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첫째 아이의 뜬금없는 사랑 고백은 뜨끈한 파문을 일으킨다. 특히나 자기 요구가 충족되고 기분이 좋을 땐 잔잔한 감동을 안고 다가와 엄마가 된 재미를 건드린다. 설거지를 하고 돌아 섰을 때, 작고 작게 접힌 색종이 두 개가 책상에 놓여있었다. 나의 시선을 따르던 아이가 한 마디 했다.
"엄마 펼쳐 봐."
나는 항상 내 존재를 의심하고 묻는다. 동시에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파장을 뿜어 내려 몸부림친다. 그런 내게 첫째는 '엄마는 나은 사람으로 잘 성장하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쪽지와 몸, 행동으로 남긴다. 그럴 때면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는 기분이다. 배시시 웃으며 내 반응을 살피는 아이를 꼭 안아주며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다.
둘째는 나를 큰 목소리로 다급하게 부르면서 늦은 아침을 깨운다. 방문이 열리고 인기척이 나면 갑작스러운 주제로 대화를 할 때가 있다. 나는 가끔은 귀찮고 가끔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하며 방문을 연다.
"엄마, 나는 왜 청소하기 싫어하는 걸까?"
"나는 왜 청소 싫어하는 아이로 태어난 거야?"
"그런데 이상하지? 유치원에서는 정리를 잘하는 아이거든?"
꼬맹이들은 정리하거나 청소하는 것을 원래 힘들어한다며 위로했다. 나도 너처럼 청소를 싫어한다는 공감과
청소 재미를 제대로 알려주려는 노력의 부족함 인정, 청소를 잘할 수 있도록 도울 테니 같이 하자는 격려로 말을 이어가며 같이 이부자리에서 뒹굴었다.
"맞아. 깨끗한 데를 보면 기분이 좋아서 다시 어지르고 싶어 져."
"...... 근데 엄마, 잘 잤어?"
아이는 한껏 내 목을 끌어당겨 볼에 뽀뽀를 하고 눈을 맞춘다. 보드라운 볼을 최대한 밀착시켜 꾹 누를 땐 숨이 막힐 만큼 목이 아파오면서도 웃음이 난다. 순서가 바뀐 듯한 아침 인사는 아무래도 좋다.
코로나로 인해 24시간 붙어있는 동안 서로의 민낯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 가족애가 견고해진 것 같다. 진해진 남매의 끈끈한 마음은 두 아이의 놀이 속 웃음소리로 알 수 있다. 포옹과 손 하트로 수시로 사랑을 표현하고 각자가 따로 하는 놀이 흐름에도 응대한다. 늦잠과 게으름, 늦은 아점은 방학을 보내는 아이들의 특권이다.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각자의 책임을 다하며 방학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의 일상이 평화롭다. 그들 사이에 나는 무임승차해서 따스한 햇살을 쬐는 기분으로 따라다니며 사랑 고백을 주고받는다.