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의Valentin
1
견하(見河)할매가 말씀하시길
나를 빼닮아 아름다운 아이들아.
너희가 서로를 귀히 여긴다면
나의 풍요로움과 사랑을 얻을 것이요,
짊어진 슬픔은 가벼워질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집 안에는 화분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는 시누대가 심겨 있었는데 그렇게 큰 크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 시누대를 보고 자란 열세 살의 나에게는 천장을 뚫을 만큼 단단하고 웅장해 보였다. 나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두 손을 오목하게 모아 맑은 물을 담고 화분에 물을 주었다. 그릇이나 잔에 담아서 줘도 충분하지만, 손으로 직접 주면 더 정성을 들이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날엔 흙에 뿌리기도 하고, 이파리가 약간 시든 거 같다 싶으면 그 위로 뿌려주기도 했다. 그다음에는 두 손바닥을 둥글게 비벼가며 치성을 드렸다. 내용은 매번 달라졌지만, 굳이 빌고 싶은 게 없을 땐 내가 엄마에게서, 나의 엄마가 엄마에게서 배운 말을 기계적으로 읊곤 했다.
우리는 산신의 형상을 한 아이들로서 축복을 누리려 합니다.
우리는 견하할매의 모습을 한 자들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풍요를 기쁘게 나눕니다.
우리는 힘을 이로운 곳에 씁니다.
우리는 서로의 슬픔을 나누어 가집니다.
우리는 외로운 이에게 손을 내밉니다.
오늘도 견하할매의 보호 아래 서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치성을 드릴 땐 꼭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필요는 없지만, 어릴 적의 난 일부러 크게 중얼거렸다. 특히 부모님이 근처에 있을 땐 더욱 목소리가 커졌다. 두 분이 내 기도를 듣고 칭찬해 주시길 내심 바랐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기도를 끝내면 뒤에서 살포시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는데, 평소에는 애정 표현이 별로 없던 분이라 어쩌다 한 번 닿는 머리 위의 촉감에 눈이 사르르 감기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아름이, 견하할매가 예뻐라 하시겠다.”
엄마는 그리 말하며 갓 찐 감자를 손에 하나 쥐여줬다. 내가 그걸 받아 들고 우물우물 씹고 있자, 입술에 따끈한 보리차가 담긴 잔을 대어주며 “뜨겁데이”라고 말했다. 콧속 점막을 따라서 따스하게 달라붙은 보리의 구수한 향을 만끽하고 있을 때, 도훈 아저씨가 밖에서 “아름아! 퍼떡 가자” 하며 날 불렀다.
내가 살던 집은 구룡포읍 후동리 중에서도 분토골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었다. 비옥한 땅이 나는 곳이라는 뜻이었는데, 어른들은 벼농사도 짓고, 보리농사도 짓고, 시금치도 키우고 그랬다. 우리 집은 바로 옆에 비닐하우스가 있어서 토마토를 재배했다.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집 바로 근처에는 아이라고 불릴만한 인원이 그리 많지는 않았고, 저 논두렁 밭두렁 길 넘어가야 다른 마을 아이들도 있고 그랬다.
구룡포 읍내에서 눌태리를 지나 후동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작은 회관이 하나 있는데, 평일마다 온 후동리 마을 아이들이 거기 모여서 수업을 들었다. 어른들이 돌아가면서 일일 선생님 역할을 자처했고, 그날은 바로 옆집에 사는 도훈 아저씨의 차례라서 나와 함께 등교하기로 했던 것이다. 마을 회관까지는 바지런하게 걸어가면 40분 정도 걸렸는데, 아저씨 손을 꼭 잡고 향하는 길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순식간에 회관 앞으로 도착해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나 말고 다른 아이들이 와서 앉아 있었다. 나는 매번 단짝인 유나 옆자리에 앉았다. 그 아이는 키가 무척 큰 데다 꼬리도 튼튼해서 나뿐만 아니라 또래들이 동경하는 대상이었다.
나도 열 살 때까지는 몸이 자라는 데 별문제가 없었는데, 그다음 해인 열한 살 때부터는 이상하게도 꼬리 모양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 키가 크는 속도도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꼬리는 그에 비해서도 훨씬 부진하니 기가 죽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었다. 나는 마른 편이라서 풍채 좋은 유나가 곁에 있으면 보호받는다는 기분을 종종 느끼곤 했다. 그는 형제가 없던 내게 언니 같은 존재였다.
자리에 앉으니, 도훈 아저씨가 벽을 탕탕 두드렸다. 시끌벅적하던 교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나는 도훈 아저씨가 선생님인 날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함께 학교에 갈 수 있는 것도 한몫했지만, 그보단 아저씨가 가르쳐주는 내용과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아저씨는 보통 우리 동네의 풍습이나 지리에 관한 내용 위주로 수업을 하셨다. 듣고 있다 보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 나는 그게 아쉬워 가는 길에도 아저씨에게 이야기를 해달라며 조르곤 했었다.
간혹 아저씨는 수업 시간에 우리 동네 설화―대부분 견하할매 이야기였지만―부터 시작해서 구룡포에 있는 해신과 동신, 산신, 왜 구룡포는 이름이 구룡포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들은 아직도 내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 아저씨의 말투와 실감 나던 표정,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하던 열정적인 목소리와 손짓까지. 승천을 한 아홉 마리의 용, 승천을 하지 못한 용이 떨어지며 생긴 터 전체를 주관한다는 해신, 신비한 눌태리 윷판 바위와 그 영험한 기운을 지킨다는 장승, 후동리의 산신인 견하할매, 병포리의 용두산 깊은 곳에 산다는 산신령.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만큼은 내가 작고 왜소한 여자아이가 아니라, 신의 사랑을 받는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자, 오늘은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보호소의 역할에 대해서 알려준다. 니네 저짝에 벼룻길 마을 어딘지 알제?”
아이들이 일제히 “네”하고 크게 외쳤다.
“그카면, 거기에 보호소 있는 것도 잘 알고 있겠네? 누가 갈 수 있는 건지 아는 사람?”
이번에도 아이들은 경쟁하듯 “주춤이요!”하고 대답했다. 도훈 아저씨는 우렁찬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중에서 보호소에 가고 싶은 아 있나?”
아이들이 일제히 와하하 웃었다. 아저씨의 말에 아이들이 신나게 웃을 때면 나는 괜히 양어깨가 으쓱해졌다. 인기 많은 선생님이랑 내가 이웃이라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도훈 아저씨랑 같이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날이면 괜히 손을 더 꼭 잡곤 했다.
“니네도 알다시피 우리는 꼬리로 중심을 잡는다. 지면에 단단하게 받친 채로 높이 뛸 수도 있고, 다리랑 꼬리에 힘을 줘서 무거운 물건도 멀리 던질 수 있데이.”
아저씨는 다리와 꼬리를 땅에 힘껏 붙인 다음 커다란 무언가를 힘껏 던지는 시늉을 했다.
“근데 주춤이들은 왜 보호소에 가느냐? 걔네는 꼬리가 없거나, 있으나 마나 할 정도로 억수 짧기 때문에 한 발짝 떼는 것조차 힘든 경우가 많다. 중심이 잘 안 잡히거든.”
그러곤 한 발을 앞으로 떼더니 이리저리 휘청거리다 한쪽으로 픽 쓰러지는 몸 개그를 선보였다. 작은 교실 안이 다시 한번 까르르거리는 웃음으로 가득 찼다. 나도 신나게 웃었다.
“중심을 못 잡으면 우째 되겠노? 무거운 것도 잘 몬 들고, 힘도 약하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이에서 살면 어떨 거 같은데?”
“다쳐요!”
“힘들어요!”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면서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맞다. 쉽게 다칠 수 있데이. 그래서 보호소로 보내는기다. 거기서는 더 안전하게 살 수 있거든.”
그때 내가 용기를 내서 손을 들었다. 이걸 물어보고 싶어서 얼마나 가슴이 쿵쾅거렸던지, 손가락 끝까지 박동이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