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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바꾼 인생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했던 과거의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

by 전주훈

나는 내가 야행성 인간인줄 알았다.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를 핑계로 새벽을 훌쩍 넘겨서 잠에 들었고, 대학교 때는 네이트온과 싸이월드를 떠돌다가 졸려서 버티기 힘든 순간이 와야 잠에 들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회식과 술자리가 많았다. 숙취 가득한 아침을 맞이하고 허겁지겁 집을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나는 20년 동안 "잠의 부채"를 꼬박꼬박 쌓아왔다.


퇴사를 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학교와 회사에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게 사업의 세계였다. 새벽까지 일하고 억지로 아침에 일어나면서 더 착실하게 "잠의 부채"를 쌓아갔다.


사업이 잘 안되었다. 사업을 정리하고 거울을 보니 거센 풍파가 지나가고 남은 나의 모습이 보였다. 광채를 잃어버린 눈동자, 앞으로 심하게 기울어 있는 거북목, 땅까지 꺼진 어깨 그리고 눈 내린 것처럼 머리를 뒤덮은 흰머리.. 더 이상 청년의 모습은 없었다. 피곤에 쪄들고 무기력한 아재만 남아있었다.


사업을 하면서 생긴 빚을 갚기 위해서 3개월을 하루 3시간 자면서 일을 해야만 했다. 프로젝트들을 마무리하고 나니 쌓여있던 수면욕구가 한 번에 터졌다. 몸이 더이상 못 버티겠다고 경고를 준 것 같았다. 일주일 동안 매일 15시간씩 잠만 잤다.


"잠이 보약이다"라는 말에 처음으로 공감이 갔다. 원 없이 잠을 자니 쌓여있던 근심 걱정이 증발했다. 정신은 어느 때보다도 맑아서 돋보기처럼 한곳에 집중할 수 있었다. 건강도 20대의 궤도로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이때 느꼈던 산뜻함은 평생 잊지 못할듯.


본능적으로 이때부터 밤 11시 전에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8시간 이상을 자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명료했던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평생 엄마도 고치지 못했던 수면 패턴을 일주일 만에 고치게 되었다.


좋은 습관은 또 다른 좋은 습관을 데리고 온다. 8시간씩 자면서 다른 좋은 습관들도 자석처럼 연달아 따라붙기 시작했다. 대학시절을 불태웠던 테니스 라켓을 10년 만에 다시 잡게 되었다. 아침마다 테니스를 시작했고 지저분한 야식을 끊었다. 건강한 음식을 가려서 먹기 시작했다.


8시간 자는 습관을 유지한지 6개월이 지나니 정신적인 지구력이 생겼다. 골치 아픈 문제들이 연속으로 터져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 정신적인 리소스가 충만하니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있게 사고하게 되면서 생각하는 힘도 많이 기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의사결정 품질도 높아졌다.


의사결정의 품질이 높아지면서 지금 하고 있는 사업도 눈에 띄게 성장할 수 있었다. 회사가 급격하게 성장하면 대표는 끊임없이 comfort zone에서 밀려나게 된다. 정신적인 리소스가 충분하고 항상 명료함을 유지하게 되면서 comfort zone에서 밀려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졌다.


잠을 8시간 자게 된지 2년째 된 지금 나는 인생이 매우 최적화 되어 있다는 느낌을 매순간 느끼고 있다. 높은 성과를 지향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오롯이 나의 삶과 주변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로 꽉 차있는 기분이다.


잠은 절대적인 quantity가 중요하고,

깨있는 시간은 quality가 중요하다.

이걸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다면 ...


8시간 수면(quantity)은 인생의 quality를 바꿀 수 있다.



P.S 저는 당연히 삼분의일 매트리스에서 숙면을 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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