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을 여러 분야에서 많이 들을 수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환경 분야에서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1987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United Nations 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 & Development, WCED)’에 제출된 ‘브룬트란트 보고서'에서 사용된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지속가능발전이란 “미래세대로 하여금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하는 개발행위의 과실이 미래 세대에게는 비용이나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는가, 우리 세대의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제한된 자원을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대로 계속 사용하는 것이 도덕적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지속가능발전은 기존의 환경보호라는 좁은 범위에서 경제성장, 사회통합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정립되었고, 현재는 경제·사회·환경이 균형 있게 발전을 이루는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개발사업을 디자인할 때는 지속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도움을 받는 국가나 개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움이 중단되는 순간, 지속가능성도 함께 중단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을 깨우쳐주는 좋은 격언이 있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말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어느 개발도상국에 갔을 때였다. 20여 명의 대학생들을 인솔해서 국제개발협력 현장을 견학하고 해외자원봉사활동을 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수도에 있는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쾌적하고 좋은 공항 시설에 적지 않게 놀랬다. 공항에서부터 도심까지 이어지는 넓은 도로를 지나며, 상상했던 개발도상국의 모습과는 달리 이 나라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인 농촌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그 나라의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담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집 경계, 맨발로 다니고 있지만 뒷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 오늘날의 개발도상국들은 마치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페인트칠을 하고 학교 교실을 보수하는 봉사활동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던 것은 우리를 바라보는 그 마을 주민들의 태도였다. 팔 걷고 함께 할 법도 한데 그들은 우리의 활동을 보면서 하나같이 방관자의 모습을 취했다. 우리가 페인트통과 같은 자재들을 옮기거나 하는 것을 보면서도 거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지만, 우리가 활동하는 것이 그들의 삶에 과연 어느 정도의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봉사일정 다음날, 우리는 마을에 있는 관개수로를 청소했다. 오래전에 한국에서 만들어 준 관개수로였지만, 쓰레기와 흙으로 막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처음 관개수로를 만들었을 때는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잘 활용하였지만, 마을 주민들이 공동의 재산으로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쓰레기와 각종 오물을 버리면서 생긴 결과였다. 우리가 관개수로 청소를 마치자 다시 물살이 세지고 물의 흐름이 좋아졌다. 우리는 스스로의 성과에 보람을 느꼈지만, 나는 한편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막혀버릴 관개수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개발도상국을 갈 수 있는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그리고 여러 차례 개발도상국을 다닐 때마다 국제개발협력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얼마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인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구촌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대답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수행하는 사업을 통해 그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길 바랬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듯했다.
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더 나아가 그들이 스스로의 삶을 위해 조금 더 노력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해외 자원봉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해가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회적이고 단회성이며, 잠시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먼지 쌓이고 낡아버리는 일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빈곤한 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배고픔을 이길 빵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뿐이다. 그들에게 먹을 빵을 주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은 아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당장 굶어 가는 사람에게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현명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빈곤의 문제를 안고 있었고 경제적 필요를 가지고 있었다. 더 달라고 말하기가 미안할 뿐, 우리가 전달하는 것보다 더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국제개발협력을 할 때 어느 마을, 어느 사람들이든 그들의 경제적 필요를 채워주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빵만을 계속 주는 것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그것보다 좋은 것은 한 손엔 빵을, 한 손에 농기구를 쥐어주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SDGs를 달성하는 데 있어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들이 개도국이 자립하도록 돕고,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 것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우리가 전하는 작은 지식이, 작은 봉사활동이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변화가 그들의 삶을 조금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대단하지 않은 일이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 낼 때가 있다.
우리가 봉사현장에서 만난 어린아이에게 심어준 좋은 인상이 먼 훗날 또 다른 개발도상국을 도울 수 있는 좋은 인재에게 꿈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도 해보자는 동기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지 않고서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목적에 비해 우리가 하는 일이 너무나 하찮은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을 것이다.
우리의 작은 실천이 물고기 잡는 법을 알게되는 것까지 이어지기를 꿈꾸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