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즐거움

계속 글 쓰는 사람이고 싶은 이유

by 장주인

태생적으로 수다스러운 사람이 있다. 말하기에는 상대가 필요하기에 아무리 수다스러운 사람도 눈치껏 발화량을 조절한다. 글쓰기는 불특정 다수에게 떠드는 수다와 같다는 면에서 수다스러운 성격과 잘 맞다. 상대가 바로 앞에는 없다는 점, 그래서 실제 전달이 되기 전까지는 마음껏 말하고 고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글쓰기는 수백 번도 주워 담을 수 있는 점을 방패 삼아 상대보다 나에게 집중하며 원 없이 쏟아내는 일이다. 익명 뒤에 숨는다면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기도 하다. 글쓰기 밖의 사회적 관계들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덕이다.


글쓰기에는 정해진 한계가 없다. 갑자기 어느 주인공을 사라지게 할 수도, 억만장자로 만들 수도 있다.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는 게 당연한 현실과 대비되어 글쓰기는 내게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글쓰기의 소통 상대도 현재의 친구, 주변 사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10년 뒤, 어쩌면 200년 뒤의 누군가와도 소통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 타임머신이 없어도 다른 시대의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참 멋지다.


글 내용에서 오는 무한성에 더불어 물리적인 환경 자체에서도 무한성을 느낄 수 있다. 글은 종이에 펜으로 쓸 수도 있지만, 어떤 나라, 장소에 있든 노트북만 켜면 쓸 수 있기도 하다. 심지어는 음성 메모를 활용한다면, 말을 하기만 해도 글이 써진다. 즉, 누워서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끝없는 자유로움에서 큰 즐거움이 생긴다.


글 쓰는 물리적인 환경을 다시 생각해 보면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최대한 덜 받도록 글에만 집중하고, 일정 시간 그 세팅을 유지하는 것은 마치 명상과도 같다. 사실 명상을 제대로 해본 적은 없어서 정확히 어떤 장점과 유사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명상과도 비슷하다고 느껴지니, 명상이 주는 장점을 글쓰기도 어느 정도 같이 가져갈 수 있지 않나 하고 희망해 본다.


일상에서는 ‘강점’이라고 이름 붙이기 애매했던 나의 특성들이 글쓰기를 만나면 비로소 진정한 강점이 되기도 한다. 남들보다 약간 더 빠른 나의 타이핑 속도는 내 생각을 활자로 표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펜보다 더욱 편한 도구가 있는 현대에 태어나 그 도구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에 감사하다. 그간 크게 드러내지 않았던 오탈자 감지 능력도 글쓰기를 할 때 더 큰 강점이 된다. 찾고 싶지 않아도 이미 찾아버린 내 눈 덕에, 남들은 편하게 보는 글도 매번 거슬려하곤 한다.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아마 꼭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아무리 기계가 잡아준다 한들 끝까지 못 잡는 오탈자는 있기 마련이다. 그간 발견한 오탈자들도 모두 기계를 거쳤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평소에는 하지 못하는 자기 긍정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새로이 발견한 글쓰기의 즐거움이다.


계속 노력하면 실력이 나아진다는 건 어찌 보면 모든 영역에서 공통된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노력에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면 노력 자체가 사치가 될 수도 있다. 말 한 마리와 드넓은 대지가 필요한 승마나 2m 정도 깊이만큼의 물과 수영복이 필요한 수영을 연마하는 것보다는 당장 눈뜨자마자 누운 채로 휴대전화 메모장을 켜는 것이 비용이 싸지 않은가. 두 팔, 두 다리가 없이도 나의 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 또한 귀하다.


쓰다 보니 장점만 나열한 것 같아 힘든 점에 대해서도 써보려 하니, 장점만큼 빠르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 점 역시 나에게 글쓰기가 잘 맞는다는 반증으로 느껴져 기분이 좋아진다. 힘든 점이라면 수없이 많은 편집 과정이 될 수 있겠다. 독자가 있는 글쓰기를 할 때, 조금 더 인기 있는 글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삼자의 피드백이 필수적이다. 나의 창작물에 타인이 말을 얹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평소에도 타인의 의견을 잘, 때때로 지나치게 수용하는 나로서는 불편할 점이 없다. 오히려 정말 세상에 내기 전에 정비하는 과정에 타인이 도움을 준다는 부분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렇게 글을 고치는 과정까지 즐거움인 게 바로 글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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