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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재환 Aug 17. 2021

조연을 자처하기

죽은 원조를 살리는 길

국제개발협력사업을 할 때, 프로젝트 관리자가 그 주도권을 기꺼이 포기하고 사업을 이루어가는 것은 쉬울 것 같아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 길은 돌아가는 길이요, 더 많은 노력과 인내와 이해가 필요한 길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읽어가며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이 잘 되는 길이요, 수원국 주민들이 그들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길이며, 사회가 살아나고 개발의 씨앗이 주위로 퍼져나가는 선순환의 길이기 때문이다.   




수혜자의 생각을 묻고, 그대로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살아있다’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의학계에서 ‘뇌사’를 사망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반면, 신체활동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닉 부이치치 같은 사람을 보면 누구보다도 더욱 살아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정의할 때, 숨 쉬고 심장이 뛰는 생리학적 생존보다 사고하고 결정하는 ‘정서적·이성적’ 판단을 더욱 중요시한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국제개발협력사업을 할 때에 자조하도록 하는 것은 수원국에게 생명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요, 공여국의 뜻대로 따르게 하는 것은 수원국에게 죽음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에 필요한 지원을 해 줄 때 무엇을 할지, 어디에서 할지, 언제 어떻게 할지 물어보고, 그들 스스로가 그 일을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은 생명을 주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전문적 지식에 따르면 그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어도, 우리가 더 좋은 것을 알고 있어도 모르는 척 그들의 뜻에 따르는 것이 사업을 수행하는 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포기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에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과정 속에서 수혜자와 수원국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함께 하는 것이다. 적절히 필요한 역할을 주어 기여하게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게 하고 도움을 받게 하여 더욱 깊은 정을 나누게 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관리자는 때론 각본가가 되고 때론 지휘자, 조명감독이 되어야 한다.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해놓고 역할 하나하나의 배역을 지역 주민들에게 부탁하고 격려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삶의 질을 높여 나가는 과정에서 지역사회 공동체가 더욱 살아나게 된다. 국제개발협력의 성과는 수원국 구성원들이 스스로 더 나아지는 것을 경험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자연스럽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일하는 것은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국제원조 사업이 공여국이 주도적으로 만들어주고 지원해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수원국에서도 그냥 알아서 해달라는 수동적인 태도에 익숙해진 까닭이다. 그냥 우리가 하고자 하는 계획에 따라 하면 되는데 여러 사람 만나 묻고 그 의견을 조율해서 하려니 일이 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그 방법이 모두가 살아나는 참된 국제개발의 방법이라면 그 수고를 기꺼이 마다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제개발의 중요한 핵심은 예산을 확보하거나 계획에 따라 지원이 적절히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이 아니게 된다. 사행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가짐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지속가능한 발전의 ‘비결’이 된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원국 문화와 환경을 잘 이해하고 살려주어야 한다. 

더 중요하기로는 공여국과 수행기관이 국제개발사업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을 버려야 한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야기가 점점 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이루기 위해 주인공 자리를 기꺼이 포기하고 조금 더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잠비아에서 태어난 담비사 모요는 ‘죽은 원조’라는 저서에서 원조 의존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원조가 수여국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단순히 자원을 옮겨놓는 즉각적인 해법이 때로는 빈곤을 더 악화시키며 빈곤 상태에 더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부유한 나라에서 생산된 잉여 생산물을 빈곤한 나라로 이전시키는 행위는 실제로는 성장하고 있는 개도국의 산업을 죽이고, 현지의 자생력을 갉아먹거나 일거리를 없애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의도로 시작된 좋은 일이 나쁜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된다. 


때론 그들에게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러한 일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고민이 된다. 그들에게 없는 결핍을 우리의 기준으로 찾으려 애쓰는 것은 아닌가 싶은 정도로. 

한편으로는 개발도상국의 높은 유아 사망률과 낮은 교육률, 더 나아질 수 있는 경제와 제도를 보면 뭔가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속가능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현지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가는 이방인일 뿐이며, 그들의 삶에 터전을 일구는 것은 자신들의 몫이어야 한다. 


그들의 사정은 그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무엇이 필요한지, 누구와 함께 하면 효과적인지,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은지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법이다. 그들에게 좋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대신 찾아주었을 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않았음을 역사를 통해 많이 경험하였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자신들에게 가장 좋은 방법으로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방식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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