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2학기 말 즈음 갑자기 조퇴를 했다. 그땐 그저 구토가 심하고 갑작스레 오른 열 때문이라 여겼다. 단순 열감기가 아니라는 직감에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대기 중에도 아파하며 소리 내어 앓고 칭얼댔다. 어지럽고 앞을 보기가 힘들다며 초점도 흐렸다. 나는 걱정을 삼키며 토닥여 줬다. 처음 듣는 성홍열 진단을 받았다. 일주일 호되게 앓고서야 마음을 진정시켰다.
첫째 아이가 도장을 다녀오더니 손 하나를 내민다. 달리기 하다가 엎어지며 손가락이 뒤집혔다며 아파했다. 병원이 문 닫은 늦은 밤이라 난감했다. 냉찜질로 그치려 했다가 부어오름과 통증이 여느 때와 달라서 건드리지도 못했다. 조심히 자도록 일러두고 다음 날 바로 정형외과에 갔다. 손가락 골절 진단과 인대 문제를 말씀하셨다. 머리가 하얗게 되어갈 즈음, 대형 병원 내원이 필요할 듯하다며 진료/판독의뢰서를 작성해 주셨다. 다행히 비수술로 통깁스만 하고 기능 이상은 추후에 생활하면서 살펴보자 하셨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을 할 때는 일하는 감이 있어서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상황을 거쳤다. 엄마로 살면 아이 성장 수준만큼 함께 자라는데 그때 아이 전담 레이더의 발달은 직장인이 가지는 성장력 못지않다. 날랜 몸으로 넘어지는 아이를 받쳐낸다거나 외출 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을 미리 대비하며 위험을 피한다. 작은 상처에는 의연해지며 장기간 지켜봐야 하는 일에는 호들갑 떨지 않는다. 그렇게 쌓다 보면 병원에 갈지 말지에 대한 내공이 향상된다.
내 삶에 활력을 잃어갈 때 아이들에게만 매몰되어 살아가는 그저 그런 날들로만 여겼다. 그러나 애써 내게 시선을 집중하고 그간의 시간을 돌아본다. 마음의 탄탄한 성장을 큰 자산이라 여길 만큼 아이들의 바른 성장이 느껴진다. 이에 내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이렇게 곱씹어 가슴을 펴본다. 인성이 개인 역량이 되는 시대가 오리라는 내 감이 옳았다.
인성을 주제로 아이들과 대화도 많이 한다. 반 아이들과 어울리며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해서 힘들어하는 중에도 자신의 튼튼한 마음을 믿고 내게 기대 와서 고맙다. 엄마는 몸이 아플 때만 찾아드는 품이 아니다. 정작 아이가 마음이 아플 때 더 깊게 안길 수 있는 품이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의 정서적 안정감은 절대적 무기가 될 테다.
누가 내게 물었다.
"하루 중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뭐예요?"
나는 깊은 고민 없이 말했다.
"엄마, 이리 와 봐."
사랑을 직접 말하지는 않았으나 엄마라는 낱말에 함축된 의미를 알기에 모든 것이 사랑이고 믿음임을 안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 테다. 누구의 '엄마'는 무엇을 해도 걸림돌이 될 수 없다.
방학 한 달은 늦은 취침과 기상, 영상, 게임 등 학기 중에 실컷 하고 싶어 했던 것으로 꽉 채워 방탕하게 풀어놓았다. 이제 남은 방학은 3월 개학 대비로 생활을 다시 정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