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가는 경로
스물여덟, 나의 사회생활 첫 시작은 사실 꽤 괜찮은 편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국내 20위권 대기업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에 공채로 입사했고, 무엇을 사거나 먹거나 할 때 고민하지 않아도 될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일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나쁘지 않았고, 윗 선임들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인한 공백을 성공적으로 메꾸면서 좋은 기회를 얻기도 했다. 직장생활 4년 차쯤 되었을 때, 내가 하는 일이 우리 회사를 더욱 성장하게 만드는 것 외에도 다른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우리 사회에 보다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 NGO 단체로 이직했다. 내 연봉의 앞자리 숫자를 낮추면서.
나는 잘 살고 싶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마지막에서 뒤돌아 봤을 때, 그래도 나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잘 살고 싶어서 잘 사는 게 뭘까 하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어려운 문제들이 다 그렇듯 명확한 답이 없다.
주위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바라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하지만 종종 그 노력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닌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아빠들은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와 많은 업무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가족을 위한 일로 여기고 참아낸다. 그것이 자신과 가족의 행복으로 가는 길로 여기고. 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일상은 낯선 아빠를 보고 울어버리는 아기와 홀로 육아를 떠맡다가 차가워지는 아내와 아빠처럼은 되지 않겠다는 사춘기 아들을 만나게 만든다.
흔히 생각하기 쉬운 것처럼 돈을 더 버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좋은 길일까? 만약 우리가 보다 부유할 수 있다면, 보다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질까?
친구 여럿이 모여 식사를 하면 돈을 더 잘 버는 친구가 내면 그러려니 한다. 고마워해야 하는데. 많이 버는 사람이 선물을 하려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비싼 걸 사야 비슷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건 아닌지. 반대로 받는 사람의 기대에 조금만 미치지 못해도 오히려 인색해 보이는 오해를 사진 않는지.
백만 원 버는 사람이 내는 십만 원과 오백만 원 버는 사람이 내는 십만 원. 십만 원이라는 현금이 가지는 가치는 동일한가, 다른가? 부유함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과연 행복에 더 가까울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행복으로 가는 길인 것처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이정표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웅성웅성 따라가고 있진 않았을까?
나는 때론 큰 꿈을 꾼다. 내가 가진 재능과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끌어내서 큰 일을 해내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꿈. 지속적으로 보다 나은 내가 되어가는 것. 그런 상상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무엇인가에 도전하고 싶게 만든다.
반면 나는 또 때론 소소한 일상에 큰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휴일에 침대에서 최대한 늦게 일어나는 것. 별생각 없이 들어간 식당에서 맛깔난 음식을 맛보는 것. 아이를 예상보다 일찍 재워내고 얻는 여가시간. 그러한 나의 일상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곧 행복임을 느낀다.
인간이란, 복잡하고 역설적이다. 하나의 사람에게 상반된 이성과 감정이 함께 있는 것처럼, 내 큰 꿈과 소소한 일상의 상반된 두 가지 행복이 내 안에 함께 공존한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행복은, 다양한 내 상황 속에서 감사와 기쁨을 찾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행복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한 발견의 결과로 '잘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 대답은 분명히 무엇인가 조금 달라졌다. 행복이란 것이 '내가 지금 노력해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따라 지금 가지는 것, 지금 느끼는 것' 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소소한 일상에서 이미 느끼는 것이자,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이미 느끼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자원봉사 현장에서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일들을 접하게 된다. 김장김치를 담아서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태풍으로 피해 입은 수해지역에서 가재도구를 정리해주기도 하고, 다문화주부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시월드에 대해 가르쳐주기도 하고. 독거노인들에게 식사를 드리기도 하고, 다양한 자원봉사자들을 만나고 많은 사회단체들과 접하게 된다. 그중엔 봉사단체 조끼를 입고 개인 욕심에 가득 차 있는 사람도 있고 누구도 모를 진짜 봉사를 몇 년째 해오는 사람도 있다.
지금까지 만난 다양한 사람들. 당시에는 그분들과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이웃으로 만난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잘 몰랐는데, 지역사회와 자원봉사에 관한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면서 이웃과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 나의 행복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더욱 바라게 된다. 모두가 살만한 세상. 열심히 살면 그 열심의 대가가 정당하게 돌아오는 세상.
세상은 불공평하다. 하지만 그 불공평은 좀 더 가진 사람이 좀 덜 가진 사람에게 나누어주라는 뜻이라고 나는 믿는다.
첫 직장에서 나는 이미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삶은 조금 다른 것이었고, 그 뒤로도 지금까지 많이 둘러 둘러 오고 있지만, 그 길을 계속 갔을 나에 비해 지금의 내가 더 행복하리라 믿는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조금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내가 조금은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갔으면 좋겠다. 잘 살고 싶었던 나는,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이미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조금 더 나은 스스로가 되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나의 경험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세상에는 나보다 큰 영향력을 미치며 좋은 일을 하는 분들이 너무너무 많지만 겨우 나 정도의 사람도 할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한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 이야기들을 꺼내놓는 용기를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