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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Mar 01. 2019

아이 주도 식사를 바라는 엄마들을 격려하며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18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시리즈를 연재하고 안밥뽀 카페를 운영하면서 밥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의 연락을 자주 접하고 있어요. 글에 담긴 진심이 전해지면서 각각의 사연에 마음이 아프기도,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지난 시기, 제 첫째 아이의 성장을 떠올리며 수없이 시행해 봤던 방법들을 아낌없이 나눠 드리고 있는데요. 어떨 때는 사례들을 읽으면서 이 정도면 되는데, 이만하면 되는 건데 무얼 더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정도만 되었어도 정말 행복했겠다, 더는 밥 먹이는 거 고민하지 않았겠다 싶을 만큼이어서요. 과연 우리의 먹이려는 욕심은 어디까지 일까요? 얼마나 더 해야 우리가 바라는 ‘완벽’에 가까운 식사가 이루어질까요? 언제쯤이면 미안한 마음이 사라질까요?
     
아이가 손으로만 계속 먹으려 해서 속상하시다는 분이 계셨어요. 깔끔한 것을 원하셨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도움을 청하셨어요. 그런데 손으로만 먹는 게 문제가 되지는 않죠. 음식을 탐색하며 선택하고 무엇이든 먹으려는 자세가 너무나 기특하잖아요.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고, 엄마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눈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한번 보시라고 말씀드렸어요. 아이 식습관 형성을 도구 사용에 중점을 둘지, 스스로 먹는 것에 중점을 둘지는 선택 사항입니다. 스스로 골고루 잘 먹으면서 때맞춰 숟가락이나 젓가락 사용이 능숙한 아이, 바른 식사 태도로 앉아 즐겁게 먹고는 그릇을 싹 비우고 조금 더 달라거나 잘 먹었다 외치고 일어나는 아이. 이 두 아이의 모습을 기준으로 삼고 아이 주도 식사를 시작하시거나 기대하신다면 결코 그 모습이 이르게 다가오지 않아요.


포크는 거들 뿐, 뭐든 손으로만 먹던 한창때




한 프로그램에서 제가 좋아하는 배우 이청하 씨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청하 씨 어머니의 요리 솜씨를 묻는 출연자에게 자신의 어머니는 요리를 진짜 못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일화를 이어갔습니다. “왜 엄만 맨날 간을 안 보는 거야!” 고3병이 한창이던 때, 엄마에게 음식 타박을 하면서 투정을 부렸데요. 저의 예상은 맛없는 음식이라 미안하다거나 요리 솜씨가 부족해서 미안하다 하시는 거였어요. 이청하 씨 어머니의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들고 있던 국자를 테이블에 세게 내려놓으시면서 말씀하셨데요. "나는, 내가 왜 이걸 잘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엄마 음식에 대한 자식의 투덜거림에 엄마의 솔직한 마음을 그때 처음 아셨다고 합니다. 엄마가 꼭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요. 그 일이 전환점이 되었는지 이후에는 밥투정을 한 번도 안 하셨다고 해요.
     
우리가 해야 할 역할들이 참 많아요. 그중에서 서로 공감하고 교감하는 소통이 가장 중요한데요. 먹이는 행위, 함께 하는 식사, 차리는 음식 등은 이런 소통을 위해 하나의 도구일 뿐이에요. 아이가 잘 먹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음식 솜씨가 부족한 자신을 탓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저 역시 그러해서 늘 반찬이 다양하지 않거나 색이 비슷비슷하면 미안한 마음을 먼저 표현했었거든요. 우리는 엄마가 될 준비로 모든 것을 다 갖추는 연습을 하지 않았어요. 사회인이 되기 전, 심지어는 결혼을 하기 전까지 엄마가 정리해주는 살림에 의존하던 존재예요.
     
자던 이불에서 몸만 빠져나와 차려주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으며 아침을 시작했었잖아요. 우리 부모님 세대는 손수 만든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물려주셨어요. 그걸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을까요? 아니라고 봐요. 이젠 세상이 아주 편해졌습니다. 이유식도 유아식도, 각종 시판 소스와 간편식까지! 편리한 것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아이의 밥을 차리는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아낄 필요도 있다 생각해요. 이렇게 한다고 우리가 정성 없이 아이를 대하는 거 절대 아니니까요. 
     
엄마가 수제 어묵, 수제 버거, 수제 쿠키 등 모든 것을 다 만들 줄 알아야 하나요? 요리에 관심이 많고 직접 만들어서 먹이는 행위에 자기만족감을 느낀다면 각종 수제 음식을 다 만들어 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죠. 세상에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요리 솜씨가 부족한 상태로 엄마가 된 것일 뿐, 요리도 못하는 엄마가 결코 아니에요. 그러니 맛있는 거 많이 못 해준다고 직접 만든 음식으로 차려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내려놓자고요. 그리고 유기농 식자재를 못 먹이는 미안함이란 게 어딨어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절기마다 씨앗 심고 수확물 거두어들이는 밭 경작도 해야 하는걸요.
     
엄마 삼 년 차 때, 전 직장 동료가 초등 두 아들 간식으로 준다며 할인하는 햄버거를 여러 개를 사더라고요. 다소 놀랐습니다. 저는 패스트푸드는 최대한 늦게 먹이거나 되도록 접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마음먹었기 때문이에요. “간혹 이런 거 한 번씩 먹여야 ‘엄마 만세!’ 소리 듣고, 엄마도 숨 쉴 수 있는 거야.” 그때 동료가 해준 조언이 지금 현실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죠. 그러나 좋은 것만 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우리 심리적으로 힘을 좀 빼 봐요.
     
어떤 분은 아이가 고기만 먹는다고 해서 걱정을 하시며 채소를 어떻게 먹을지 고민을 하세요. 어떤 분은 아이가 채소를 잘 먹어서 걱정이 덜한데 고기를 굳이 먹여야 하냐 물어보신 경우도 있어요. 두 경우 모두, 편식입니다. 채식이든 육식이든 모두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는 건 맞아요. 균형 있는 영양분으로 꽉 채워 어떻게든 먹이시려는 그 마음을 알아요. 그러나 사실은 영양 불균형을 걱정한다지만 밥투정을 마냥 방치하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걱정할 일도 아니에요. 지금 당장 식습관이 아니라 몇 년 후, 멀게는 성인이 되었을 때의 식습관까지 생각하실 텐데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아이가 스스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노력에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어요.

그릇 받쳐 조심히 뜨고 흘릴까 조심하고 입으로 쏙 넣고 신나서 만족해하는 아이


우리가 그릇되다 생각하는 많은 식습관을 줄이는 방법은 아이 말문이 트이는 방법과 비슷할 거예요. 36개월이 되도록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던 아이가 있었어요. 가족들은 모두 왜 말을 안 하는지 의아하다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그래도 계속 노력을 하셨어요. 그 아이를 위한 노력과 생활은 아주 평범했습니다. 바깥나들이 다니며 자연을 접하게 해주고 말을 걸어주고 입 다물고 '음'이라는 말만 하는 아이의 그 표현을 해석해주시면서 독려하셨지요. 그러면서 책을 읽혀주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다 드디어 36개월 즈음 말문이 트였는데요. 아이가 낱말을 뱉는 것이 아니라 그간 속으로 연습하고 꼭꼭 담아 두었던, 하고 싶었던 말들을 문장으로 뱉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고는 몇 개월 만에 또래의 언어 발달과 비슷해지더니 혼자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잘 안 먹던 아이가 그냥 두니 잘 먹더라, 때 되면 다 잘 먹는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라.’ 하시는 분들이 있으셨어요. 설마요. 그냥 두신 게 결코 아닐 겁니다.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외부적인 자극이 없는데 어떻게 한순간 잘 된다는 말인가요? 직간접적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아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자신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인데요. 아이는 그동안 타인들이 먹는 모습, 음식의 모양과 색, 음식에 대한 다양한 반응 등을 눈과 귀로 접하고 느끼며 마음에 담아두었던 겁니다. ‘그게 그렇게 맛있단 말이야? 이런 걸 예쁘다고 하는구나. 냄새는 별로인데 괜찮을까? 아, 저렇게 맛을 표현하는구나.’ 등등 언젠가 먹을 용기가 생길 날을 기다렸던 거지요.
     
저는 아이 밥 먹이는 어려움에 이러다 내가 미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정말 꼭지가 돌아서 미쳐버릴 즈음, 아이의 식탐과 식욕이 생겼습니다. 쾌재를 부르기엔 일렀어요. 마음을 놓기란 정말 어려웠으니까요. 아이는 우리에게 의지해서 성장하기 위해 온 존재예요. 더불어 우리의 성장에 부족한 점을 깨닫고 동반 성장을 할 기회를 주는 멋진 생명체잖아요. 우리는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해요. 그까짓 밥쯤이야!! 해야지만 앞으로의 무수한 부딪힘도 다소 가볍게 볼 수 있더라고요.
     
그냥 잘 먹는 아이들보다 그냥 말을 잘하는 아이들보다 우리 아이들이 조금은 더 신중하다고 여긴다면 마냥 문제가 되는 발달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술술 풀린다면 너무 좋겠지만 더딘 걸음이지만 한 단계씩 밟아가면서 어려움을 겪은 일들이 나중에는 더 많이 생각나고 소중히 여겨지는 법이잖아요. 음식에 흥미를 더디게 가지는 아이의 식탐은 분명 잠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아이와 함께 하는 거예요. 매 순간, 매 육아 요소들에서 말이에요. 밥 차리는 거, 밥 먹이는 거 조금만 내려놓으세요. 대충 차려도 돼요. 어제 줬던 거 또 줘도 돼요. 각종 SNS에 아기자기한 식판에 정갈하고 예쁘게 차려진 유아식을 보고 자극을 받으셨나요? 그 자극이 여러분께 긍정적이었는지 생각해보세요. 예쁜 차림이든 다소 부족해 보이는 차림이든 아이에겐 엄마의 정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곁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눈 마주칠 때 웃어주고 마음을 나누는 엄마가 있어서 그저 좋은 거예요. 우리가 할 건 그거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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