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게 설거지를 하려다가.

by 지예

일상의 관성은 때로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된다. 설거지통 앞에 선 내 손이 무의식적으로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는 행위는, 단순한 습관이라기보다 뜨거운 열기로 미끈한 현실을 손쉽게 녹여버리려는 본능에 가깝다. 기름기는 뜨거운 물로 녹여야 한다는, 오랫동안 학습된 '안락한 정답'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날도 평소처럼 뜨거운 김이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하부장 구석에 놓인 워싱소다가 눈에 들어왔다. 가스레인지 후드의 찌든 때를 벗겨낼 때는 그토록 명민하게 활용했으면서, 왜 매일의 설거지 앞에서는 이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익숙한 경로를 이탈해 새로운 도구를 소환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큰 '인지적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잠시 손을 멈추고 찬물에 워싱소다를 풀었다. 굳이 온수를 기다리지 않아도, 화합물과 기름기가 만나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화학 작용은 집요했다. 수세미가 지나간 자리마다 뽀득거리는 마찰음이 들려왔다. 당연하게 여겼던 루틴을 깨고 새로운 방식을 인지하기까지 걸린 그 짧은 망설임의 시간. 그 찰나의 '의식적 저항'이 살림의 문법을 바꾸고 있었다.


이 개운한 뒷맛을 느끼며 어제 저녁 아들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아이는 학교에서 영어 단어 시험을 보겠다는 알림장을 받아 든 참이었다. 그간의 가벼운 수행평가와는 질감이 다른 '시험'이라는 무게. 아이에게 그것은 설거지통에 쌓인 기름진 그릇처럼, 회피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낯선 부채였다.


나는 아이에게 가장 고전적이고도 불친절한 정공법을 제안했다. 눈으로 읽고, 입으로 스펠링을 뱉고, 손으로 꾹꾹 눌러 쓰고, 다시 귀로 듣는 방식. 효율을 따지는 시대에 이토록 느리고 무식한 방법이라니. 하지만 이 '원시적인 마찰'이야말로 뇌에 새로운 길을 내는 유일한 방법임을 나는 안다. 파닉스의 원리를 짚어가며 단어가 소리에서 형체로 굳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영어 교과 선생님이 열어준 이 작은 포문은 사실 성적보다 귀한 자기 제어의 감각을 익힐 기회다.


내가 미끈거리는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 워싱소다라는 생소한 선택지를 의식적으로 떠올려야 했듯, 아이 역시 공부라는 행위가 주는 생경한 마찰력을 견뎌내야 한다. 처음에는 "귀찮아", "어려워"라는 관성의 기름기가 마음을 둔탁하게 만들겠지만, 그 저항을 뚫고 '뽀득'거리는 성취를 경험하고 나면 그다음의 몰입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살림의 고수들이 말하길, 기름기는 제때 닦지 않으면 산패하여 그릇의 일부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습관도 마찬가지다. 편안함이라는 관성에 젖어 미루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그것이 성격이 되고 운명이 된다. 제때 마음의 때를 닦아내는 이 고단한 반복이 몸에 배는 순간, 아이는 비로소 자기 삶의 주도권이라는 '개운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워싱소다 한 스푼으로 찬물 설거지가 명료해진 오늘, 나는 아이의 주간학습표를 가만히 눈으로 읽어본다. 이 사소한 마찰의 기록들이 쌓여, 훗날 아이가 마주할 거대한 관성의 벽을 무너뜨리는 단단한 초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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