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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 Glove Sep 14. 2021

게으름뱅이 직장인 미국 대학원에 가다

조금씩, 꾸준히 게으름 피우기

코로나가 심해진 작년 3월 이후 우리 회사는 내가 속한 구매팀 전원을 재택근무로 변경했고 한두달이면 될 줄 알았던 재택근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5일 중 2,3일은 출장을 다녔었기에 다른 직원들에 비해 오피스 없는 삶이 금방 익숙해졌다. 코로나 와중에도, 심지어 백신이 나오기 전에도 중요한 프로젝트 관련 일들을 챙기기위해 출장을 다니고 출장 레포트를 사방에 뿌려주기에 (결과물은 시끄럽게 떠들어야 알아주니까) 회사 친구들은 "Where are you today?" 메신저 인사를 시작한다.

간만에 회의 참석을 위해 들린 사무실에서 만난 동료들은 대학원 수업을 듣는다는 사실에 놀라고, 이번 학기에 수업을 세개나 듣는 다는 사실에 또 놀란다.

솔직히 버겁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지난 주 꿀같았던 휴가 중에도 첫 퀴즈를 치고, 마감기한이 토요일인 숙제들을 비행시간 전 끝내느라 새벽까지 리서치 페이퍼를 쓰고 아리송한 문법들을 구글 검색했다. 토요일 리턴 비행기 안에서 남은 하나의 숙제를 끝마칠까 했지만 12시간여의 비행 중 10시간을 쿨쿨자고 한 30여분만 초안을 대략짜서 결국은 밤 10시에 집 도착한 이후 서둘러 마무리했다.


우리 학교는 4학기가 있다. 봄, 여름 1차, 여름 2차, 가을 이렇게 나뉘는데 매번 한 수업씩이라도 듣다가 이번 여름 2차에는 들을 과목이 없어 건너 뛰었다. 진짜 방학 한달 동안, 물론 회사는 다녔지만 퇴근 후 만화를 제외한 책 한권 안 읽고 주말에는 실컷 놀러다니며 놀았다. 놀러다녔다고 해봐야 동네 인적드문 하이킹 코스 찾아다니기 였지만. 그래도 과제와 시험 걱정을 하지않고 마음껏 게으름 피울 수 있는

사실 학기 중에도 늘 마감기한 하루 이틀을 남기고 막판에 불태우고, 심지어 가끔은 11시 59분 마감을 1분 남기고 과제를 제출하는 나는 참으로 여전하다. 내 하루는 퇴근 후 바로 책을 펴는 부지런한 사람들이나 새벽에 눈뜨자마자 책을 읽는 모범적인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아침 8시 10여분을 남겨두고 기상. 오전 회의나 업무가 끝난 뒤 점심이 되어서야 양치와 샤워를 한다. 그것도 업무가 많지 않은 날의 이야기다. 너무 바쁜 날은 라면 하나 끓일 시간도 없어서 집에서 일하면서 우버잇 앱으로 배달음식 (대부분 햄버거와 감자튀김, 가끔 쌀국수)를 시키고 회의가 끝나고 도착한 배달음식을 먹고 좀 눕는다. 10분 15분의 짧은 휴식 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또 다시 오후 업무를 시작한다. 그런 일이 잦은 달은 통장 잔고를 보며 깜짝 놀란다. 한끼에 배달료까지 합쳐 30달러 가까이 되는 돈을 매일같이 지출하고 나면 통장 잔고는 빠르게 바닥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몸은 무겁고 지갑은 가벼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다섯 여섯시 쯤 일 마무리를 하고 7시 정도에 저녁을 먹는다. 저녁에 집밥을 해먹고 나면 또 좀 누워준다. 누워서 인스타도 보고 브런치도 좀 읽고 하다가 8시부터 공부해야한다는 압박을 느끼기 시작하고 8시 15분까지 버티다 괴성을 지르며 몸을 일으킨다. 그 후 책상에 앉아 책을 펴고 노트북을 연다. 야밤에 냉커피가 좋을리 없지만 병째 파는 콜드브루에 아이스와 물을 타 연하게 만들어 홀짝이며 책을 훑고 밀린 강의 녹화본도 확인한다.

집중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공부하고 있으면 인스타도 하고싶고 유튜브도 보고 싶고. 집중하는 습관을 길러야지 생각하고 공부 유튜버들을 틀어놓고 자극 받으려해도 책보다 재미있는 폰에 자꾸만 관심이 간다. 그뿐인가, 갑자기 입이 궁금해서 단것도 먹고싶고 칼칼한 라면도 한사발 하고싶다.

이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집중하면 참으로 좋겠지만 나는 아직도 진행형 학생이다. 책 한장 읽고 인스타 한번 보고, 두장 읽고 유튜브 좀 보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스스로 난 절대 밤을 새서 공부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알기에 수면시간 업무시간을 제외한 상태에서 실현 가능한 공부시간을 계획하고 실천한다. 대학교때는 밤 새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무지막지한 희망을 가졌지만 이제는 깔끔하게 그 옵션은 빼버린다. 스무살때도 못 한 밤샘을 서른 넷에 할수는 없다. 오늘도 수요일이 마감인 과제를 화요일인 내일 오후에 시작할 생각을 하는 나는 여전히 참으로 꾸준힌 게으름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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