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심리상담 02
드디어 지역 청소년 상담 센터와 연락이 닿았다. 입학과 동시에 터진 사건과 맞물려 아이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관심군 판정을 받았다. 이 검사는 학생의 성격특성을 파악하고 성장 과정에서 흔히 경험하게 되는 정서・행동의 어려움을 조기에 발견하여 성장기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잘 관리하고 극복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1차로 학교에서 진행되는 선별 검사다.
아이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검사에 임했다고 한다. 검사문항 중 자살시도력에 ‘예’로 응답을 했고 관련 문항 합산 점수가 면담을 요하는 상태였다. 관심군 판정 후 2차 검사를 통해 전문적인 조치가 필요한 상황으로 판단되었다. 교내 Wee센터의 지원이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지역 청소년 상담 센터를 이용하게 되었다.
1학기 말미에 상담 센터로부터 지원 대상자로 접수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누락되지 않았나 걱정이 들 만큼 늦은 소식이었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지연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었지만 아쉬움이 컸다. 체계화된 시스템의 혜택을 받는 입장에서 정말 미비한 문제 제기일 수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선택까지 내몰려 있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제 3자의 객관적인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어서 사실은 매우 초조했다.
시간은 흐르고 일들은 계속 발생하는데 아이는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불안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등하굣길에서는 그 아이로 인해 간헐적으로 공포를 느껴야 했다. 우리는 올해가 가기 전,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에 기대었다. 상담이 진행되면 지금까지 쌓인 일들을 극복하고 나아질 수 있는 방도가 생겼다는 기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마음이 풀어졌다. 밤새 고민을 끌어안고 앓다가 그제야 잠깐 잠이 들었다. 그때 담임의 전화를 받았다. 자다 깬 상태라 늦잠 자는 엄마로 인식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의 나는 담임의 전화에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아이가 극도로 예민한 상태로 학교를 다니던 때였기에 전화를 해야 할 만큼 일이 생겼나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서류 제출 건으로 연락을 주셨기에 심장을 쓸어내렸다.
11월이 되어서야 상담을 위해 센터에 발을 들일 수 있기까지, 무척 지난했다.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그 아이와 부딪히지 않도록 담임들의 노고가 엄청났다. 교무실은 안전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셔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아이를 피해 뛰어 들어가기도 했다. 지치지 않고 따라붙는 그 아이의 시선 때문에 두려움에 몸을 떨며 도움을 요청하는 내 아이를 보듬어 주셨다. 담임들 덕분에 굉장히 지치고 그늘이 졌던 아이의 심신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큰 탈없이 학년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가정환경을 원래의 밝은 분위기로 계속 유지하려는 노력은 쉽지 않았다. 과해서도 안되고 티 나게 깊게 파고 들어서도 안되며 선을 지켜야만 했다. 나는 아이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청소년 우울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볼 때면 울컥 치솟는 감정에 비틀렸다. 아이가 자거나 학교에 보내 놓고 울었고 아이가 보기 훨씬 전에 울음 자국을 지웠다. 엄마라서 그래야 했다.
나는 변함없이 아이의 성장을 다독였고 불쾌한 자극으로부터 고민하고 힘겨워하는 아이를 단단하게 하기 위해 강해야만 했다. 그래야 아이의 울음을 받아 줄 수 있었으니까. 1년 넘게 고통스러워하던 아이에게 1주일 한 번의 상담이 숨통을 트이게 했다. 아이는 눈에 보이는 폭력보다 더 무서운 정신적 피해의 터널에서 끝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는 중이다.
*cover picture : Image by Jose Antonio Alba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