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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Feb 14. 2019

폭격 맞은 밥상 - ③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17


아이 주도 이유식을 했는데 지저분해지는 걸 참지 못하고, 청소가 감당이 안 되어 포기하시는 분이 많아요. 완전한 유아식으로 넘어가서 18개월 이후에 혼자 숟가락을 들고 먹는다고 해도 지저분해지기는 마찬가지예요. 7살 이후가 되어도 흘리며 먹어요. 이때는 미숙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수해서 떨어뜨리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말이죠, 점점 숟가락이나 포크 사용이 능숙해지면 확실히 청소의 부담이 줄어듭니다. 아이도 흘린 것을 의식하고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반응을 하거든요.
     
턱받이 포켓에 미처 걸리지 못해 바닥에 떨어진 음식은 티슈로 치우면 되고 바지에 붙은 밥풀을 떼어 내는 것이 거의 청소의 전부입니다. (바지에 붙은 밥풀은 모르고 있다가 말랐을 때 발견하고 떼는 게 가장 깔끔해요.)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손 씻겨주고 입 닦아주기만 더할 뿐 너무 심한 경우가 아니면 샤워까지는 하지 않아요.


식사 후 뒷태를 탐하던 밥풀들 제거



청소 부담은 이유식 시기만 잘 지낸다면 점점 흘리는 것도 적고 치울 것도 없음을 알게 될 거예요. ‘장난치다가 만다, 치울 게 너무 많다, 그래서 하다 말았다.’ 하시는데 이왕 아이 주도 식사를 위해 시작한 BLW라면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어른도 먹다가 흘릴 수 있어요. 하물며 아이는 어떻겠어요. 아이도 흘리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하잖아요. 그렇게 연습 기회를 가지다 보면 아이도 지저분한 것이 싫어서 깨끗하게 먹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흘리지 않고, 손목에 음식 묻히지 않고 깨끗하게 먹는 아이의 식사는 아동기가 되어야 이루어질 일입니다. 이렇게 기대한다는 것은 엄마의 주관적인 완벽함에 가깝도록 밀어붙이는 것이잖아요. ‘잘 먹는 식사’의 기대감이 높으면 밥 앞에서 보이는 아이의 어떤 반응도 부족하게만 느껴집니다. 
     
잘하려는 아이의 노력은 누구나 다 하는 아주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니 칭찬에 인색하게 되고 식사 시간과 부수적인 청소가 너무 버겁지요. 남들은 별 무리 없이 아이들 밥만 잘 먹이던데 나는 온종일 미친 듯이 밥에 매달려 노력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는 느낌이 듭니다. 자괴감에 빠지는 독을 계속 만들어 내지 않길 바랍니다.
     
전적으로 아이가 갑자기 잘 먹는 경우는 없다고 봐요. 잘 먹을 때까지 눈으로 음식들을 볼 수 있도록 시간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는 타인이 음식을 먹는 자연스러움을 많이 접해야 해요. ‘나도 먹어야겠다. 저것은 먹는 거구나. 입에 넣어도 되는 거구나. 저건 저렇게 처리하는구나.’ 등, 시각적인 자극과 더불어 내면으로 받아들이고 학습하는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야만 ‘잘 먹는다’는 엄마의 기준에 맞춰지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잘 먹을 때까지 마음을 내려놓고 기다려주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해요.
   


상처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는 없어요. 아이들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지저분하게 밥을 먹고 어지르는 것이 아니에요. 일부러 장난치며 여기저기 음식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탐색하는 중이라면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으로 봐주세요. 혼자 해내려는 마음으로 열심히 손으로 주물러가며 욕구를 채우면서 즐기는 겁니다. 
     
본능보다 이성이 더 앞선 우리가 아이의 그런 모습을 존중해야 해요. 그리고 해야 할 살림을 더 보태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해야 할 청소, 아이 덕에 더 깨끗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조금의 장난이나 음식 거부로 [참을 인 → 심호흡 → 분노 → 자책]의 고리 속에서 머물며 폭풍 걸레질을 하는 순간까지도 마음을 잡는 것은 무척 어렵겠지만요. 
   


(좌)턱받이 없이 덤비던 14개월 (우) 옷이 지저분해지기 싫어 턱받이를 착용한 26개월



우리가 아이를 키우는 하루하루가 늘 새로우면서도 반복되는 일상이라 쉽게 지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로 새로운 기회가 생기면 능숙해질 때까지 부닥쳐보고 요령을 터득하게 되잖아요. 육아도, 아이 밥 먹이는 것도 익숙해질 때까지 견뎌내기가 힘들 뿐입니다. 저는 6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더럽게 먹고 징그럽게 안 먹던 큰아이가 인생 7년 차가 되었을 때 아침에 일어나 방에서 걸어 나오며 말을 합니다.
     
“엄마, 밥 주세요. 배고파요.”
     
지금은 안녕히 주무셨냐는 인사만 붙었을 뿐 여전합니다. 우리가 폭격 맞는 밥상과 식사 시간을 잘 견뎌주면 아이는 반드시 긍정적인 피드백을 줍니다. 조금만 더 열린 마음으로 기다려 주세요. 아이는 우리의 기다림을 먹고 자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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