, 샐러드의 주문이 많지 않아서 객단가가 낮았다.
결국 객단가를 높이고 주방 효율화를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메뉴판이 개편되었다. 첫 방문 때는 사장님의 의도를 메뉴판에서 읽고 의도대로 따라주자. 헛다리 짚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5. Operation
가장 바쁜 타임의 식당은 전쟁터다. 끊임없이 오더가 밀려들어오고, 각종 문제가 홀, 주방에서 터진다. 왜 이렇게 음식이 안 나오느냐는 고객의 컴플레인과 똑바로 일하라는 주방 직원들의 고성이 어우러진다. 오퍼레이션은 보통 홀 파트와 주방 파트로 나뉘고 홀매니저와 주방장이 두 영역을 총괄한다. 그리고 보통 둘 사이에서는 미묘한 파워게임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사이가 좋지 않다. 아직도 나는 바쁜 레스토랑에 방문하면 그곳의 오퍼레이션을 살펴보고 어디가 병목인지 찾아보는 습관이 남아있다. 주위 깊게 보는 것은
1) 홀과 주방의 소통이 잘 이루어 지나?
2) 주방, 홀의 인력 배치가 잘 되어있어서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되어 있나?
3) 주방에서 홀로 음식이 나오는 flow가 물 흐르듯 하는가?
이다.
2012년 크리스마스 이브날 나는 심플리인디아에서 근무를 했다. 이날을 위해 모든 직원들이 손발을 맞추는 연습을 했고, 이날을 위한 인력배치, 주방에서 음식이 뿜어져 나오는 flow를 완벽하게 세팅해 놓았었다. 오전 11시부터 손님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단 한 번도 손님이 끊기지 않았다. 그날 외식업 통틀어서 가장 많은 매출을 달성했다. 별문제 없이 깔끔하게 재료 소진을 했다. 이때의 성취감 때문에 아직도 밥장사의 미련을 못 버리는 거 같다. 이때 문제점울 구조화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빠르게 실행했던 경험은 지금 비즈니스를 하는 데에도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다. 밥장사는 모든 비즈니스의 기본기를 쌓기에 제격인 거 같다.
6. 재방문 의사
재방문 의사는 레스토랑의 만족도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다음과 같을 때 나는 강력한 재방문의사를 표시한다.
1) 근 1년 중 동종 카테고리 음식 중 가장 맛있을 때 --> 도화동 '산동만두'
2) 분위기와 사장님이 '깔롱'져서 더 알아가고 싶을 때 --> 보광동 '헬카페'
나는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어서 1) 보다는 2) 일 경우 더 끌린다. 음식과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이 담고 있는 스토리와 철학에 더 관심이 간다.
By 전주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