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되었든 아이들과의 1년이 완성되어 간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12월

by 지예

새로운 시작은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기대감에 의해 힘차게 희망의 선을 그을 수 있는 정확한 기점이 있다. 아이들에게 3월이 그렇다. 개학과 입학(입소)은 낯섦을 정면으로 대해야 하는 출발선이 된다. 2020년의 3월은 늦춰지고 미뤄지며 가볍지 않은 무게로 아이들을 대기시켰다. 아이들의 사회생활에 얹혀 나도 새로운 시작을 하리라 다짐했건만 세상을 잠식하는 바이러스가 내 계획도 틀어버렸다. 된통 꼬였다며 불안감이 몰려왔다.


어느 때보다 긍정적인 에너지 주입이 필요한 시기, '위기가 기회'라는 마음을 가지게 해 준 자극제는 내 곁에 있었다. 첫 번째 자극제는 생소한 온라인 개학과 수업에 어리둥절해 하며 히어로를 찾듯 '도와줘요, 엄마!'를 외치는 초긍정 웃음 폭탄 첫째 아이다. 두 번째 자극제는 태어나 지금껏 엄마 껌딱지로 사는 둘째 아이다. '엄마 없으면 나 못 살아'를 주술처럼 외고 조심성이 많다. 현실 불안감을 아이들에게 전할 수 없으니까 마음을 고쳐먹었다. 코로나 상황은 내가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므로 '엄마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아이들의 성장을 오로지 독점할 기회!' 코로나 땡큐를 외치는 순간이었다.


온전하지 않은 그들만의 사회생활은 5월 마지막 주에 이루어졌다. 첫째 아이는 학교에 매일 못 가서(매일 급식을 못 먹어서) 억울하다 하소연했다.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응 시간이 많이 필요한 둘째는 온갖 이유를 붙여 유치원에 가기 싫은 급한 사정을 만들었다. 입학식도 없었고 매일 등원도 아니어서 적응의 어려움으로 우는 날이 많았다.


모든 손가락을 깨물면 아프지만 아픈 정도는 다 다르다. 자식을 모두 사랑한다해도, 마음이 똑같이 기울지 않는 이유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은 각각 다르다. 이런 내 마음 상황을 아이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바랄 뿐, 수긍을 요구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편애를 받으며 자랐기에 그 아픔의 크기가 얼마나 크고 날카로운지 안다. 시시각각 아이들에게 맞추어가며 어느 한 사람 서운하지 않도록 나를 조절해야만 한다. 거의 24시간 붙어 있어 트러블이 더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번 해는 온 에너지가 그렇게 쓰였다.


집에서 아이들과 뒹구는 시간이 많았던 일 년을 돌아보며 가족 대화를 한 날이었다. 마치 집이라는 우리에서, 1년간 잘 먹여 사육당하는 인간의 '24시간 밀착 생활이 가져오는 가족 구성원 간 심리 변화' 같은 실험에 강제 참여하는 느낌이라며, 서로 크게 웃은 일이 생각난다. 아침이면 흩어져서 알지 못했던 사회 속에서의 각자 모습, 민낯을 다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국이었지만 여느 해처럼 성장이 있는 해였다. 첫째 아이는 스스로 정한 목표 두 가지를 이루었고, 엄마를 잃어버리는 기분이 든다며 등원을 어려워하던 둘째는 이제 뒤도 안 돌아보고 들어간다. 무엇보다 온 식구가 큰 아픔 없이 건강했고 각자의 위치에서 성실히 삶에 대한 예의를 다했다. 그거면 충분하다. 2020년은 12월 31일에 마무리되겠지만 코로나 생활의 마침표는 찍히지 않을 것이다. 도돌이표가 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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