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란히 앉아서 교과서 첫 페이지부터 펼쳐 시간을 함께 보낸다.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아이를 향한 양육자의 관심과 마음을 보이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양육자가 쓰임을 다한 교과서에 관심을 보이면 아이는 자신이 관심을 받는 기분으로 이어진다. 아이가 수업 때 자기가 어떤 것을 배웠고 왜 이렇게 했는지 재미나게 종알종알 말을 해준다. 아이의 학교 생활과 수업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양육자는 아이에게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기회가 된다.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아이의 독특한 흔적들을 보게 된다. 교과서에 남긴 낙서를 보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재미난 그림책 한 권을 집중해서 파고드는 놀이 같다. 무슨 마음으로 이런 흔적을 남겼을까 궁금하다며 이야기를 끌어내면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
그냥 색칠만 하기에는 심심했다면서 색으로 채워야 할 모음에 무늬를 남기고 싶었단다. 이미 아는 글자이지만 수업을 지겹거나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나름 집중하기 위한 방법을 찾은 기특한 자세를 알 수 있었다.
배울 학습 주제에 아이가 포인트를 찾아 밑줄을 그어놓았다. 모음자를 '알고, 찾고, 읽고, 쓰고, 놀이하기'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학습 목표를 알아차리는 아이의 이해력을 보았다. 사방을 모두 그림 그리는 소스로 여기는 아이다. 선명한 교과서 삽화는 놓치기 아까운 소스다. 노란 벌집을 세워 두었으니 꿀이 흘러야 자연스럽단다. 일곱 군데에서 꿀이 흐른다.
반복된 글자 쓰기에도 인내가 필요하다. 따라 쓰기 할 바탕 글씨가 없이 혼자서 다섯 번이나 반복해야 하는 기본 모음이다. 쓰다가 다섯 번째 줄은 끝이 꺾이는 글씨체다. 변화된 이유를 물었다. 붓 펜을 들고 쓴 느낌을 내고 싶었단다. 일곱여덟 번째는 게임 속 세계처럼 표현했다는 이유가 글자 모양을 다시 보게 했다. 이렇게 하면서 만족스럽고 흐뭇해서 마음으로 한껏 웃었을 거다. 인내하며 마지막 칸까지 착실하게 채웠다며 기특함을 칭찬했다.
도시는 빌딩이 많으니까 빌딩 모양의 바코드를, 고구마는 그 형태 그대로의 바코드를 만들었다. 사진으로 담지 못한 페이지 아래는 엉뚱한 QR 코드를 만들다가 실패해서 까맣게 색칠된 네모도 있다. 교과서를 망치는 그림이 아니라 예쁜 게 어우러지는 낙서는 아이가 교과서를 아끼며 수업한다는 느낌을 준다.
학습 내용을 방해하지 않는 아이의 낙서에서 아이의 여유로운 마음도 본다. 따라가기 힘들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면 배운 내용을 기록해야 할 모든 공백을 채우지 못했을 거다. 교과 그림과 연관된 낙서를 남길 수도 없었을 거다.
두 모음이 모여 만들어지는 이중 모음은 만들어지는 과정을 흉내 냈다. '이렇게 하고 싶었어'라고 환한 낯으로 말하는 아이 눈이 반짝였다. 다행히 아이 스스로 수업을 집중하고 즐기려 재미 요소를 찾아 수업을 하는 기본자세가 잘 잡혔다.
아이 교과서를 보면 아이의 수업 태도가 보인다. 학교 수업 시간의 아이가 어떤 마음과 태도로 임하는지 궁금하다면 양육자는 아이의 교과서를 봐야 한다. 교과 내용 이해 없이 문제집으로 해결하는 건 한계가 있다. 저학년일수록 교과서를 통한 학습 태도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정확한 계산을 요구하는 수학과 수학 익힘을 보고 어려움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교과서는 아이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학습 습득 상태를 확인하기에 적합한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