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예 Jan 22. 2019

폭격 맞은 밥상 - ② 어떻게 치우지?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16



-실패한 큰아이의 유아식 시절-
첫아이 이유식 할 때는 제가 떠먹여 주었으니까 청소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유식을 떠서 입에 넣다가 입 주변에 묻은 것과 주변에 흘린 것만 살짝 닦아주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확실히 엄마 주도 이유식의 시작은 지저분해짐이 덜해서 청소가 쉽습니다. 

이유식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던 때, 이유식이 담겼던 그릇은 외면하더니 억지로 다 먹은 그릇은 한없이 탐합니다. 이유식 후기가 되면서부터는 음식을 더욱더 강렬하고 적극적으로 거부하였기에 흘리는 것도 없었어요. 입 다물고 먹지 않으니 당연하지요. 간혹, 입에 넣었다가 뱉는다고 해도 들어갔던 모양 그대로 나왔었고 파편이 되어 날아가는 경우는 재채기를 할 때 빼곤 없었습니다. 


제가 잠깐 미쳤었나 봐요. 무슨 믿음이었을까요, 17개월 즈음 아이 스스로 먹어 보게 하려고 그릇째 냉큼 내어주었다가 봉변을 당했었죠. 곁에 있는 물건들에 바르는 것은 기본이고 바닥에 던지고 몸에 바르며 놀기만 합니다. 


결국에는 저 편하자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꼴이었습니다. 서서히 접근했어야 하는데 그때는 어질러지는 것에 대한 너그러움이 너무나 부족했었어요. 끓어오르는 화를 잠재우는 동안 제 눈시울은 붉어질 뿐입니다. 
  
24개월의 어느 저녁 식사, 아이는 웃는 얼굴로 식사를 시작했다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국이 있는 식판을 뒤엎어버렸죠. 정말이지 당장은, 음식에 쏟은 제 정성이 외면받아 치솟는 분노, 사방에 어질러진 음식을 치워야 하는 귀찮음이 고통으로 밀려왔어요. 저는 밤중 수유를 하며 눈이 퉁퉁 붓도록 숨죽여 울었던 기억이 더해집니다.



-먹성 좋은 복덩이?-
둘째의 아이 주도 이유식 반응은 긍정적이었습니다. 비록 질질 흘리며 먹더라도 적극적으로 먹는 모습이 너무나 기특했습니다. 오물거리는 입이며 꼼지락거리며 음식을 잡으려는 그 자그마한 손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식의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했으니까요. 심지어 식사 시간에 웃어주기도 해요!




첫째 때 겪어보지 못한, 제힘으로 먹으려는 모습 자체가 흐뭇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잡아 주먹 쥔 손을 입으로 가져가는 대견한 모습과 대비되는 지저분함은 참아야 했습니다. 정말이지 아이 주도 식사 후의 청소는 스푼 피딩 때 보다 몇 배로 많았습니다. (그래도 솔직히 아이가 잘 먹으면 청소량은 많아도 즐겁더라고요.)
 

차리는 음식은 생으로 먹을 수 있는 과일과 찌고 삶은 무른 음식들이었습니다. 거기에 소스로 이용될 만한 죽이나 퓌레를 마련했죠. ‘이건 뭐지?’라는 느낌으로 스틱을 잡고 있던 손을 죽에 푹 담급니다. 죽이 한껏 묻은 손을 멍하니 바라보며 감상을 하고는 다른 손으로 죽을 털어냈어요. 시선은 죽이 묻은 손에만 머물렀기에 다른 곳으로 튀어가는 것은 안중에 없던 생후 10개월이었어요.
 



-아이 식사는 원래 지저분하다.-
이래저래 자신의 힘으로 음식이 으깨어지는 것을 알게 되고는 온전히 먹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놀잇감으로 서서히 인식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식을 만졌을 때 어떤 것은 따뜻하고, 어떤 것은 시원합니다. 어떤 것은 깔끔히 잡히지만, 또 아닌 것도 있어 연거푸 미끄러지기도 하는 촉감의 다양함을 앉은자리에서 고스란히 즐겨요. 식사하라고 앉은 부스터는 그야말로 ‘촉감 만족 놀이터’와 다를 바 없었어요.


동글동글 단호박 볼이 멀쩡하거나 으깨어지거나


생후 11개월 즈음, 손 힘이 많이 생겼는지 음식을 먹으면서 의도적으로 누르며 노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 예로, 달걀노른자를 넣은 단호박 볼을 손으로 잡고 뭉개더라고요. 느릿느릿 한 행동으로 단호박 볼에 집중하며 가지고 놀기 바빴어요. 손 사이에 끼인 것을 꺼내기 어려워지자 부스터에 바릅니다. 턱받이에도 손을 닦아보며 먹은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곳을 찾으려 열심입니다. 먹다가 흘린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음식을 묻히고 어떨 땐 엉덩이 쪽에 욱여넣고, 바닥에 음식 덩어리들을 투척했습니다. 
 

단호박을 욱여넣자. 여기 여기 엉덩이가 허전하지 않게.


이유식 안착에 실패하고 어렵게 어렵게 이어온 큰아이의 지난한 식사 시간이 잠깐 스치면서 쭈뼛함이 전해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반복하면 안 되잖아요. 밥 전쟁을 치른 큰아이 하나 두었다고 지레 겁을 먹지 않는 여유가 있음이 천만다행입니다. 아이는 음식을 짓이겨보며 노는 듯하다가 궁금하면 입에 주먹을 밀어 넣을 듯 음식을 가져가기도 했고 핥거나 빨거나 하면서 어떻게든 입으로도 촉감을 느끼려 하더라고요.
  
지켜보는 저는 식사 한 번에 전쟁터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헛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큰아이의 식사도 행동으로 전하던 메시지가 분명 있었을 거예요. 먹여야만 한다는 생각에 가려 아이 행동 언어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무지함을 후회해요. 그래서 둘째를 달리 보려 했어요. 앉은자리에서 열심히 먹다가 지저분해졌으니 나무랄 수 없고 던지는 것 또한 본능이기에 요령껏 청소하는 궁리만 할 뿐이었습니다.




-치우는 것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이유식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각종 장비를 갖춥니다. 식사 환경을 마련하며 아이의 잘 먹는 모습을 그리게 되는데요. 아이가 음식을 대하는 여러 가지 상황과 식사 후의 주변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가장 중요해요. 왜냐하면 음식을 차리는 것은 우리가 직접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식사 시간 중에 보이는 아이의 태도는 예측이 힘듭니다. 아이 행동을 보다가 자칫 날 것 그대로 거칠게 드러나게 되는 엄마의 마음이 아이 식사에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왜 뒤로 던질까? 날아가는 것도 보지 않으면서...


음식을 차리는데 에너지 쏟고 아이 먹이는데 에너지를 들이붓는 격이라면 식사 현장 정리는 최대한 간편할수록 좋습니다. 아이 주도 식사의 가장 기본적인 식후 청소는 샤워와 옷 세탁입니다. 이것이 가장 깔끔한 뒷정리 방법이에요. 열심히 먹으니까(노니까) 얼굴이며 목, 손가락 사이사이 음식이 묻어요. 식후마다 샤워는 당연하다 인지했어요. 옷은 바로 초벌 헹굼 하고 찬물에 과탄산소다 풀어서 담가 두거나 얼룩 제거제 발랐다가 하루에 한 번 세탁기로 빨았어요. 손빨래할 생각 하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18개월 전까지는 거의 손으로 먹어요. 숟가락이든 포크든 뭐든 하나 잡고는 있는데 장식품인 거죠. 손만큼 편한 것이 없나 봅니다. 깔끔하게 먹기 시작하는 날은 기약이 없어 답답하시겠지만, 훗날 스스로 먹으려는 의지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배고픔을 알아 음식을 요청하는 날을 생각하면서 지금 당장 치우는 번거로움은 잊어야 해요. 먹이거나 치울 때를 생각해서 ‘참을 인’을 한가득 장착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상황에 맞게 치워보자-
둘째 이유식 시작은 의자에 부스터를 장착하고 식탁 식사였습니다. 부스터에서 떨어진 음식은 낙하 거리 때문에 의자와 벽, 할 것 없이 사방으로 마구 튀었습니다. 그래서 의자를 포기했습니다. 청소하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부스터를 분리하여 바닥 식사를 시작한 것이죠. 부스터는 샤워기로 바로 씻는 것이 가능하도록 등받이나 쿠션이 없는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했어요. 하이체어를 사용하신다면 청소의 편의를 위해 쿠션 없는 제품이 아무래도 좋겠지요.
  
아이가 스스로 먹다 보면 몸과 옷뿐 아니라 식사 의자(하이체어, 부스터), 바닥까지 지저분해져요. 그래서 청소의 간편함을 위해 일회용 비닐을 바닥에 깔아 놓는 분도 계세요. 돗자리나 매끈한 매트 위에 부스터를 올려 식사를 하고 닦으시기도 하고요.
  
저는 식탁 식사를 할 때 비닐도 깔아 보았는데요. 역시, 버려지는 비닐이 마음에 쓰여 사용을 중지했습니다. 바닥에 버려진 것만 정리하기 편하지 여전히 남은 정리가 많아요. 언제인지 모를 벽으로 튀어버린 블루베리 요거트는 미처 발견하지 못해 닦지 못했어요. 벽지에 흡수되어 지워지지 않는 얼룩은 치열했을 식사 시간을 떠오르게 합니다. 벽에도 비닐을 붙였어야 했나,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트 위에서의 식사는 접이식 매트의 매끈함이 아니라면 오히려 일만 더 많아지게 됩니다. 결국 저에게는 물걸레질 실컷 할 수 있는 장판 바닥에 부스터만 놓고 사용하는 것이 가장 편하더라고요. 이래저래 어차피 식사 자리는 다 지저분해져요. 어느 정도 식사에 익숙해지고 잡는 감각이 발달할 때까지는 바닥 식사를 권해요.
 

옷 오염을 막으려고 긴 팔 방수 턱받이를 대신해 큰아이가 쓰던 미술 가운을 사용했었는데요. 사용상 계절적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세탁과 건조가 간편한 플라스틱 턱받이를 선택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어느 턱받이를 사용하더라도 옷의 오염은 다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턱받이를 거부하는 시기가 있어요. 거추장스러운 거 질색한다면 헐겁게 채워도 다 뜯어버리잖아요. 어떨 땐 사진처럼 목 뒤로 넘기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언제든 쉽게 풀 수 있는 플라스틱 턱받이가 편하더라고요. 아이는 한동안 옷이 지저분해지는 불쾌함을 모르기에 옷을 수건처럼 사용합니다. 그래서 사실상 턱받이는 무용지물일 때가 많아요. (첫째는 턱받이 사용 완전 거부! 옷이 곧 수건이었어요)
  

아이에게 식사가 끝난 것을 확인받고는 정리에 들어갔어요. 먼저 부스터의 트레이와 턱받이를 벗겨 싱크대에 넣었어요. 그 사이에도 아이는 손으로 부스터와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발도 만져요. 벨트를 풀자마자 더 어질러지기 전에 아이를 바로 들어서 화장실로 갔습니다. 옷을 벗기고 온수가 나올 때까지 세숫대야에 냉수 받아 옷을 담갔어요. 손만 비누로 씻겼고 다른 부위는 가볍게 물로만 씻겼어요. 
  
닦고 옷을 입힌 다음에는 식사를 마친 자리에서 떨어뜨려 놀게 했어요. 부스터는 냉큼 들어서 화장실에 넣었고요. 엄마한테 갈 거라며 다가오면 발과 팔로 아이를 슬쩍 밀었어요. 주변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면서 행주로 밥상(식탁)과 주변을 재빠르게 정리했습니다. 그러지 않고 그저 닦고만 있으면 떨어진 파편을 손으로 잡고 입에 넣거나 꾹 누르거든요. 주변 정리가 끝나면 부스터를 씻어내고 마지막으로 옷을 초벌 빨래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치워야 할 것이 줄어들어 굳이 샤워까지 할 필요가 없어질 때가 오더라고요. 그때는 샤워 대신에 작은 스텐 볼에 물을 받아 손과 입을 대충 씻기고 닦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손에 끼는 것도 없고 지저분해진 손으로 머리며 얼굴을 문지르지 않도록 계속 말을 해주었기에 손만 씻기는 정도로 가벼운 정리가 가능했던 거예요. 마지막으로 바로 옷을 벗겨 식사 자리에서 떨어져서 놀게 한 뒤 남은 음식들을 훔치며 정리를 마쳤습니다. "엄마 이거 정리할 동안 잠깐 놀고 있어. 치우고 갈게."

이렇게 했더니 식전 손 씻기와 식후 손 씻기가 자연스럽게 훈련이 되었어요. 30개월인 지금은 떨어진 것은 손으로 주워 먹고 숟가락으로 열심히 떠먹고 식사가 끝나면 스스로 화장실로 가요.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처럼 두 손을 들고 가며 ‘다 먹었어. 손 씻겨 줘.’합니다.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은 밥과 아이를 대하는 엄마 마음과 아이 스스로의 식사 선택을 전제합니다. 입 짧은 첫째와 먹성 좋은 둘째를 통해 터득한 아이주도 식사 해법을 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폭격 맞은 밥상 - ① 짜증 나는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