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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Aug 08. 2019

밥때가 야속합니다. 어떡해야 하죠?

아이주도식사 솔루션 #20


도대체 아이를 잘 모르겠어요. 수유도 단유도 너무나 힘들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소리도 질러가며 폭발을 했었어요. 이유식도 유아식도 입이 짧아 먹지 않는 것을 유지 중입니다. 어떨 땐 좋아라 반기다가도 입을 다물고 절대 열지를 않아요. 사정사정하다가 졸졸 쫓아다니다가 엄포를 놓았다가 하는데 제가 제정신이 아닌 사람 같아요. 그러다가 아이 앞에서 울며 답답함에 때리기도 했어요. 미쳤었죠. 아이는 눈치를 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갈피를 잡지 못하겠어요. 언제가 되어야 좋아질까요? 밥을 왜 먹어야 하는지, 안 먹고 살 수는 없는지 그저 하루 세 번의 밥 시간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23개월 아이를 키우시는 jes****님)



둘째의 성장을 보면서 비슷한 때의 첫째 아이 성장을 떠올립니다. 수유기 때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이던 두 아이 덕분에 인간의 다름을 새삼 느꼈어요. 큰아이는 찔끔찔끔 자주 젖을 먹었고 작은아이는 분수 토를 하면서도 씩씩거리며 계속 먹었어요. 저는 두 아이 모두 수유 간격을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수유 간격이라는 것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아이의 본능보다는 저의 편의를 위한 맞춤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였어요. 그리고 수유 간격을 신경 쓰다가 울 것만 같았거든요. 큰아이의 단유로 몸 고생 마음고생 했으면서도 작은아이도 같은 선택을 했던 다른 이유는 ‘아이도 자기 조절력이 있다.’는 것을 여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의 공통된 신호는 배가 부르면 그만 먹으려 젖을 떼어내고 이유식도 배가 고프면 먹고, 먹다가 배가 부르면 그만 먹는 의사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큰아이의 경우는 제 욕심에 조금이라도 ‘더’를 외쳤던 거죠. 책에서 말하는 평균 섭취량에 턱없이 부족한 식사량과 평균 체중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는 아이의 체격을 보며 늘 전전긍긍했습니다. 제가 만든 기준에 아이가 맞춰지길 욕심냈던 거예요. 그 과제를 수행해내지 못하면 제대로 된 엄마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불안해하던 시절이었죠. 아이의 소화력과 밥을 받아들이는 심리는 저의 불안 때문에 가려졌어요. 그랬더니 큰아이는 제 눈치를 봤습니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욕심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어요. 조금만 더 양을 채워 계속 먹는다면 또래만큼 자랄 것이란 기대에서 내려오지 못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밥 먹는 문제뿐만 아니라 앞으로 같이 살아갈 시간 동안 아이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저만의 기대로 계속 고집 피우며 끌고 갈 수가 없잖아요. 독립 의식을 가진 아이에게 할 짓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며 아이의 입장에서 더 생각하고 저의 편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멍청한 엄마가 되지 않으려 했습니다. 주변 엄마들도 제 아이의 성장을 걱정했어요. 먹는 양과 키의 상관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아이를 몇 해, 몇 명 키워 본 엄마들의 말이 제게 비수가 되던 시기도 보냈었죠. 솔직히 그들의 오지랖과 참견에 화도 났어요. 제대로 된 사정을 모르면서 훈수를 두는 간섭으로 느끼면서도 정말 나의 잘못인지 자신을 의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누군가 제게 사람의 체력과 체격은 별개라며 아이도 사람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아이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그 말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않으면서 무슨 기운으로 저렇게 노는 걸까 생각했었는데 아이는 자신이 가진 에너지만큼 놀았던 거예요. 배가 고프면 고프다 표현을 했었어요. 그런데 식사 때 제대로 먹지 않았으면서 밥때도 아닐 때 배고프다 하는 것이 저는 싫었던 거죠. 밥을 안 먹었기에 간식 주는 것을 거절했으면서 배가 고파 주저앉을까 봐 혼자 애태웠던 거고요. 제때 밥을 먹게 하려면 밥을 먹지 않는, 싫어하는 문제부터 파악하고 해결하려 했습니다. 식사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어야 하지? 먹어야 할 식사량은 누가 정하는 거지? 등을 같이 고민하면서요. 


     


‘무엇을 얼마만큼 먹을지 아이 스스로 결정한다.’는 말은 상황에 따라 엄마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요. 큰아이를 키우던 시절의 저처럼 불안감이 있는 상태에서는 더 먹어야 하지 않을까, 저것만 먹어도 될까 하는 마음 때문에 신뢰가 되지 않는 말입니다. 먹성이 좋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처음부터 옳은 말로 받아들여지고요. 지금의 저는 후자의 입장입니다. 큰아이 하나만 바라볼 땐 ‘안 먹을 수도 있지, 남길 수도 있지, 식욕이 없나 보네.’ 같은 여유를 상상하지 못했어요. 


     


둘째는 요즘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먹고 싶은 대로 먹는 성장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편식으로 생각 될 만큼 한 가지만 먹는 날이 있고 차려진 반찬을 골고루 먹는 날도 있어요. 큰아이도 작은아이와 비슷한 시기에 음식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권을 휘둘렀어요. 그땐 미안할 만큼 붙잡아두고 먹이는 것에 집중을 했었는데 지금 둘째는 뭘 해도 그냥 두게 됩니다. 둘째가 예뻐서가 아니에요. 첫째를 키우던 시기의 시행착오와 경험들이 아이를 키우는 길을 알려준 덕분입니다. 


     


32개월이 되어가는 둘째는 혼자 먹다 말고 밥을 남깁니다. 거의 안 먹는 수준이에요. 세 숟가락. 가끔은 잘 먹었다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어나서 식사 후 놀 거리를 찾으러 가요. 그러면 제가 다 먹었는지, 그만 치워도 되는지를 물어봐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 먹었다고 말하고 놀아요. 만 8세가 되어가는 첫째는 저와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를 하다말고 물어요. 그만 먹어도 되느냐면서요. 그만 먹겠다 말하는 둘째 같은 당당함이 없습니다. 싹싹 긁어 다 비운 날에는 그릇을 들고 자랑도 합니다. 잘했다는 엄마의 칭찬에 마음을 놓는 아이의 행동은 신경이 쓰여요. 세상 전부인 엄마를 위해 자기를 끼워 맞추려고 애쓰는 아이의 마음을 눈으로 만나게 되면 가슴이 아파집니다. 한동안 가졌던 아이 성장에 대한 제 불안과 아이를 처음 키우는 서툶이 그렇게 스며든 것이라서 매우 시려요.


     


엄마 주도 식사이든, 아이 주도 식사이든 먹이는 양에 너무 집중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엄마와 아이를 힘들게 하는 에너지 소모에 시간을 버리지 말자고요. 아이가 덜 먹고 안 먹으려는 이유는 있어요. 아이는 먹기 싫다고 표현하고 알려주는데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때문에, 혹은 알면서도 무시하기 때문에 답답해할지 몰라요. 그래서 때로는 식판을 엎어버리거나 음식을 던지는 거 아닐까 합니다. 또는 밥만 보고도 뒤로 넘어갈 듯 우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죠. 골고루 먹는다는 엄마의 기준, 잘 먹는다는 엄마의 기준보다는 아이가 가진 자기 조절력을 한 번 믿어보세요. 세 숟가락 먹는 둘째는 딱 그만큼만 놀아요. 활동적이지도 않죠.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는 걸 아나 봅니다. 


     


우리도 하기 싫은 거, 먹기 싫은 거 있잖아요. 아이도 똑같아요. 싫지만 좋아하려 노력하는 중이거나 엄마를 통해 안전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는 중일 수도 있죠. 오로지 아이만의 시간으로 천천히 접근하고 있어서 우리가 내미는 도움이 방해될 수도 있어요. ‘이 또한 지나가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이와 쌓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보자고요. 우리의 육아는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요. 엄마가 우선 마음을 조절하셔야 해요. 지난 시간의 행동에 대해서는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해주세요. 아이는 넓은 마음으로 이미 용서를 하고 엄마를 계속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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