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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생 Oct 20. 2024

회사를 '온전히' 다닐 수 없었던 이유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을 통해 돌아본 나의 20대

22.11.16 작성글


나에게 '회사'란 가까이 있으면서도 너무나 먼 곳이었다.

한 권의 책과 함께 나의 20대 가장 큰 고민을 들여다보고 다가오는 서른을 맞이해보고자 한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저자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은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의료인류학자와 나눈 말들'이란 부제로, 제목 그대로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철학자의 일생과 앞에 닥친 상황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우연, 필연, 선택, 확률 등의 소재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와중에 겪게 되는 상황들을 어떻게 마주 할지에 대한 '하나의 시선'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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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려 불안에 쫓기던 저는 합리적으로 미래를 예측해서 자신을 지키려 했습니다. 최대한 혼란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저 혼자 어떻게든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세계를 향한 믿음과 우연히 태어나는 '지금'에 몸을 던질 용기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 미야노 마키코


취업 준비 시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대기업에 욕심이 있었다. 대학교에서 2년간 학생회장으로 봉사하며 전공 관련 여러 활동들을 이어온 나는, 전공 관련 이력들을 바탕으로 산업군을 택하려고 했다.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러했고, 나 또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대학교 전공과 관련된 나의 지식은 속이 텅 빈 껍데기 같았고 실제로 관심도 없었다. 지난 과거의 이력들로 서류는 통과할 수 있더라도 면접은 통과할 수 없었다. 준비 과정부터 면접을 보는 순간까지 한 순간도 용기가 나질 않았다.


처음으로 전공을 포기했다. 대학을 가기 위해 2년, 졸업하기 위해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전공과 함께한 나의 시간의 두께는 그리 두껍지 않았나 보다. 면접에서 처참히 깨져 버리고 난 뒤, 6년이라는 시간의 미련이 사라졌다. 그때서야 내가 평소에 관심 있어하던 쪽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수치를 기반으로 마케팅의 효율을 높이는 '퍼포먼스 마케팅'과 웹/앱과 같은 서비스의 설계도를 만드는 '서비스 기획', 모두 개인 사업을 하며 고객을 유입시키거나 서비스를 고도화시키기 위해 우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해 왔던 것들이었다. 방향성을 틀고 나니 취업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해당 직무들은 대부분 스타트업에서 상시적으로 채용하고 개인 사업이 곧 포트폴리오가 되어 경험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그렇게 교육계 스타트업에 마케팅 직무로 취업을 했다. 취업 준비시기에는 울면서 취업만 시켜달라고 기도했었는데, 간절히 원했던 취업 이후 내 삶은 변하지 않았다. 입사 첫날, '내 인생은 이렇게 끝이 나는 건가?' 생각을 했으니... 아주 마음이 글러도 단단히 글렀었다. 하루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고, 시간이 부족하면 야근을 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취업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왜 아직 고통스러운 걸까? 남의 돈을 벌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6개월 만에 첫 회사를 퇴사를 한 뒤, 새로운 개인 사업과 서비스 기획 직무로 취업도 다시 하게 되었지만 업무 강도 차이가 있을 뿐 내 삶은 비슷했다.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을 때 물건을 소비한다. 내가 물건이 너무 많은지 알아보려면 물건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할 때가 아니라 물건의 목적의식이 사라졌을 때이다. 물건의 목적의식이 없다면 물건이 단 하나밖에 없더라도 그건 너무 많은 것이다. -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넷플릭스


돌이켜보면 회사는 소속에 대한 불안감과 부가적인 소득 욕구의 해결책 같은 것이었다. 거리가 가깝고, 커리어에 나쁘지 않을 것 같으며, 월급도 괜찮은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헬스장을 등록하는 기준과 비슷했다. 건강을 위해 등록을 하는데 걸어갈만한 위치에 시설도 나쁘지 않고 가격도 괜찮은 그런 곳. 가지 않아도 헬스장을 등록해 둔 것만으로 위안도 되고. 다들 헬스장을 다니니깐 나도 헬스장을 등록해 보는 것처럼, 내게 회사는 헬스장 등록과 별반 다른 점이 없었다. 내 삶의 완충장치 이상의 목적이 내 안에 없었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팀 잉골드 책 'Lines(선들)'에서는 궤적이 연결선이 되는 과정을 도보여행과 수송의 예로 설명한다. 여기서 궤적이라 말하는 것은 세계를 지각하고 그 세계와 친밀감을 나누며 통과해 나가는 운동이 일어나 새겨진 발자취이며, 운동이 사라지는 경우 연결선이라고 표현한다.


도보 여행과 수송은 기계적 수단을 사용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도보 여행에서 보이는 이동과 지각의 친밀한 관계가 사라지는지에 따라 구별한다. 수송되는 여행자는 승객이 되고, 자신은 움직이지 않은 채 장소에서 또 다른 장소로 움직여진다. 수송되는 동안 승객에게 다가오는 풍경, 소리, 감각은 승객을 옮기는 움직임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 팀 잉골드, Lines 


나에게 회사는 현재와 미래의 커리어 연결시켜 주는 연결선이었다. 회사를 들어갈 때도 기대한 것은 이 회사의 경력을 바탕으로 다음 회사, 높아질 연봉 정도였지, 그밖에 기대한 것이 명확하게 없었다. 하루 회사에서 보내는 생활, 그리고 그를 포괄하는 내 삶의 형태는 왜 궤적을 그리지 못했을까? 이미 기차에 올라탔으니 주변을 돌아보지 않아도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었을까?


선을 그리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데도 우리가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잊은 걸까요? 저는 우리가 잊은 것이 시간의 '두께', 그 두께로 인해 생겨나는 세계의 '입체성', 그리고 새로운 일이 시작될 힘을 품고 있는 세계의 '풍부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야노 마키코


돌이켜 본 나의 20대는 입학, 창업, 입사, 연애, 프로젝트 등 수많은 시작이 있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시작의 힘을 이용해 끝에 겨우 도달하거나 안정된 상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대학교에 입학했으니 벼락치기를 통해 겨우 졸업을 한다거나, 입사를 했으니 이직하기 전까지 내 업무를 무탈히 이행한다거나, 내 사업이 기대하는 수익을 가져다주는 시점까지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예시이다. 그 노력했던 시간의 두께를 돌아보면 대부분 얇았다. 스스로에 대한 고민 없이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적당한 기준에 맞추거나 '나의 평판'을 위해 일시적으로 노력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불확실한 인생이 어떻게 변해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어떤 나를 허용할 수 있겠는가, 이런 질문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질문하며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택하는 순간 '나'라는 존재는 확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택함으로써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선택이란 '고르고 결정한' 끝에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 미야노 마키코


미야노 마키코는 수많은 만남, 그 만남을 위해서는 선을 그리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연결점이 되지 않으려 저항하면서 사람들과 진실하게 마주하고 함께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가겠노라 각오하는 용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하며 세계를 향해 뛰어들고자 한다.


'일'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우연히 카페에서 발견한 포스터를 보고 신청한 독서모임에서, 여러 책 중 이 책을 선택하여, 글을 남기며 새로운 '나'를 발견한 것은, 우연과 용기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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