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깨어나던 날

이미지 출처: Unsplash의Jay Mantri

by 주이슬




“주춤이들은 견하할매가 천벌을 내린 거라 카던데, 맞아요?”

후동리 사람들은 주춤이들도 견하할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반면 누군가는 천벌을 받은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제 막 성인이 된 승주 언니의 경우 내 앞에서는 주춤이들도 축복 속에서 태어났다 그래 놓곤, 언니의 친구들 앞에선 저주받은 거라며 이죽거렸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린 우리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또래끼리 모이면 축복이다, 천벌이다로 나누어져서 설전을 벌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내 질문에 아저씨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입을 뗐다.

“주춤이도 우리 후동리의 일원이다. 카니까 그런 생각은 절대 하면 안 된다. 알겠제?”

아이들은 선뜻 대답하지 않고 서로의 눈치만 봤다. 아저씨는 조용해진 교실을 잠깐 둘러보더니 활기찬 목소리로 수업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즐거운 수업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더 자세히는 앉아 있는 아이들의 꼬리를 관찰했다. 내 또래는 전부 하나같이 나보다 크고 굵은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보다 작은 건 어린 애들뿐이었다. 혹시나 나도 꼬리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아서, 혹은 갑자기 뎅강 잘려서 보호소로 가게 되면 어쩌나 두려웠다. 그래서인지 이맘때쯤엔 보호소에 버려져 있는 악몽도 자주 꾸곤 했다.


수업을 마친 뒤 아저씨와 집으로 돌아오니 효연 아주머니가 주방에 계셨다. 임신 막달이라서 배가 한껏 불러 있었던 아주머니는 도훈 아저씨와 부부 사이였다. 나는 허리를 짚고 끙끙거리며 걷는 아주머니를 볼 때마다 저 배가 '팡'하고 터지면서 갑자기 아이가 나올까 봐 겁을 먹었다. 엄마랑 아빠는 토마토를 보러 갔는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아주머니만 우리 집 식탁에 앉아서 쪄놓은 감자를 먹고 있었다.

“애기 이름은 뭐로 할 거예요?”

내 질문에 아주머니가 고개를 숙여 배를 바라봤다. 그리곤 아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답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아주머니 배가 터져버릴까 봐 정신이 팔려있느라 대답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응? 우째 생각하노?”

아주머니가 내 머리칼을 몇 가닥 쥐더니 손가락으로 아주 부드럽게 꼬았다. 나는 그 기척을 느끼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기 이름 말이다. 네가 아름이니까, 우리 아기 이름은 하나로 할까 싶어가. 니네 둘이 같이 부를 때 ‘한아름’하고 부르면 된다아이가. 이쁘제?”

그 말을 듣는데 두피가 괜히 간질간질했다. 몸을 배배 꼬는 날 보더니 아주머니가 “부끄럽나? 야가 이래 귀엽다.”라고 하면서 깔깔 웃었다. 공기 방울이 톡톡 터지는 것 같은 경쾌한 소리였다.

내 장난감 중에는 노란색 칠을 한 말과 망아지 조각이 하나씩 있었는데,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아기가 태어나면 망아지 조각을 선물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망아지 같은 그 아이에게 말처럼 든든한 존재가 되리라고. 아기와 내가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상상을 할 때면 온몸과 마음이 붕 뜨는 것 같았다.

“왔나?”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현관문을 바라보니 엄마가 막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토마토의 새콤한 냄새가 훅 끼쳤다. 포근한 흙내가 섞인,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이었다.

“아름이 니 오늘 학교에서 도훈이 아저씨 말 잘 들었나?”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가 옆에서 “아름이야 맨날 얌전하지.”라며 나를 두둔했다. 그러자 엄마가 “니 아줌마랑 아저씨한테 줄 거 있다매? 드렸나?”라며 운을 띄웠고, 나는 “아!”하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실 아침에 아저씨를 만나는 순간부터 주리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선뜻 나서기에는 조금 쑥스러운 터였다.

책상 위에 올려진 스케치북을 한 장 찢은 다음 아저씨에게 슬그머니 내밀었다. 작은 아기가 견하할매에게 안겨 있는 그림이었는데, 아기와 견하할매 모두 멋지게 뻗은 꼬리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공을 들였다. 두 사람의 꼬리에다 알록달록한 나비와 꽃, 풀, 시누대를 열심히 그려 넣었다. 아저씨는 그림을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짓곤 곧장 아주머니에게 보여줬다. 두 분 다 감상적인 성격이라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고, 나는 나대로 어른도 울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충격과 죄책감을 느꼈다. 엄마의 눈치를 슬쩍 보니 딱히 내가 잘못한 건 아닌 것 같아, 콩닥거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태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저씨는 민망했는지 흠하고 괜히 목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견하할매가 우리 애기를 보살펴주시고 있네.”

“네. 애기는 할매처럼 꼬리도 엄청 단단하고 힘도 장사 같을 거예요.”

나는 대답을 한 다음 한차례 밭은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며 용기 내어 물었다.

“근데 아저씨 왜 울어요?”

“좋아서 그카지. 네가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이 너무 아름다워서. 팔자는 이름 따라간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그러곤 내 볼을 손가락으로 톡, 쳤다. 그 순간 어른을 울렸다는 죄책감이 순식간에 환희로 바뀌었다. 가슴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숨이 가빠왔고, 되레 내가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쌕쌕대는 나를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꼭 감싸안았다. 엄마한테서 나는 새콤하고 풋풋한 향은 없었지만 나름의 포근함이 좋았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운 내 방으로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는 이불을 꼭 여며주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굳이 듣지 않아도 온몸을 감싸는 포근함에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오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저씨의 눈가에 글썽였던 눈물과 아주머니의 해사한 미소. 내가 그린 그림이 어른들을 울리다니. 좋으면서도 간지러운 감각을 최대한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잠자리 이야기를 청했다.

“엄마, 내 견하할매 얘기 듣고 싶다.”

엄마는 “니가 애기가?”라며 살짝 핀잔을 주면서도 곧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옛날 옛적에…. 우리 후동리에는 귀신골이라고 불릴 만큼 잡귀가 마이 살았어. 마을 사람들은 잡귀들이 하도 몬살게 구니까 집도 버리고 터도 버리고 다 도망을 가뿌는기라. 사람이 버린 터는 우째되는지 아나? 귀신이 들어서서 딱 잡고 버틴데이. 그러니까 마을이 갈수록 더 황량해질 수밖에 없겠제.

그런데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한 가족이 있었어. 이 가족은 우리 집처럼 엄마랑 아빠, 그리고 딸까지 총 세 명이었는데 딸래미가 지금 아름이 니만 했을 끼다. 걔네 부모님이 잡귀에 들려서 하루 종일 병석에 누워 있었거든. 그래서 차마 그 몸을 이끌고 도망을 갈 수가 없는기라. 근데 이 딸래미가 참 착해. 그래서 매일같이 불평불만도 안 하고 부모님을 정성껏 돌보면서 얼른 낫길 기도했지.

하루는 이 애를 딱하게 여긴 조상신이 꿈에 나와서는 귀띔을 하나 해줬다카대. “니네 어머니 아버지가 건강해지고, 동네 잡귀들을 쫓으려면 후동지를 품고 있는 산에 정성을 올려야 한다.”라고. 아름이 니 후동지 어딘지 알제? 저 뒤쪽에 저수지 크게 하나 있다아이가, 거길 후동지라 카거든. 매일 새벽에 일어나가, 하루 중 가장 순수한 물을 떠서 기도를 드리면 될 거라고 했다대.

딸래미는 곧장 다음날부터 매일같이 동이 채 뜨기도 전에 일어나 큰 양동이에 맑은 물을 가득 담아서 산으로 찾아갔어. 그러고는 조상신이 일러준 대로 평평하고 고운 바위랑 돌을 찾아서 차곡차곡 제단을 쌓았지. 날카로운 돌에 팔다리가 긁히고, 손톱이 부러져도 아이는 부모님이 얼른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쉴 틈 없이 바지런히 움직였어.

제단이 만들어진 다음에는 길어온 물을 올리고 기도를 드렸어. 잡귀를 마을에서 쫓아내고 부모님이 안 아프게 해달라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보름이 훌쩍 지날 무렵이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는 깨끗한 물을 올린 다음 기도를 하고 있었어.

“부디 부모님이 얼른 낫게 해주세요.”

그때,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산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기지개를 한껏 켜며 일어나는 거 아니겠나. 그 크기가 어찌나 웅장하던지 아이가 고개를 힘껏 치켜올려도 얼굴을 바라보기 힘들 정도였다 카대. 산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아이를 손 위에 올린 다음 눈을 마주쳤어. 모든 생명의 지혜와 근원을 담고 있는 눈이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벌벌 떨렸을 기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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