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면서 자라는 거니까

by 지예

교실의 풍경은 나날이 진화한다. 중학생인 큰 아이는 여전히 배부되는 종이가 많지만, 초등학생인 둘째의 학교는 종이 인쇄물이 거의 없다. 교실 책상 위엔 크롬북이 자연스럽게 놓인다. 아이들은 화면 속에서 문제를 풀고, 결과는 정교한 데이터가 되어 종이 한 장에 출력되어 나온다. 기술은 이토록 매끄럽게 교육의 현장을 파고들었지만, 그 안에서 여전히 투박하고 때로는 날카롭게 부딪히는 것은 결국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다.


어제 하교한 아이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새 학년 첫 영어 단어 시험을 치르고 왔다. 7개나 맞혔다는 결과에 나는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건넸지만, 아이의 심통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문제는 점수가 아닌 교사의 말에 있었다. 반 아이들의 결과를 하나하나 공개하며 "영어 공부 안 하느냐"는 핀잔 섞인 한마디가 아이에겐 화살이 되어 박힌 것이다. 무시당했다는 마음에 아이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우리 집에는 각자가 감정의 파고를 만날 때 사용하는 작은 규칙이 있다. 어떤 일이 생기면 상황(Situation), 그때 느낀 감정(Emotion), 그리고 가졌던 생각(Thought)을 쪽지에 적어보는 일이다. 아이는 이번에도 꼼꼼하게 영어 시간의 일들을 적어왔다. 냉장고에 붙여둔 무드미터를 보며 적어왔던 감정어를 다듬었다.


먼저 쪽지를 읽으며 아이의 속상함을 온전히 받아내 주었다. 아이의 서술은 당연히 자신의 입장에 치우쳐 있게 마련이지만, 공감은 분석보다 앞서야 하는 법이다.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된 후에는 함께 생각의 오류를 짚어보았다. 억울함에 매몰되어 엉뚱한 변명을 늘어놓는 아이에게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지 말자"며 따끔한 주의를 주기도 했다. 감정은 존중하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문득 걱정이 앞선다. 거친 말이나 무안을 주는 상황에 유독 내성이 없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너무 안락한 온실만 제공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이 평온한 울타리가 역설적으로 아이가 세상의 껄끄러운 마찰력을 견딜 면역력을 뺏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하지만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온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락함에 길들여져 상처받을 위험을 아예 회피하려는 마음이다. 상처받기 싫어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지기 싫어 아예 경기에 나서지 않는 '무위(無爲)'야말로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더 많이 실패하고, 더 자주 지고, 때로는 처절하게 좌절해보길 바란다. 넘어지고 다치는 일들은 아프지만, 그 흉터는 훗날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피부가 되어줄 것이다. 부모인 나의 역할은 아이 대신 매를 맞아주는 방패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등불을 비춰주는 이정표여야 한다.


넘어진 자리에서 스스로 일어나 먼지를 털고 다시 걷기까지, 부모의 조력을 받아 길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아이의 '책임감'은 비로소 싹을 틔운다. 자신의 점수에 대해, 그리고 그 점수를 대하는 타인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는 결국 아이 자신의 몫이며 책임이기 때문이다.


경험은 이해의 폭을 넓히는 가장 확실한 도구다. 학교에서 만나는 다양한 유형의 어른들과의 접촉은 아이의 무른 마음을 단단하게 단련시킬 무기가 될 것이다.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이 있고, 타인의 서툰 모습 때문에 나의 자존감이 무너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세상엔 네가 기대하는 모습과 다른 사람들이 참 많아. 하지만 그건 그들의 한계일 뿐이지 네 가치가 변하는 건 아니야."


자신을 더 사랑하고 외부의 요동에도 중심을 잡는 법을 알아가는 시간 속에, 아이가 흘린 눈물이 타인의 서툰 말들을 유연하게 받아낼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의 갑옷이 되기를 바라본다.



#교육의본질 #마음의근육 #회복탄력성 #부모의역할


*표지 이미지 출처 : Image by Vladimír Elex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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