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소리가, 나는 돈이
계단을 오르는 사람 발소리에 귀가 기울어진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대기하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머문다. 진료실 안에서 빈번히 들리는 '아, 하세요'와 기계가 작동되는 소리, 그리고 짧은 통곡의 소리에 모든 감각이 곤두선다. 언제 내 이름이 불릴지 몰라 조마조마하지만, 티를 내지 않는다. 무서운 티를 잘 감추고, 이 치료를 잘 마치고 나면 아래층 빵집에서 달콤한 슈크림을 사 먹으리란 다짐으로 불안감을 씻어낸다.
나에게 치과가 무섭고 아프기만 하다는 트라우마는 아주 오래전에 새겨졌나 보다. 치료를 받는 순간 입을 벌리고 있으면 아래턱과 근육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마구 떨린다. 손가락으로 흔들리는 턱을 눌러 진정을 시키고 있어야 진료가 될 정도다. 나이가 더 들면 좀 편안해질까 싶지만, 해를 더할수록 치료의 무서움에 돈의 무서움이 늘어났다. 부르는 게 값이라 여겨질 만큼 높은 치료 비용은 두통을 유발하는 듯했다.
아이들은 무상으로 영유아 구강 검진을 받을 기회가 일정 주기로 찾아온다. 첫 치료의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다. 만 4세 아들의 어금니 하나에 우식증이 확인됐다. 양치를 잘하는데 왜 충치가 생기느냐 억울해하는 아이에게 치료를 해야 한다 말을 했다. 치료 과정과 사용 도구와 소리 등을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약간 생략해가면서 말이다. 치과를 가는 아이의 걸음은 가벼웠다. 실질적으로 어떤 것인지 모르니까 그랬을 거다. 나는 치과 치료 의자에 앉으면 묘하게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이라고 다를까. 앉자마자 눈물을 보였다.
아이는 기본 검진 후 충치가 눈으로 확인이 되는데도 검사만 하고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정확히 밝혔다. "선생님 그런데요. 저는 양치도 잘하는데 왜 충치가 생겨요? 치료하는 건 무서워요." 아이는 드릴 소리가 무섭다며 울음을 삼키고 눈물만 흘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하는 아이에게 강제로 치료를 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담당의도 아이의 첫 치료가 평생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며 시간을 두고 보자 하셨다. 눈에 보이지 않고 일어나는 일들에는 절대적으로 경계하는 아이다. 드릴 소리가 두려운 건 당연할 터. 동물적 본능으로 본다면 배를 드러내고 누워, 보이지 않는 곳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건 안전한 행위가 아니다.
대부분의 일에 충분한 경험으로 안전을 확인하면 마음이 안정된다. 치료의 목적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고 재방문 의사와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보름간 가지기로 했다. 검진만 하고 나오던 길, 치과를 오가는 즐거움이 조금이라도 생겨야 재방문이 수월할 것 같았다. 아이도 나와 같은 달콤한 경험과 연결되길 바래서 근처 빵집에 들렀다. 가장 먹고 싶어 하는 크루아상 하나를 선물했다. 해맑게 웃으며 크루아상을 받아 들고 신나게 뛰어 집에 왔다.
돈의 무서움이 뭔지도 모르던 30여 년 전, 달콤한 빵을 생각하며 치료를 참던 어린아이. 빵집이 사라져 더는 달콤한 보상을 받지 못해 치과를 더 무서워했던 아이. 치과를 다녀오니 간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며 웃던 아들의 눈에 지난 시절 나의 어린 모습이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